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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빗속의 눈물로 사라지더라도 [영화]

인간다움에 대한 끝없는 질문, 블레이드 러너(1982)

by 전주현 에디터
2026.03.06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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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블레이드 러너(1982)'는 핵전쟁 후 2019년을 배경으로 한다. 음산한 거리에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붐비고 자동차가 하늘을 난다. 커다란 전광판에 동양인 모델이 등장해 인위적인 웃음을 짓는다. 그야말로 사이버펑크 세상이다.


중년 남자 데커드는 인파 속에서 고독해 보인다. 그는 은퇴한 블레이드 러너로 복제인간을 식별하여 사살하는 특수 경찰이었다. 식민지 행성에 보내져 전투하던 복제인간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지구로 잠입하자 그들을 죽이는 '블레이드 러너'가 생겨났다.


유전공학으로 만들어진 복제인간은 전투용, 비서용, 섹스용으로 쓰여왔고, 그들은 마치 스마트폰과 같은 수명을 갖고 있기에 4년이 지나면 작동이 멈춘다. 처음부터 성인인 채로 세상에 나와 '기억'이랄 것이 없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유독 '기억'에 집착한다. 자신들도 진짜 사람으로 대우받길 원하기 때문이다.


데커드는 '로이'를 포함해 지구에 남은 복제인간을 죽이라는 명을 받고 복직한다. 그가 처음으로 찾은 복제인간은 비서 '레이첼'이다. 그녀는 타인의 어릴 적 기억이 심겨 있기에 자신이 복제인간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레이첼이 정체성의 혼란이 와 고통스러워하자 데커드는 죄책감을 느낀다.


기억은 사람을 구성한다는 말이 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순간에 환희와 감동이 물결처럼 밀려왔는지. 후회스러워 다시는 반복하지 않으리라 다짐한 경험은 무엇인지. 취향과 추억, 지혜의 단서는 모두 ‘기억'으로부터 출발하여 현재의 '내'가 나아갈 방향을 그린다. 이렇게 삶의 한 단면들이 모여 현재의 나를 구성하는 것을 '자전적 기억(Autobiographical memory)'이라고 부른다.


첫사랑에 실패하여 흘렸던 눈물, 시험에 합격했을 때의 뿌듯함과 같은 감정은 ‘나'라는 사람의 서사를 형성한다. 우리는 서사 속에서 답을 찾고 정체성을 만들어간다. 자전적 기억이 매우 단편적인 복제인간은 사람들의 혐오까지 더해져 극심한 분노와 혼란에 시달린다.


만약 사고로 기억을 전부 잃는다면, 그때도 내가 '나'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혹은 나의 기억이 전부 이식된 것이었다는 걸 알게 됐을 때, 현재의 '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린 어떤 답도 쉽게 내놓지 못하고 그저 혼돈의 소용돌이 속에서 빙글빙글 돌아갈 뿐일 거다.


복제인간들은 끊임없는 질문을 떠안고 살아간다. 그들은 사살당할지 모른다는 공포에 떨며 살아야 하고, 만들어진 지 4년이 되면 죽는다는 한계에 몸부림친다. 복제인간 중 가장 뛰어난 '로이'는 성관계용으로 디자인된 애인과 함께 자신들을 만든 박사 타이렐을 찾아간다. 로이는 수명을 늘려달라고 요구하지만, 박사는 복제인간을 제작할 때 일부러 4년이라는 한계를 둔 것이기에 이제 와 바꿀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분노한 로이는 박사와 그의 조수를 죽이고 블레이드 러너인 '데커드'를 쫓기 시작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이 쌓여 자아가 생기면, 소멸의 공포가 크게 다가올 것이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들, 열망한 것들이 사라진다는 건 단순히 나를 삭제하는 데에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대개 무지의 공포 때문에 죽음을 무서워한다. 그런데 나는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상실감 때문이라 생각한다. 살아있는 내가, 지금 여기에서 보고 듣고 끌어모았던 것들을 전부 애타게 욕망하니까 말이다. 살아온 지 4년이 다 되어가는 복제인간 로이가 죽고 싶지 않아 박사를 찾아간 것도 위와 같은 이유에서 일 테다. 


데커드는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복제인간을 죽이지만 레이첼을 향한 연민과 성애적인 사랑을 키워나간다. 그는 레이첼을 인간 여성으로 대하고 지켜주고 싶어 한다. 그러다 로이를 직면한 데커드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유전 공학으로 만들어져 일반적인 사람보다 힘이 세고 지능이 뛰어난 로이. 아무리 특수경찰로 일해온 데커드라지만 그를 당해내기엔 역부족이다. 로이는 데커드를 당장 죽일 수 있는데도 도망갈 기회를 준다.


숨 막히는 카운트 다운에 데커드는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로이는 수명이 다해감을 느꼈으나 이를 악물고 그를 쫓는다. 이쯤에서 우리는 로이가 데커드를 어떻게 살해할지, 애인과 친구들을 죽인 이를 얼마나 잔혹히 심판할지 궁금해할 것이다. 그러나, 로이의 선택은 우리의 궁금증과 완전히 딴판으로 흘러간다. 그는 벼랑 끝에 매달린 데커드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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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외벽을 꽉 부여잡던 데커드, 힘이 풀려 빗속의 심연으로 떨어지던 그를 잡아올린 건 로이였다. 로이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데커드를 향해 말한다.

 

"공포에 쫓기며 사는 기분이 어때?"

 

그는 자신이 전투용 로봇으로 태어나 무엇을 보고 들었는지 늘어놓는다.


 

"All those moments will be lost in time."

그 모든 시간은 곧 사라지겠지.

 

"Like tears...in rain."

빗속의...내 눈물처럼.

 

"Time to die."

이제 죽을 시간이야.

 

 

빗속의 눈물은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빗방울인지 눈물인지 알려면 상대의 표정과 눈을 아주 자세히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2019년 지구에는 복제인간의 감정을 궁금해하고 헤아리는 이들이 없었다. 그들은 복제인간을 그저 위험한 범죄자, '폐기'처분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겨왔다. 로이가 애인과 친구를 아꼈듯 그들에게도 사랑과 우정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로이가 그토록 소중히 여겼던 평생의 시간(우리에게 4년은 매우 짧지만)은 세간의 관심 밖이었을 거다. 그가 전투에서 무엇을 보고 들었는지. 그가 쫓기며 사는 동안 어떠한 공포와 억울함에 떨어야 했는지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로이가 데커드를 살려준 이유는, 자신의 자전적 기억을 세상에 남기고 싶은 마음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또한 벼랑 끝에 매달린 이를 보며 측은지심을 느꼈을 테다. 사라지고 싶지 않다는 욕망, 세상에 더 남고 싶다는 생존 욕구, 그리고 연민까지. 이 모든 걸 전부 갖고 있는 로이가 인간이 아니라면 과연 무엇일까?


데커드는 로이를 살인 기계로만 보았기에 당연히 그가 자신을 죽일 거라고 생각했다. 정작 로이는 자비를 베풀었고, 데커드는 그를 통해 복제인간도 인간과 다를 바 없는 존재임을 마침내 받아들이게 된다. 데커드는 유일하게 수명이 정해지지 않았던 복제인간인 '레이첼'을 사랑하기로 다짐하고, 그녀와 세간을 떠나며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사람들은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섹스용, 비서용, 전투용같이 철저하게 존엄성을 짓밟는 방향으로만 복제인간을 만들었다. 같은 인간을 노예 부리듯 하는 것에는 윤리적, 도덕적인 책임을 느끼면서도 그들이 '복제'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비인간적인 행위를 묵인했다. 또한 그들이 자아가 생기는 걸 두려워해 4년까지만 살 수 있다는 한계를 두었다.


인간성(humanity)은 인간이 가지는 본질, 인간다움을 의미한다. 오늘날 인간성은 단순히 개인의 인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세상을 바꾸는 실천적인 존재를 '인간답다'고 이야기한다. 타이렐 박사와 데커드는 인간으로 태어났으나 인간과 별다른 바 없는 이들을 이용하고 죽였다. 반면 로이는 자신의 친구들을 죽인 데커드를 살려주었다. 로이는 더 이상 복제인간이 이용당하길 원치 않았고 수명, 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어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한 '실천적 존재'였다.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길 원한 그에겐 '인간성'이 있다.


삶의 진리와 자유를 갈구했던 로이. 인간과 평등해지길 원했으나 결국 죽음을 받아들이고 빗속의 눈물로 사라져 버린 로이. 그는 비록 복제인간으로 태어났으나 삶의 마지막 순간 인간으로서 죽음을 맞이했다.


진리, 선, 아름다움, 자유, 평등과 같은 가치가 빈곤해져 간다. 자율성을 가진 AI가 등장하면서 인간이 설 자리는 좁아지고 있다. BT 산업이 활개 치는 가운데, 인간다움을 고뇌하는 시간조차 낭비로 여겨진다. 4차 산업혁명 시대, AI는 인간의 도구나 조수가 아닌 인간을 능가하는 자율적인 존재로 성장해 간다. 그 가운데 인간이 AI와 결합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올 것이라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 속에서도 채울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건 바로 인간 이해의 불충분성이다.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해 우리는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인간다움을 고찰하며 세상의 '더 나은 진리'라는 대륙을 찾기 위하여 오랜 항해를 떠나야 할 것이다.


비록 우리가 평등과 진리를 찾는 과정이 빗속의 눈물처럼 사라지는 시간이라 할지라도, 그 눈물은 비와 함께 새싹을 틔울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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