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걷는다. 그러나 대개의 걷기는 효율적인 이동을 위한 물리적 노동이거나, 소모된 정신을 달래기 위한 가벼운 산책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 걷기는 방법론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모니터 앞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궁금증을 걷기라는 매개를 통해 인식하고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몸이라는 센서: 현상학적 관찰 도구로서의 걷기
방법론으로서의 걷기는 단순히 어떤 지점에서 다음 지점으로 이동하는 물리적 행위를 넘어, 세상을 인식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동적인 도구로서의 걷기를 의미한다. 일정한 걸음의 리듬은 뇌의 알파파를 자극해 고착된 사고의 틀을 깨뜨리는 지적 촉매제가 되고, 자동차로는 결코 볼 수 없는 미세한 풍경과 질감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현상학적 관찰 도구가 된다.
무엇보다 걷기는 정신적인 재구성의 과정이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철학자와 작가들에게 걷기는 '발로 하는 생각'이었다. 니체는 "모든 위대한 생각은 걷기로부터 나온다"고 했고, 칸트는 매일 같은 시간에 걸으며 사유를 정리했다. 복잡한 생각을 안고 걷는 물리적 전진 운동은 우리에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유능감을 주며, 머릿속의 어지러운 정보들을 중요도에 따라 자연스럽게 재배열한다. 이처럼 걷기가 사유의 숙성 프로세스가 될 때, 길은 단순한 통로를 넘어 하나의 실험실로 변모한다.


© 곽윤주, 《보우스트 막사 연대기》, 대안공간 루프, 2026
신체적 고고학
이러한 걷기의 방법론이 예술적, 사회적 실천으로 극대화된 지점에서 우리는 작가 곽윤주의《보우스트 막사 연대기(The Chronicle of Boost Barracks)》를 만난다. 지난 2월 27일부터 3월 31일까지 대안공간 루프에서 열린 이 전시는 특정 건축물을 출발점 삼아 반복되는 구조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한다.
작가에게 걷기는 단순한 이동이 아닌 도시를 알아가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이며, 식민이 응축된 도시의 서사를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능동적 매개체로 작동한다. 요컨대 발로 쓰는 신체적 고고학인 셈이다.
작가는 네덜란드의 군사 건축물 ‘보우스트 막사’를 중심으로 식민주의와 전쟁, 그리고 냉전의 구조가 어떻게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지를 추적한다. 1914년 나치에 대응하기 위해 건설된 이 막사는 인도네시아 독립 전쟁, 한국전쟁을 거치며 지속적으로 전쟁을 생산해왔고, 현재는 난민 보호소로 쓰이고 있다. 작가는 탈북 여성의 통역을 위해 방문했던 이곳에서 전쟁과 식민주의가 형태만 달리한 채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감지한다.

© 직접촬영 / <탈식민 실천으로서의 걷기> 현장, 대안공간 루프, 2026
탈식민 실천: 지배적 질서에 내는 균열
이처럼 몸으로 기록한 신체적 고고학의 데이터들은 연계 프로그램인 <탈식민 실천으로서의 걷기>를 통해 더욱 응축된 정치적 함의를 획득한다. 작가의 문제의식은 런던 ICA에서 접한 영화 <머나먼 베트남>(1967)에서 시작된다. 미국 제국주의를 비판하면서도 프랑스의 식민 지배에는 침묵하는 서구 지식인의 시선을 목격하며, 탈식민 담론마저도 특정 권력의 시선을 내포하고 있음을 간파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작가가 수행한 수라바야에서의 걷기는 각별하다. 1945년 네덜란드 식민 통치에 맞선 치열한 전투로 영웅의 도시가 된 수라바야는 네덜란드 건축과 일본 점령의 흔적, 민족주의 서사가 층층이 중첩된 공간이다. 작가는 지배적인 독립 서사나 국가 중심 역사관이 숨긴 비명과 한숨을 자신의 보폭으로 측정한다.
지표면 아래 켜켜이 쌓인 제국주의와 냉전의 공기를 발바닥의 촉각으로 읽어 내려가는 이 행위는 권위적 질서가 그어놓은 PC주의에 내제된 규범을 가로지르며 공간의 지배적 담론을 들여다본다.

© 직접촬영 / 《보우스트 막사 연대기》, 대안공간 루프, 2026
곽윤주가 보여주는 걷기는 파편화된 과거의 증언들을 현재로 이어 붙이는 실선 같다. 전시장에 구현된 동선 역시 짧은 걸음과 멈춤을 통해 관객이 이를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만든다. 이로써 관객은 단순한 관찰자를 넘어 통과적 걷기를 실천하는 주체로 변모한다.
그녀는 걷기라는 실천적 행위를 통해 이제껏 보아온 매끄러운 풍경 이면에 흐르는 역사의 맥박을 느껴볼 것을 제안한다. 걷기라는 이 평범하고도 위대한 행위가 어떻게 한 개인의 수행을 넘어 동시대적 성찰의 방법론이 될 수 있는지, 그 고요한 산책의 끝에서 우리는 비로소 마주하게 된다. 오늘 당신의 고민이 풀리지 않는다면, 그 질문을 들고 길 위로 나가보자. 역사와 사유는 발이라는 매개체로부터 시작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