
시간이 지날수록 종이와 펜과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체감한 지는 얼마 안 됐다. 대학교에 입학한 후 아이패드를 들고 다니며 1년간 공책을 손에 쥔 적이 없었다. 처음엔 미끌미끌한 액정에 불완전하게 남는 전자 필기가 어색하고 맘에 들지 않았다. '종이에 쓰면 더 반듯하게 쓸 수 있는데.'라고 생각은 했지만, 편의상 아이패드를 포기할 순 없었다.
수업에서 종일 타자를 치는 고학년이 된 현재도 액정 위의 내 글씨는 여전히 불완전하다. 매일 같이 샤프를 쥐며 몇 시간이고 글씨를 썼던 나의 굳은살이 조금씩 말랑해질 무렵, 문득 다시 펜을 잡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씨체에는 어떤 것이 담겨있을까.
작년 생일, 대학 동기 친구에게 생일 축하 쪽지를 받았고, 그때 그 친구의 글씨를 처음 알게 되었다. 학창 시절에는 반 친구들의 글씨를 알고 있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가끔 누군가가 유인물에 이름 쓰는 것을 깜빡할 때면 글씨체로 누구인지 유추하기도 했고, 마니또를 할 때는 글씨체 때문에 나의 정체가 탄로 날까 봐 왼손으로 글씨를 쓴 적도 있었다. 그리고 학기가 끝난 후 받은 롤링 페이퍼 안에는 모든 반 친구의 글이 담겨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친구들의 글씨체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글씨를 보면 그 사람의 성향과 분위기가 묻어나기 마련인데, 최근 들어서는 메신저와 전자문서 등 획일화된 디지털 폰트로만 소통하고 있어 그 고유한 흔적을 마주할 기회가 많이 사라졌다. 그렇게 사람의 온기가 담긴 글씨를 점점 잊고 지내던 참이었다.
얼마 전 함께 간 여행지에서, 친구가 엽서 두 장을 사더니 카페에 앉아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누구에게 쓰는지 묻자, 해외에 있는 친구들에게 보낼 엽서라고 했다. 그 순간 여행지에서 산 엽서를 그 장소에서 진심을 담아 적는 모습을 보고, 편지와 손글씨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처음 든 생각은, '아, 이 친구가 이런 글씨체를 가졌구나'였고, 두 번째는 '여행지에서 자신을 떠올리며 쓴 엽서를 받으면 그 친구가 매우 감동하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이렇게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은 손편지 자체가 지니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손편지를 받고 그 편지를 읽을 때면, 자연스럽게 나를 위해 편지를 적고 있는 상대방의 모습이 떠오른다. 물론 반듯한 디지털 활자로도 마음을 전할 수는 있지만, 화면 너머로 타자를 치고 있을 상대방의 표정은 좀처럼 그려지지 않는다.
책상 서랍 한쪽에 편지가 가득 담긴 상자 안에는 지난날의 모든 인간관계가 들어있다. 존경했던 선생님께 받은 편지, 지금은 만나지 않는 친구들, 수업 시간에 대충 주고 받으며 낙서를 남긴 쪽지도 맘에 들면 집으로 가져와 보관해 두곤 했다. 그렇게 모인 종이들이 어느새 한가득 쌓였다.
이처럼 쓰는 사람의 모습과 온기가 담겨서일까. 종이와 같은 아날로그 기록물은 디지털보다 훨씬 생명력이 길다. 우린 무언가를 '영원히' 보관하기 위해 편리한 디지털 기록을 선택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것들은 클라우드 속 방치된 수천 장의 사진처럼 너무나 쉽게 잊힌다. 오히려 물리적인 손상에 취약할 수 있는 아날로그 기록들을 애지중지 보관하다 보면, 오랜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곁에 남을 때가 있다. 아날로그 기록물은 우리의 생각보다도 훨씬 강하다.
글씨체는 단순히 의미를 전달하는 기호가 아니다. 펜을 쥔 손의 힘과 기울기, 글자의 리듬 속에 그날의 기분과 분위기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글쓴이의 감정과 개성을 직관적으로 담아낼 수 있다. 수많은 사람이 있는 이 세상에서 같은 글씨체는 없을 것이다. 조금 삐뚤빼뚤하고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그것은 오직 당신만의 흔적이다.
종이에는 흔적이 남는다. 볼펜의 잉크가 스며들면 없던 것처럼 되돌릴 수 없고 수정테이프로 그 위를 덮어야만 한다. 연필이라면 지우개 자국이 남을 것이다. 디지털 화면에서는 백스페이스 바만 눌러도 흔적 없이 사라지지만, 종이 위의 수정 자국은 그 사람이 어떤 단어를 쓸지 고민하고 주저했던 흔적을 보여준다. 그 속엔, 나에게 더 좋은 말을 건네고 싶었던 누군가의 애정과 시간이 전해진다. 그렇기에 우리는 종이 위에 기록을 할 때면 더욱 신중해진다.
이렇게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은 글씨를 보며, 나는 오늘도 사람을 떠올리고는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