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희일비하지 마라."
일희일비(一喜一悲)는 상황에 따라 기뻐했다가 슬퍼하며 감정이 변화하는 것을 뜻한다. 우리 아빠는 내게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말을 자주 한다. 특히 최근에 많이 들은 사자성어이다. 1월에 일복이 있었고 2월에는 부산 여행길 우연히 들른 카페에서 아주 맛있는 블루베리 케이크를 먹었다. 덕분에 서울이 아닌 다른 곳에 마음 둘 곳을 찾은 기분이었다. 또, 내가 가장 좋아하는 크리에이터의 시사회 이벤트에 당첨되어 엄마와 둘이 영화를 보러 갔었다. 아트 인사이트 에디터 자격도 주어졌다. 수강 신청을 못 해서 제한 수업 신청을 넣은 강의가 전부 승인됐고, 동계 교외 근로를 그만두어 수입이 걱정되던 참에 영어학원 강사 자리 제안을 받아서 1시간 면접을 본 끝에 합격했다.
스물넷,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일이 잘 풀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이상함에 취해 한껏 달아오르기로 했다. 면접 합격 소식을 웃으며 전하는 나에게 아빠는 축하 인사를 건넸지만, 그도 잠시, 곧이어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단골 멘트가 들려왔다.
"너무 들뜨지 말고, 너무 기뻐하지도 마라."
한 번의 기쁨과 한 번의 슬픔. 그것에 웃지도 울지도 않는 삶이란 무엇일까. 활짝 웃는 나더러 너무 들뜨지 말라고 말하는 아빠 앞에서 양어깨가 수그러들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이쁜 사람보단 기쁜 사람이 되고 싶었기에, 아빠의 말이 조금 야속했다.
문득 아동 센터에서 중학교 1학년이 된 아이들을 가르치며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저는 그냥 기대하지 않으려고요. 기대하면 실망하잖아요."
반 배정 결과를 앞둔 아이가 한 말이었다.
"왜? 그래도 기대하며 살아. 그렇게 계속 기대할 게 있어야 살아갈 힘이 생기지."
기대하고 기대며 살라고 말해주면서도, 정작 나도 어려워하는 일인지라 거짓말을 한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무언가를 쉽게 바라고 기대하지 못하는 건 방어기제 때문인 것 같다. 나중에 가서 실망하고 상처받을까 봐 두려운 거다. 산타와 루돌프를 믿던 마음 같은 건 아무래도 어린이의 몫이니까. 그 정도로 해맑지 못한 우리는 기도가 어려운 어른이 되어간다. 왜 그럴까? 생각해 봤을 때, 순간의 일이 몰고 오는 감정을 애써 부정하기 때문이었다.
인생은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번갈아 일어나기에 당장 지금의 기쁨에 마음을 놓을 수 없고, 지금의 슬픔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의 기쁨에 지금의 마음을 놓고 싶다.
우리는 살면서 여러 악재와 횡재를 맞이한다. 반 배정 결과를 받아 든 아이는 친한 친구와 같은 반이 되었다고 즐거워했다. 거봐, 기대할 만하다니까-라고 얘기해줬지만, 다가올 내일의 풍경은 그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정작 개학하면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함께일 거라 믿었던 친구와 싸워서 멀어질 수도 있다. 거대한 행운이 한 톨 먼지만큼 초라해지는 걸 느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다가오는 좋은 일을 뼛속 깊이 새겨넣으며 몸부림치듯 즐기라 말해주고 싶다. 그러니 무엇이든 기대하고, 되지 않았을 때 실망하고 아파할 용기도 가지라 이야기하고 싶다. 인생을 살아보니 사람마다 행운과 불행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한테 종종 이런 말을 해주곤 한다.
"네 몫의 행운이 길 잃지 않길 바랄게. 설령 세상을 헤맨다 해도 곧 너를 찾아갈 거야."
우주에 내 몫의 행운과 불행이 몇 개나 남았는지 모르겠다. 그 까맣고 넓은 공간을 떠돌던 행운이 마침내 날 찾아왔다고 생각하니, 반겨주지 않을 수가 없다. 좋은 일이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데, 미래에 실망하는 게 두려워서. 혹은 겸손해야 한다는 말에 미소를 구기고 싶지 않다. 대신 눈물이 쏟아지면 쏟아지는 대로, 우울하면 우울한 대로. 모든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거다.
어떤 바람은 나를 '바라보게' 만든다. 쇼케이스 안에 케이크를,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지원 공고를, 학원 강사 자리를, 이력서에 깜빡이는 커서를 보게 한다. 그러니 묵묵히 시도하는 몸과 간절한 정신이 안겨다 준 한 번의 기쁨은 꽤 묵직하다. 멀리서 갈망하던 것이 마침내 내 소유가 되었으니 말이다. 남들 눈엔 손에 잡히지 않는 추상적인 결과라 할지라도, 내겐 소리가 들리고 냄새가 난다. 그것은 물컹이고 따뜻하며 어쩔 땐 딱딱하고 때론 시큼하고, 고소해서 온몸으로 머금게 된다.
한 번의 기쁨이 있으면 한 번의 슬픔이 올 테니, 지금의 나는 마음을 놓아주기로 다짐한다. 그건 다음 슬픔을 잘 맞이하기 위한 채비일 테다. 그래서 나는 선조들의 지혜에 감히 말을 얹어보려 한다.
우리 모두 일희일비해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한 번의 기쁨에, 지금의 마음을 놓아주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