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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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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채성(九龍寨城)’은 과거 홍콩 구룡반도에 위치했던 슬럼가다. 무질서하게 증축된 집들로 이루어진 15층 규모의 건물. ‘구룡성채’라고도 불렸던 그 복잡한 내부에는 수만 명의 주민이 밀집해 거주했다. 하지만 1994년 4월에 철거되어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그 흔적을 지금의 구룡채성 공원이 지니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영국과 중국 어느 나라의 영향력도 미치지 않았던 치외법권. 불법 거주자들의 도피처이자 범죄의 온상. 옥상 바로 위를 스칠 듯 날아가는 비행기의 소음과 눅눅한 습기 속에서도, 사람들은 엉킨 전선 사이로 희미한 전등을 켜고 살았다. 햇빛조차 들지 않는 내부의 어둠은 아이러니하게도 외부인들에게 묘하고 화려한 환상을 심어주었다.

 

 

 

환상과 현실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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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전공이 중어중문학이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구룡채성’이라는 장소가 주는 향수와 사이버펑크 특유의 이질감이 좋았던 건지. 나는 꽤 오래전부터 이 공간에 관심이 많았다. 일본어를 한 자도 읽지 못하면서 구룡채성 포토 북 일본어판을 구매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돌이켜보면 읽지도 못하는 일본어 해설을 제쳐두고 사진만 감상하려고 했던 자신이 우습기도 하다. 그건 아무런 맥락 없이 당시의 구룡채성을 나만의 관점으로 해석하려 했던 단편적인 시도였으니 말이다. 내 안의 그곳은 여러 매체에 의해 절묘하게 가공된 보기 좋은 세트장에 불과했다.

 

이러한 착각에 빠진 채 나는 대학교 2학년 2학기를 마치고, 바로 홍콩으로 향했다. 목적은 단 하나였다. 사라진 구룡채성의 터를 직접 보는 것이었다.

 

나는 구룡채성 공원을 여행의 마지막 코스로 남겨두고 아껴두었다. 어렴풋이 예감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현실의 그곳은 내가 상상하는 낭만적이고 매력적인 공간과 거리가 멀었을 것임을. 멋대로 구축해 놓은 이미지를 무너뜨리기 싫었던 것일까. 나는 여행 마지막 날 오후에 이르러서야 느지막이 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철거된 구룡채성의 흔적을 훑는 것이, 이곳이 영화 속 배경이 아닌 실제 삶의 터전이었음을 곧바로 일깨워주지는 않았다. 그저 과거의 이곳이 작품 속 주인공이 화려한 무술을 선보이던 무대가 아닌, 누군가의 집이자 가게, 학교, 즉 삶의 현장이었음을 암시할 뿐이었다.

 

 

 

삶의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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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인 인구 밀도와 위태로운 설계를 증명하듯, 구룡채성의 단면도는 인간과 도구와 건물이 한데 뒤섞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치 사람이 건물에 녹아든 것 같았다. 이것 역시 그 시절의 삶을 완벽히 재현한 것은 아닐 것이다. 동시대를 공유하는 게 아니라면 난 그들과 더 밀착할 수 없다. 삶을 가늠하기 어려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정교한 모형을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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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다 들어오는 조그마한 모형. 

 

당시에는 빛이 들어오는 집도 흔하지 않아 어둠 속에서 전기를 끌어다 살았다고 하는데, 나는 환한 대낮에 온갖 빛을 다 맞으며 우두커니 모형을 바라보는 것이 왠지 모를 허탈감을 가져온다고 생각했다. 이 작은 공간에서, 실제로도 거주민에게 그리 넓지는 않았을 아주 좁은 공간에서 각자의 삶을 꾸려나갔을 사람들. 물리적, 심리적 거리가 먼 존재들이 나의 눈에 들어올 리 없음을 알면서도 꽤 오래 그 모형을 바라보았다. 철거 이전과 모습이 매우 달라져 버린 구룡채성 공원은 여전히 그 터를 간직하고 있지만, 내게는 그곳에 존재했던 이들의 닿지 않을 기억이 더 명확한 흔적으로 다가왔다. 불현듯 내가 진정한 삶의 터를 발견할 일은 없을 것임을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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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무법지대이자 범죄의 소굴이라 여겨졌던 삶의 터전은 이제 한적한 공원이 되어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이곳에 머물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흩어졌을까. 진실한 삶의 흔적은 공간이 아니라 사람에게 남는다. 어쩌면 구룡채성의 진정한 터는 이 공원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언어로 읽을 수 없는 것들

    

환상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이었을까? 과거 홍콩을 상징하는 사진 중 하나는 착륙 직전의 비행기가 고층 건물 위를 아슬아슬하게 비행하는 장면일 것이다. 한때 내게 그것이 비현실적인 꿈속 풍경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누군가의 엄연한 일상이었다. 타인의 현실을 멋대로 나의 환상으로 치부했던 것이 지금 생각하면 어리석기도 하다. 그 시절의 삶이 고단했을지, 혹은 그 반대였을지 감히 추측할 수조차 없다. 각자 나름의 생이 있고, 그것을 내가 계산하고 결론을 내릴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구룡채성 포토 북을 꺼내 본다. 침대인지 책상인지 모를 좁은 곳에 기대어 공부하는 아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사탕을 포장하는 손길들, 낡은 TV 앞에 단란하게 둘러앉은 사람들. 한쪽에서는 손질 중인 돼지가 바닥에 누워있고, 다른 쪽에서는 경계가 모호한 생활 공간 탓에 하얗게 밀가루를 뒤집어쓴 전화기가 놓여있다.

 

여전히 나는 해설을 해독할 수 없다. 언젠가 내가 일본어에 능숙해지더라도, 사진 속 이야기를 온전히 번역할 수 있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사진 속 여러 생애는 내가 해석할 수 없는 언어를 품고 있다. 나는 영원히 이 언어를 해독하지 못할 것이다. 닿을 수 없는 그들의 삶을 내가 정의할 날이 오지 않을 것임을 안다.

   

내가 그리워한 홍콩은 누군가의 과거였고, 나의 환상은 그들에게 현실이었다. 나는 그 틈 사이에서, 끝내 번역되지 않을 삶의 무게를 가만히 짐작해 볼 뿐이다.

 

 

*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Wikimedia Commons),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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