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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 ]에게 부치는 사과문 [문화 전반]

한때는 내게 명왕성이었던 존재에게

by 김지연 에디터
2026.03.06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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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 1930년에 발견되어 태양계의 9번째 행성으로 정의되었었다. 그리고 2006년, [ ]은 태양계 행성에서 제외되었다. 국제천문연맹의 행성 조건에 맞지 않기 때문에 이것은 우리에게 당연한 절차였다. [ ]은 행성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왜소 행성으로 분류되었다. [ ]은 ‘명왕성’이라는 이름을 잃어버리고 ‘134340’이라는 번호를 부여받았다.

 

‘명왕성’이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빼앗은 것은 모두 인간이다. 인간이 그것을 발견한 1930년, 그리고 이름을 빼앗고 번호를 부여한 2006년. 바깥의 시기에는 [ ]이 [ ]가 아니게 되는 걸까? 명왕성이 명왕성일 수 있는 순간이 고작 76년이었을까. [ ]은 언제나 [ ]이었다. 인간의 생보다 더 길게 [ ]일 것이다. 이름은 사실 필요 없다. 이름이 필요한 건 우리 인간뿐이다.

 

쫓겨난 과거의 행성. 인간의 분류 체계 아래에 놓인 134340. 우리는 [ ]을 외로운 존재로 규정하기까지 한다. 차가운 얼음으로 뒤덮인 암석 덩어리. 이름을 멋대로 갖다 붙인 인간으로서, 우리는 [ ]을 대했던 방식에 대해 되짚어보게 된다.

 

우리에게만 필요한 이름과 의미로 [ ]에 마음을 기대어 온 시간에 대하여.

 

 

 

기억의 파편을 저장하는 공간으로 부른 것에 대한 사과: 명왕성에서 온 이메일(장이지)


 

 

안녕, 여기는 잊혀진 별 명왕성이야.

 

여기 하늘엔 네가 어릴 때 바닷가에서 주웠던 

소라 껍데기가 떠 있어. 

거기선 네가 좋아하는 슬픈 노래가

먹치마처럼 밤 푸른빛으로 너울대.

그리고 여기 하늘에선 누군가의 목소리가

날마다 너를 찾아와 안부를 물어.

 

...

 

있잖아, 잘 있어?

 

네가 쓰다 지운 메일들이

오로라를 타고 이곳 하늘을 지나가.

 

...

 

네가 쓰다 지운 울음 자국들이 오로라로 빛나는,

바보야, 여기는 잊혀진 별 명왕성이야.

 

 

‘명왕성’이라는 이름의 [ ]이 기억 속 잊힌 별로 서술되는 작품이다.

 

사실 명왕성은 스스로 빛을 낼 수 없어서 별이라고 할 수 없다. 다만 이 작품에서, 그리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러한 과학적 정의가 아니다. 우리가 그것에게 ‘별’이라고 이름을 붙여주면 그것은 우리에게 별이 된다.

 

우리는 명왕성의 먼 거리에 기대어, 차마 버리지 못한 기억의 파편들을 그곳에 보관한다. 여러 조각을 모아놓은 기억의 저편은 ‘명왕성’이라는 이름을 통해 우리에게 더욱 멀게 느껴진다. 그것이 한때 태양계에서 지구와 가장 멀리 떨어진 행성이었기에 그런 것일까. 우리는 물리적 거리를 심리적 거리로 변환한다. 표면을 뒤덮은 질소 얼음은 마치 오랫동안 찾지 않아 쌓인 먼지처럼 느껴진다.

 

잊힌 별 명왕성은 ‘너’에게 있어 잊힌 공간이다. 가치를 잃은 건가 싶지만 누가 잊었다고 해서 그 존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너’의 기억 또한 그렇다. ‘너’가 잊었다고 해서 그것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너’가 잊은 것에 대해 누군가가 계속해서 안부를 묻는다. 그것은 대상이 존재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쓰다 지운 메일, 지나간 고백. ‘너’를 향한 묘사가 흘러오는 그곳은 바로 명왕성이다.

 

 

 

상실된 관계의 비유로 바라본 것에 대한 사과: 134340(방탄소년단)


 

 

나에겐 이름이 없구나

나도 너의 별이었는데

넌 빛이라서 좋겠다

난 그런 널 받을 뿐인데

무너진 왕성에

남은 명이 뭔 의미가 있어

 

아직 난 널 돌고 변한 건 없지만

사랑에 이름이 없다면

모든 게 변한 거야

 

넌 날 지웠어 넌 날 잊었어

 

-

 

us는 u의 복수형일 뿐

어쩌면 거기 처음부터

난 없었던 거야

 

 

‘명왕성’, 그리고 '134340'이라는 이름의 [ ]이 인간관계 속 상실에 비유로 묘사되는 작품이다.

 

가사 속 ‘나’는 마치 명왕성처럼 자신이 상대에게 잊히고 지워졌다고 생각한다. 이름이 없다면 모든 게 변한 것이라고 여긴다. 이것은 생각의 주체가 인간이라서 가능한 발상이지 않을까 싶다. 진정으로 명왕성이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을까? 인간에게 명왕성은 그저 하나의 문학적, 예술적 대상일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 인간은 명왕성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줄 생각이 없을지도 모른다.

 

us는 u의 복수형일 뿐, 명왕성은 처음부터 거기에 속하지 않았다. 속한 적이 없었으나 인간의 언어로 이름을 부여받아 잠시 소속된 것처럼 보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무너진 왕성에 명(名)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노래는 묻는다. 사실 처음부터, 이름은 의미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름의 유무와 상관없이, 명왕성이 우리에게 소속된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 말이다.

 

 

 

감정의 무덤으로 인식한 것에 대한 사과: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 5화 – 망자의 한(원작: 마츠모토 레이지)



 

회한의 혹성 명왕성은 많은 사람들의 시신이 묻혀있는 우주에서 가장 슬픈 곳이다. 

형체 없이 떠돌며 얼음 속에 갇힌 자신의 몸을 되찾으려 애쓰는, 우주에서 가장 슬픈 기억이다. 

 

 

‘명왕성’이라는 이름의 [ ]이 회한(悔恨)의 혹성으로 묘사되는 작품이다.

 

우주여행을 떠났던 사람들이 이곳에 오면 태양계를 떠날 엄두가 나지 않아 도중에 여행을 포기하는 곳. 여행 중 죽은 사람들과 기능을 다한 기계 인간들이 묻혀있는 곳. 뉘우치고 한탄하는 천체. 그곳은 바로 명왕성이다.

 

별 전체가 거대한 얼음 묘지. 우주에서 가장 슬픈 곳. 이곳을 떠나면 정말로 태양계를 떠나는 것. 우리는 가본 적 없는 명왕성을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마음의 고향 정도로 여기고 있다. 명왕성은 인간을 위한 공동묘지가 되어주었다. 정확하게는, 인간이 명왕성을 공동묘지로 만들었다. 우리는 그곳에 수많은 의미를 묻어두었다.

 

 

 

[ ]을 위한 마지막 변명


 

나는 끊임없이 [ ]을 명왕성, 134340, 암석 덩어리 등 여러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이름은 존재에 대한 증명이 아니지만 나는 이름 없이 대상을 묘사할 수 없다. 인간에게 존재를 특정하는 방법은 ‘이름’뿐이다.

 

얼음으로 뒤덮인 표면. 극단적으로 낮은 온도. 태양계에서 가장 먼 행성이기도 했던 과거. ‘134340’이라는 또 다른 ‘이름’. [ ]은 ‘잊힌 존재’로 우리에게 영영 잊히지 않는다. 한때 태양계에 속했던 행성이지만 지금은 ‘인간’에게 버려진 돌덩어리. 인간은 여전히 그것에 자신을 투영하고 있다. 우리의 대상은 언제나 그대로였을 자신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 없다.

 

이 글은 사과문이라는 이름의 변명이다. 나조차도 [ ]을 나의 시선 안에 가두고 있기 때문에. 우주 속을 부유하는 하나의 왜소 행성은 나라는 인간에게 일방적으로 또 다른 의미를 부여받았다. 내가 [ ]을 어떻게 인식하든지, 여러 이름의 한 ‘존재’는 인간이 닿을 수 없는 먼 곳에서 궤도를 돌고 있을 뿐인데 말이다.

 

닿을 리 없는 일방적 사과를 전하고자 한다. 명왕성이자 134340이자 암석 덩어리이자 우주의 일부로 존재하는 [ ]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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