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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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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시에는 옛 시만의 정취가 있다. 카페에서 읽는다 해도, 하얀 가구에 미드 센추리 인테리어의 모던한 카페가 아닌 형형색색 얼룩진 소파와 원목 테이블이 있는 빈티지 다방에서 읽어야 할 것만 같은 느낌,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아니라 믹스커피와 함께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갈꽃, 여름」(p.52)의 화자가 김사인을 만나고 하는 탄식 같은 시대성. “다방에 가서 꼭 그런다, 커피를 마시고 보리차에다 설탕을 통째로 부어 설탕물을 한 그릇 하고, 티를 낸다. 쯔쯧 저 티, 어떻게든 벗어던질 수 없는 업 같은 저 못 먹고 자란 티를!”


허수경 시인의 시에는, 국밥에 소주를 마시며 읽어도 될 것 같은 그런 고독이 존재한다. 그녀의 시는 취기와 함께하는 구절들이 많다. 「흰 꿈 한 꿈」(p.19) 속 “술병을 감추고 마시며 기어코 말하려고 (중략) 결국 마음이 먹은 술은 손을 아프게 한다”, 「바다탄광」(p.34)에서의 “마작을 하던 여관의 등불 아래 새벽 홰에 끓인 술을 돌려마시며 우억거리며 간밤 재게 먹은 술을 다 토해낼 때 그 어떤 표정!” 「쉬고 있는 사람」(p.36)의 “나, 술 마신다 / 이런 말을 듣는 이 없이 했었다 / 나, 취했다, 에이 거지같이”처럼.


술에 대한 직접적인 단어가 없더라도 자조적인, 자기연민 섞인 시구들은 취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몇 년 전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출제되었던 「혼자 가는 먼 집」(p.27)이다. 이 시는 한겨레가 설문 조사한 2024년 창비·문학과지성사 시선 출신 시인 80명의 ‘지난 100년, 가장 좋아하는 국내 시 5편’에서 공동 3위에 들기도 했다.

 

  

혼자 가는 먼 집 / 허수경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나 킥킥……, 당신을 부릅니다 단풍의 손바닥, 은행의 두갈래 그리고 합침 저 개망초의 시름, 밟힌 풀의 흙으로 돌아감 당신……, 킥킥거리며 세월에 대해 혹은 사랑과 상처, 상처의 몸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의 달과 별……, 킥킥거리며 당신이라고……,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기대 마음의 무덤에 나 벌초하러 진설 음식도 없이 맨 술 한 병 차고 병자처럼, 그러나 치병과 환후는 각각 따로인 것을 킥킥 당신 이쁜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는 참혹……, 그러나 킥킥 당신

  

 

문장 사이사이 ‘킥킥’이라는 특이한 시어를 사용했다. 반복되는 킥킥대는 웃음은 그리움을 서술하는 문장과는 반어적으로 작용한다. 그 킥킥거림과 함께 기어코 계속 당신을 부르며 슬픔에 관한 마음을 표현하는, 다소 어려운 시.


난해한가? 심오한가? 아닌가? 이해하기 어렵다고들 하는데, 나는 이해하려 하지 않고 외려 있는 그대로 느낀다. 시를 쓰는 감정, 고독인지 허무인지 모를 그 감정을 그대로 느끼며 시를 읽는다. 차라리 취한다면 더 잘 느껴질 것 같은 그런 감정들.


절망적인 일에 술을 마시고 울다 못해 웃어본 적이 있는가? 너무 슬퍼서 웃음이 나온 적이 있다면, 그런 자신이 미친 것처럼 느껴진 적이 있다면. 떠나간, 잃은 당신의 부재에 슬퍼하는 감정과 세월의 여실함,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도, 무를 수도 없는 참혹을 통한 포기와 비슷한 수용을 본다.


이런 허수경 시인의 시에는 전반적으로 묘한 우울과 상실감, 그리고 스러져가는 몸을 붙들고 마음으로 하는 넋두리가 있다. 다음은 「정든 병」(p.17)과 『혼자 가는 먼 집』(문학과지성사, 1992) 뒤표지에 실린 글이다.


  

정든 병 / 허수경

 

이 세상 정들 것 없어 병에 정듭니다

가엾은 등불 마음의 살들은 저리도 여려 나 그 살을 세상의 접면에 대고 몸이 상합니다

몸이 상할 때 마음은 저 혼자 버려지고 버려진 마음이 너무 많아 이 세상 모든 길들은 위독합니다 위독한 길을 따라 속수무책의 몸이여 버려진 마음들이 켜놓은 세상의 등불은 아프고 대책없습니다 정든 병이 켜놓은 등불의 세상은 어둑어둑 대책없습니다

  

  

악기만 남고 주법은 소실되어버린 공후를 본다. 体만 남고 用은 사멸되어버린 악기, 썩어 없어질 몸은 남고 썩지 않는다는 마음은 썩어버린 악기.


악기는 고정된 세계의 현현이다. 주법은 이 현현을 허물어뜨리려 한다. 그러나 주법은 진동의 미세한 입자를 시간 속에 끼워넣으며 악기의 경계와 세계의 경계를 건드릴 뿐인데 이 건드림, 이 건드림이 직조해내는 무늬, 진동의 미세한 입자들이 뿜어내는 숨과 그 숨의 웅숭그림이 천변만화하는 세계.


나는 마음이 썩기를 원한다. 오로지 몸만 남아 채취되지 않기를, 기록되지 않기를, 문서의 바깥이기를.


이것이 마음의 역사다. 그 역사의 운명 속에 내 마음의 운명을 끼워넣으려 하는 나는 언제나 몸이 아플 것이다.

  

 

이들 글 중에서도 뒤표지의 산문은 내가 좋아하는 「불우한 악기」(p.12)와 동일한 악기 모티프를 가졌다.

 

  

불우한 악기 / 허수경

 

불광동 시외버스터미널

초라한 남녀는

술 취해 비 맞고 섰구나


여자가 남자 팔에 기대 노래하는데

비에 젖은 세간의 노래여

모든 악기는 자신의 불우를 다해

노래하는 것


이곳에서 차를 타면

임금 이천 원으로 당도할 수 있는 왕릉은 있다네

왕릉 어느 한 켠에 그래, 저 초라를 벗은

젖은 알몸들이

김이 무럭무럭 나도록 엉겨붙어 무너지다가

문득 불쌍한 눈으로 서로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


굴곡진 몸의 능선이 마음의 능선이 되어

왕릉 너머 어디 먼데를 먼저 가서

그림처럼 앉아 있지 않겠는가


결국 악기여

모든 노래하는 것들은 불우하고

또 좀 불우해서

불우의 지복을 누릴 터


끝내 희망은 먼 새처럼 꾸벅이며

어디 먼데를 저 먼저 가고 있구나

  

 

쉽고 예쁘장한 단어보다 어렵고 힘든 단어들을 사용하는 능력, 그리고 그런 말들까지 애처로울 정도로 쓸쓸하면서도 아름다운 시구로 만드는 어휘 구사력이 돋보인다.


해설에서 “허수경의 시에는 멈출 곳 없어 헤매는 유랑 가수의 마음이 그려내는 지도가 들어 있다.”라고 했다. 그렇지, 가수에게 악기란 몸이고 이는 그것을 비유한 것이다. 악기는 몸, 노래는 마음. 몸이 썩고 마음이 남는 것이 아닌, 불우를 다해 마음 썩을 때까지 노래하고 남은 몸은… “이봐요 아가씨 / 당신은 이 도시에서 몸부터 먼저 헐릴 거야 끝내 마음은 가지고 다닐 수 없이 무거워지겠지 벌써 저녁이 끔찍한가” 「표정1」(p.66)의 구절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품는, 염세마저 품는 허수경 시인의 어떠한 감성이 있다. 고독을 느끼면서도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품. 어쩌면 너무나도 큰 허무로 인해 모든 것을 포기한 것일까, 싶다가도 다시 희망을 찾는다.


「봄날은 간다」(p.71)를 본다. “사카린 같이 스며들던 상처야 / 薄粉의 햇살아 / 연분홍 졸음 같은 낮술 마음졸이던 소풍아 / 안타까움보다 더 광포한 세월아 // 순교의 순정아 / 나 이제 시시껄렁으로 가려고 하네 / 시시껄렁이 나를 먹여살릴 때까지” 부드러우면서 날카롭고 허무와 해탈이 공존하는 듯한 구절들을 본다. 모든 것을 소진하고서 ‘시시껄렁’으로 향한다는 것은 「혼자 가는 먼 집」에서 당신을 이야기하며 ‘킥킥’대는 것처럼 화자의 정신적 생존 방식으로 읽힌다.


그런 허수경 시인을 그리며 나는 「늙은 가수 — 뽕짝의 꿈」(p.54)을 읽는다. “나 어느 모퉁이에서 운다네 / 나 버려진 거 같아 나한테마저도…… // 내일의 노래란 있는 것인가 / 정처없이 물으며 나 운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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