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Review] 화폭 위의 역사, 위험한 초대장 - 위험한 그림들 [도서]

명화 한 점이 역사 교과서보다 강렬할 수 있을까. 이원율 작가의 <위험한 그림들>은 그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는 책이다.

by 김지현 에디터
2026.04.04 10:50

 

 

0.위험한그림들_커버표1jpg.jpg

 

 

현재 교보문고 역사 부문 13위에 올라 있는 도서 <위험한 그림들>은 단순한 미술 작품 이야기가 아니다. 역사 부문으로 분류된 만큼, 이 책은 그림과 맞물린 역사에 보다 진중한 태도로 다가간다. 그림을 통해 단순히 역사를 읽고 듣는 것이 아닌, ‘목격하고 체험하는’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는 저자의 경험담처럼, 우리 또한 그간 알지 못했던 역사의 이면을 낱낱이 들여다볼 수 있다.


책을 쓴 이원율 작가는 헤럴드경제 기자이자 미술 스토리텔러다. 이미 <무서운 그림들>이라는 책으로 만나보았던 저자인데, 미술 비전공자라는 점이 오히려 강점이 되어 전문 용어의 장벽 없이 누구나 그림의 세계로 빠져들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다. 덕분에 책은 학술적 깊이를 잃지 않으면서도 친절한 흡인력을 확보한다.


책은 전쟁과 정복, 철학, 종교에 이르는 다채로운 주제를 명화와 함께 펼쳐 보인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위험하다'는 키워드의 다층적 활용이다. 제목만 보면 그림 자체가 위험한 것처럼 들리지만, 실제로 읽어 보면 '위험'의 의미가 훨씬 넓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떤 그림은 그 안에 담긴 역사적 사건이 위험하고, 어떤 그림은 그것을 그린 행위 자체가 위험했다. 챕터를 넘길 때마다 '위험'이라는 단어가 새로운 결을 드러낸다.


저자의 스토리텔링 역량 또한 이 책의 큰 매력이다. 그림과 화가, 역사를 하나로 엮어 마치 미술 교양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그림만 봤다면 전혀 상상하지 못했을 당시의 상황을, 저자는 마치 드라마 속 대사처럼 생생하게 서술해 준다.

 

 

[크기변환]이반 4세와 그의 아들.jpg

<이반 4세와 그의 아들>(1885)

 

 

일리야 레핀의 <이반 4세와 그의 아들>(1885)은 책의 표지를 장식할 만큼 강렬한 비극을 담고 있다.

 

16세기 러시아의 차르 이반 4세는 임신한 며느리의 옷차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분노를 폭발시켰고, 이를 말리려던 황태자의 관자놀이를 쇠지팡이로 내리쳤다. 아들은 사흘 뒤 숨졌다.

 

레핀이 그린 이반 4세의 두 눈은 공포와 절망, 좌절과 죄책감으로 가득 차 있다. 절대 권력을 휘두르던 폭군이 자기 손으로 저지른 일 앞에서 한없이 무력해지는 순간이 이 그림 한 장에 응축되어 있다. 허공을 바라보는 이반 4세의 텅 비어버린 눈동자는 문장으로 확인하는 것보다 훨씬 직접적으로 그 비극의 무게를 전달한다.

 

 

131.jpg

<단두대로 향하는 마리 앙투아네트>(1793)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단두대로 향하는 마리 앙투아네트>(1793)는 또 다른 종류의 전율을 안긴다.

 

이 작품은 정식 회화가 아니라 다비드가 처형 행렬을 지켜보며 빠르게 남긴 스케치에 가깝다. 한때 유럽에서 가장 화려한 궁정의 주인이었던 여인이 거친 흰옷 차림에 두 손이 뒤로 묶인 채 수레 위에 앉아 있다. 짧게 잘린 머리카락, 굳게 다문 입술, 정면을 응시하는 눈. 간결한 선 몇 개가 전하는 것은 냉정한 기록이다.

 

토머스 팰컨 마셜의 <루이 16세와 국왕 가족의 체포>(1854)를 먼저 보고 나면, 다비드의 스케치가 더욱 깊이 파고든다. 두 그림을 나란히 놓으면, 체포에서 처형까지 마리 앙투아네트가 걸어간 길의 전모가 드러난다. 화려했던 왕비가 어떻게 초라하게 변해갔는지를, 역사의 문장이 아닌 화가의 시선이 증언하고 있는 셈이다.


<위험한 그림들>을 덮고 나면, 이 책에서 만났던 모든 그림들을 미술관에서 다시 한번 마주하고 싶어진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조용히 감상해 보고 싶어진다. 이 책이 독자에게 남기는 가장 큰 선물은 그림을 바라보는 태도의 전환일 것이다.

 

아름다움 뒤에 숨겨진 위험을 감지할 수 있는 눈, 정적인 그림 속에서 역사의 맥박을 느낄 수 있는 감각 말이다.

 

 

 

김지현.jpg

 

 

김지현이 에디터의 다른 글 보기
느릿느릿 굴러갑니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