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이라고 하면 오래된 이미지가 떠오른다. 다소 고리타분함이 따라붙기도 하지만 검증된 것. 지속되는 것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단순히 오래된 것을 넘어 시대를 초월한 어떤 지점들을 보유한 작품들을 두고 고전이라고 칭한다고 한다.
시대에 맞게 각색되고 작품에 따라 변주되지만 심지처럼 변하지 않고 남아있는 것은 이야기가 가진 힘이다. 깊이있는 이해와 고민을 통해 잘 표현되기만 한다면 고전이라고 불리는 작품에는 인간의 마음을 뒤흔들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도 그 중 하나라고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적대 관계에 있는 두 가문의 청년들이 사랑에 빠지는 이 서사는 대표적인 금기의 플롯을 가지고 있다. 하면 안되는 것. 이뤄질 수 없는 것. 험난하고 어려운 것. 인간의 욕망은 자신을 제한하는 것을 향하는 성질이 있는 것 아닐까.
자신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뛰어넘어 간절히 바라고 원하는 것을 향하는 서사는 흥미롭다. 결국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은 죽음으로 치닫지만 둘의 죽음은 씨앗이 가문을 화해시키는 씨앗이 된다. 원치 않게 떨어진 두 사람이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은 감동적이다.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이 다시 한번 관객들은 찾는다. 지난 2009년 한국 초연 당시 프랑스 뮤지컬의 매력을 보여준 작품이 17년만에 한국에서 재연된다. 당시 관객 약 10만명이 동원된 작품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번 작품은 오리지널 라이선스 공연으로 프랑스 제작진이 직접 검수를 거쳤다고 전해진다. 지난 3월 24일부터 오는 5월 31일까지 서울 한전아트센터에서 공연될 예정이다.
로미오 역에 엔플라잉 유회승, 김희재, 더보이즈 뉴, 크래비티 우빈이 캐스팅됐고 줄리엣 역에는 뮤지컬 배우 송은혜, 장혜린 등히 함께했다. 벤볼리오 역에는 박민성, 오종혁이 머큐시오 역에는 이재진 등이 무대를 함께 준비했다.
공연이 막을 올리자마자 화려한 색채가 눈에 띄었다. 관객 입장에서는 양측 가문을 대비되는 색감으로 표현해 직관적이고도 선명하게 다가왔다. 큰 공연장에 걸맞는 무대장치를 웅장함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극중에서 로미오가 줄리엣을 만나는 장면을 연출할 때는 배우들이 실제로 높이가 꽤 있는 장치를 오르내리며 연기했다. 공연장을 가득 채우는 적극적인 무대장치 활용으로 작품의 주제를 보다 뚜렷하게 전달받을 수 있었다.
기억에 남는 연출도 꽤 있는 편이었다. 일행은 다소 갑작스럽다고 표현했지만 무도회에서 둘이 처음 사랑에 빠지는 장면에서 대사나 독백으로 설명하지 않는 점이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안톤 체호프는 장면을 쓸 때 설명하지 말고 보여주라는 말을 여러번 남긴 바 있다.
혼란스럽게 돌아가는 상황과 정신없는 음악 속에서도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둘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연출해냈다고 생각한다. 줄리엣의 유모나 주변 인물들에 집중한 장면들도 있어 둘의 사랑과 그를 둘러싼 환경들이 보다 입체적으로 느껴졌다.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작품은 상투적인 방식으로 연출되기 쉽다. 플롯이 유명하고 익숙한 만큼 관객들을 충분히 설득하지 않고도 쉽게 이야기를 전개시킬 가능성이 때문이다. 최소한 이 작품은 그러지 않고자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꾸준히 등장하는 가문 어른들의 이야기와 가문 사람들의 반응을 통해서 주인공을 둘러싼 상황을 전달하고자 했다.
때문에 뮤지컬 끝자락에서 둘의 죽음을 통해 두 가문이 화해로 나아가는 작품의 핵심 주제의식도 큰 어색함 없이 받아들여졌다. 더 깊게 공감될 여지는 있었지만 소중한 사람을 잃은 허망함과 충격을 통해서 다툼의 부질없음을 돌아보게 해준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왜 고전으로 불리는지 다시 한 번 느껴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개별 작품의 연출과 아쉬움은 차치하더라도 힘있는 서사의 작품을 뮤지컬로 만나볼 수 있는 기회는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음향 컨디션과 배우들의 노래는 좀 더 개선될 여지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고전은 그 이름만큼이나 유명하고 오래된 작품들인 만큼 이미 안다고 생각하도 쉽게 넘겨버리기 좋다. 이번 기회에 뮤지컬을 통해 고전의 힘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 비극적이지만 단순한 비극으로 끝나지 않고 희망과 사랑을 전하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오는 5월까지 한전아트센터에서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