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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안녕하세요, 은지님.

   

얼굴 모르는 이에게 편지를 보내보는 건 오늘로 두 번째인데요. 여전히 조금은 서먹하고 부끄럽기도 해요. 반작용처럼, 한편으론 우리가 글을 통해 닿았던 시간들을 생각하면 평소에 스쳐 지나가는 이들보다 조금은 더 애틋한 사이일 거라는 생각도 드네요.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부끄러운 마음에 얼렁뚱땅 헛소리를 늘어놓아 버렸어요. 은지님에게 얼굴 모르는 낯선 사람일 제가 조금이라도 아주 쉽게 다가왔다면, 그것만으로도 기쁜 마음입니다.

 

저는 현승이라고 해요. 고개 현에 도울 승, 같은 글자를 쓰는 다른 사람들이 잘 갖고 있지 않은 한자 이름에다가, 21세기에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꽤 “중성적”인 이름이라고 여겨지는지 숱하게 ‘승현’이라고 불리기도 하고요. 제 얘기를 조금 더 해볼까요. 길을 걷다 마주쳐도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인상적인 소개를 하고 싶은 맘에 비해, 또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늘어두게 될 것 같은 예감이 팍! 하고 들지만요.


저는 요즘 다신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는 직감이 드는 순간순간에 서 있어요. 다니던 대학은 1년째 휴학 중이고, 아직은 비자를 받기도 전이지만 교환학생을 앞두고 있어서, 며칠 전엔 돌아오는 표가 없는 출국 표를 끊었어요.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미술관에서 지킴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수요일과 금요일에는 청강 수업을 들으러 학교에 꼬박꼬박 나가서 수업 내내 졸고 돌아오기도 하고요. 솔직히 누가 들으면 번듯하다고는 말할 수 있는 일상은 아니지만, 그런 순간이 있잖아요. 앞으로 이런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는 강렬한 예감이 드는 순간이. 미래의 내가 따라 할 순 있어도 온전히 지금의 내가 될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오는 순간이요. 그래서 그 순간을 어떻게 잘 흘려보낼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요즘이에요.


하지만 그런 순간 중에서도 꼭 붙잡아두고 싶은 순간이 있는데요. 억지를 부려서라도 이것만큼은 양보하지 않는 어른이 되고 싶은 기분일지도 모르겠어요. 그건 아무래도, 지금처럼 은지님께 어떻게 닿을지도 모르는 편지를 보내는 순간이 아닐까요. 글에 꾹꾹 눌러 담은 진심을 마주하는 일, 그 진심으로 힘을 받아 또 살아가는 일, 결국에는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일 말이에요. 그래서 지금처럼 다시 편지를 쓰게 되는 일 말이죠.


은지님의 진심을 저만의 방식으로 소화하며 느낀 건, 감히 말해보자면 어떤 종류의 ‘힘’이었어요. 밤을 지나 아침을 맞이할 수 있을 때까지의 시간을 감내하는 힘, 그렇기에 다른 사람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다정과 사랑, 또 지지를 건네는 힘이요.


그런 힘을 기르기 위해 은지님의 마음은 얼마나 많은 밤을 건너오셨을까요. 어렸을 적 보았던 애니메이션 뒤로 현실의 세계를 끌어오기까지는 또 어떤 시간들을 지나치셨을까요. 사실 현실을 마주하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현실이 눈앞에 쏟아지면 보지 않을 수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며 여전히 마음을 지키는 일, 그 힘을 지키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어쩌면 바뀌는 게 많이 없을지도 몰라요. 저는 여전히 전전긍긍하며 매일을 사는 어른으로 자랄지도 모르고, 우리가 열심히 갈고 닦은 힘을 아무도 알아봐 주지 못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이렇게 모인 건, 그 힘을 잊지 않기 위해서임을 잊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그건 우리가 서로에게 보낸 편지와 글이 이어줄 거라고 믿어요.


그러니까 은지님을 많이 응원한다는 말을 쓰고 싶었고, 은지님이 적확하게 바라본 현실 사이에서 내밀어주신 대안적인 힘을 저도 여전히 믿겠다고 쓰고 싶었어요. 어려운 세상이지만 만나게 돼서 반갑다고도 말하고 싶었구요. 결국 두서없이 이런저런 말들을 늘여놓게 되었지만요.


날이 많이 따뜻해졌어요. 겨울에는 겨울에만 그리워할 수 있는 것들을 즐기다가도, 막상 봄이 찾아오니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 은지님에게도 이번 봄이 그렇게 반가운 존재이길, 또 쑥을 잔뜩 따다가 자주 쑥개떡을 해 먹을 수 있는 봄날이길 바라봅니다.


그러니 은지님, 우리 만나게 되면 지금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눠요. 그때 반갑게 인사할 수 있기를. 낮과 밤, 계절과 계절을 알 수 없대도 서로를 꼭 마주 본 채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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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어느 여행지에서 만난, 기분 좋은 화단을 함께 동봉해요.

 

 

현승 드림


*

 

안녕하세요, 은서님.

조금 앞서가는 인사일지도 모르겠지만, 미리 안녕하고 감사해요.

저도 도쿄와 시모키타자와를 무척이나 좋아해요. 다가오는 5월에 또 흠뻑 즐기고 올 계획도 벌써 세워놓았을 정도로요.

또 어떤 이야기가 저와 은서님 사이에서 펼쳐질지를,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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