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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인간이 바라보는 인간 [전시]

티노 세갈이 전개하는 비물질적 작품, 그의 한국 첫 개인전

by 이하영 에디터
2026.04.14 12:56

 

 

연극은 우연의 예술이다. 배우는 매일 같은 무대에 서지만, 상대 배우와의 호흡 혹은 관객의 수에 따라 느껴지는 공간감 등 다양한 요소로 인해 날마다 다른 감정을 느끼고 대사를 내뱉는다. 관객 또한 마찬가지다. 오늘 공연은 결코 어제 공연과 같을 수 없다. 그리고 그날의 공연은 기록되지 않는다.


함께 연극을 하는 친구와 전시를 보러 갔다. 연극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 전시를 좋아할 거 같다며 추천을 받았다고 한다. 사진도 영상도 찍을 수 없고, 순간적인 이미지로 구성된 비물질적 전시. 브로셔나 보도자료 외에 전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공식 기록은 전무하다. 한남동에 위치한 리움미술관에서 진행되는 티노 세갈의 한국 첫 개인전이다. (이 전시는 오는 6월 28일까지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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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리움미술관은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 장 누벨, 렘 쿨하스가 합심하여 설계한 독특한 현대 건축물로, 입구에서부터 공간이 주는 무언의 시적 이미지가 강하며, 전체 공간의 개방감이 좋다. 특히 해당 전시가 진행되는 M2는 지하와 1층의 천장이 이어져 있어, 소리를 포함한 전시품이 있을 경우 어느 경로에 있든 모든 관람객에게 영향을 미친다.


티노 세갈(1976년 런던 출생)은 학창 시절 정치경제학을 공부하다 비물질적이면서도 동시에 생산적인 활동인 무용이라는 행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미술관에 전시된 인간이 관객에게 사물처럼 인식되는 인지적 현상을 우연히 경험하게 되었고, 현재는 미술관이라는 공간 안에서 해석자와 관람자가 관계를 맺으며 발생하는 상황을 매개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우연적인 상황’ 그 자체이다. 상황은 언제나 즉흥적이고 변화무쌍하게 흘러간다. 언제나 유연하게 흘러가는 인간의 삶과 비슷한 결이라고 볼 수도 있다. 대부분의 미술 작품은 어느 나라에서든 비슷한 미장센으로 전개되지만, 그의 작품은 어느 나라에서, 어떤 해석자를 통해 행위되는지에 따라 관객에게 다양한 경험을 줄 수 있다. 작가 본인 또한 관객의 반응을 통해 작품에 대한 실험을 지속할 수 있다.

 

전시 공간에 처음 발을 디디는 순간부터 행위는 시작된다. 입구에서 로비로 걸어 들어가는 중에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무반주로 노래를 부른다. ‘This Is So Contemporary!’


전시장 M2 입구와 박스 곳곳에 설치된 비즈 커튼 또한 작품이다. 도무지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작품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전시장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공간에서는 기간별로 달라지는 전시가 진행 중이다.


내가 방문한 기간에는 ‘이 입장(This Entry)’라는 작품이 전시 중이었으며, 무용수, 바이올린 연주자, 축구 선수, 사이클 선수가 해석자로 참여했다. 각각의 기술이 균형과 집중을 요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는데, 서로 교집합이 없어보이는 행위들이 하나로 맞물리는 과정을 보며 조화롭다고 느꼈다.


전시장 어느 곳을 향하든 ‘이 입장’의 바이올린 연주나 해석자의 노랫소리가 들려왔고, 모든 작품이 비즈 커튼 너머로 동시적으로 진행되었다. 단순해 보일 수 있는 행위일지라도 미술관이라는 공간과 예술이 지닌 비선형적인 시간 감각, 그리고 분열되는 텍스트와 이미지들이 나를 현실 공간에서 분리시켜 주었다.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할 수 없다는 점도 물론 이러한 인식에 도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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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노 세갈의 대표작 중 하나인 ‘키스(Kiss)’는 미술사에서 조각과 회화를 불문하고 다양한 형태로 그려져 온 키스라는 행위를 8시간 동안 퍼포밍하는 작품이다. 그의 작품에서 행위하는 사람들을 ‘해설자(interpreters)’라고 부르며, 한국에서도 이 작품에 참여할 해설자를 공개 모집했다.


‘키스’라는 행위가 가진 섹슈얼한 긴장감이 해설자와 관객 모두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정적인 공간 안에서 내밀한 행위가 공개적으로 펼쳐지는 동안, 인간 내면에 있는 감정이 흔들린다.


‘이 입장’을 관람하던 중에는 사이클 선수와 무용수가 관객에게 가까이 다가와 한 단어씩 주고 받으며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어떤 관객은 무용수와 함께 즉흥적으로 춤을 주고 받으며 하나의 장면을 구성했다.


직접 전시되어 행위하는 인간과, 행위를 지켜보며 반응하는 인간 모두 작품의 일부이자 참여자이다. 외부 자극에 취약한 인간은 너무나 우연적이며 즉흥적인 존재이다. 인간이 인간을 만나 생성되는 비물질적인 감각이 이 전시공간 안에서 팽창된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이러한 추상적 개념이 세상을 구성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티노 세갈의 작품은 느리고, 가깝다. 현대 사회는 너무도 빠르고, 거대하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우리가 무심코 놓쳐버리는 것들이 많다. 속도를 늦추고, 거리를 좁히면 이제까지 놓쳤던 무수히 많은 이미지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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