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Review] 알리는 것만으로 충분한 시대인가 - 연극 '빅 마더'

저널리즘의 역할

by 유지현 에디터
2026.04.16 07:03

 

 

KakaoTalk_20260416_142447405_01.jpg

 

 

'빅 마더'라는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자연스럽게 조지 오웰의 [1984]가 떠올랐다. '빅 브라더'를 연상시키는 제목, 권력과 미디어의 결탁, 진실을 쫓는 자와 그것을 막으려는 자의 추격전.

 

그런데 공연장을 나오면서 내 머릿속에 남은 것은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 가까웠다. [멋진 신세계]의 디스토피아는 철저히 가리고 막는 방식이 아니다. 오히려 쾌락을 끊임없이 공급하고, 불쾌한 감정은 즉각 지워준다. [1984]는 억압의 괴로움이 저항의 씨앗이 되지만, [멋진 신세계]에는 씨앗이 될 만한 괴로움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무서운 세계다.


[빅 마더]가 그린 세계도 헉슬리의 세계와 유사하다. 뉴스가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세계. 알고리즘은 내가 불편해할 것들을 미리 걸러내고, 사람들은 편안한 피드 안에서 비판적으로 사유할 이유를 잃는다.


[빅 마더]의 세계는 [멋진 신세계]보다 더 현실과 가까운 디스토피아를 그려낸다. 사람들은 자유를 열망하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억압에 저항하지만, 절제는 열망의 대상이 되지 않기에 더 쉽게 잊힌다. 그리고 사유는 절제를 요구하기에, 절제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한 세계에서 사유는 설 자리를 잃어 가는 것이다.


여기의 문제는 거짓과 진실이 뒤섞여 그 차이를 알아볼 수 없게 된다는 것만이 아니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그것이 문제라는 감각 자체를 잃어간다는 것이다. '혁명조차 기대될 수 없는' 시대라고 느끼는 것은 그 이유에서다.


이 세계가 낯설게 느껴지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관객이 자연스럽게 극에 몰입할 수 있는 것은, 그 세계를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있는 곳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빅 마더]의 주인공인 탐사 기자들은 끝끝내 진실을 밝혀낸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얻지 못한 진실은 기대한 효과 없이 지나가 버리고, 진실을 밝혀낸 기자들의 생사는 알 수 없다. 누가 봐도 꽉 닫힌 배드엔딩이다.


하지만 극은 그것이 패배라고 말하지 않는다. 마지막 메시지는 이것이다. 저널리즘의 역할은 어쨌든 알리는 것. 사람들이 듣든 말든, 찾아내고 알리고자 노력하는 것.


그렇다면 그 저널리즘을 무대 위로 가져온 '극'의 역할은 무엇일까. 극에서 해피엔딩을 보여주지 않고 배드엔딩을 택한 이유는, 그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진실을 밝히면 세상이 바뀐다"라는 메시지는 이 시점에는 거짓말에 가깝기 때문에, 해피엔딩을 보여줬다면 오히려 이 극의 논리가 무너진다.


결과보다 행위 자체에 의미를 두는 저널리즘처럼, 이 극도 관객이 감동하든 불편하든 현실을 무대 위에 올리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한다. 극은 저널리즘의 논리를 그대로 채택했다.


여기서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이 극이 그 역할을 수행하는 방식에 있다. 무대에 스크린이 등장한다. 뉴스 화면이 실시간으로 흐르고, 영상이 연출의 일부가 된다. 무대 예술이 영상 예술과 구분되는 지점 중 하나는 실시간의 무대에 집중하게 만드는 힘인데, 이 극은 그 경계를 의도적으로 흐린다. 연극을 보면서도 드라마나 뉴스를 보는 것 같은 감각이 드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 연출은 관객에게 신선함을 주는 것과 동시에, 메시지의 묵직함을 의도적으로 덜어낸다. 만약 메시지를 기존의 무대 예술적 언어로만 밀어붙였다면, 극장을 나오는 발걸음은 훨씬 무거웠을 것이다. 하지만 스크린을 활용한 연출과 중간중간의 유머러스한 요소들은 관객이 너무 거북하거나 부담스럽지 않게, 이 메시지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든다.

 

알고리즘과 콘텐츠의 범람이 사람들을 편안하게 만들어 사유를 막는다면, 이 극은 그 방식을 역이용한다. 관객이 이미 익숙한 영상의 언어로 들어오게 한 다음, 그 안에서 사유를 촉발한다. 저널리즘과 뉴스라는 테마를 오히려 더 효과적으로 살리면서, 메시지를 퇴색시키지 않고 지금의 관객에게 닿게 할 수 있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KakaoTalk_20260415_013516294_04.jpg

 

 

극은 알리는 것으로 역할을 다한다고 했다. 이 극도 그렇게 역할을 다한다. 무겁지 않게, 그러나 분명하게.


나는 이 극이 전하는 질문에 여전히 답하고 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고, 무엇을 보지 못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문제라는 것을, 나는 아직 느끼고 있는가.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