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누칼협? 알빠노? [문화 전반]

밈으로 보는 사회 #1
글 입력 2023.11.08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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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밈으로 보는 사회>

 

리처드 도킨스가 그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처음으로 도입한 말인 'meme'은 지금은 인터넷 짤방(사진), 드립(농담) 등에 가깝게 사용되고 있다. 원래의 뜻은 대를 이어 내려오는 문화적 요소의 총칭인데, 그렇다면 밈에 대해 다루는 것은 문화 전반에 대한 '오피니언' 기고로서 매우 적합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21세기, 나아가 2020년대의 사회문화 전반의 flow는 실제로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가장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만큼, '인터넷 밈'이라는 단어는 '밈'의 하위로 시작하여 사실상 거의 완벽한 전체집합이 되어가고 있지 않은가.

 

미리 이야기하건 필자는 완벽히 평범한 20대 중반의 청년이다. 사회문화 전반에 대해 박식한 교수와 박사들이 지천에 있는 이 세상에, 밈을 바탕으로 사회를 바라보고자 하는 시도가 때로는 우습고 오만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차가운 사회학이랄까?) 하지만 난 말했듯이 20대 청년으로서 흔히 '인터넷 밈'이라 불리는 것에 대해 어떤 저명한 교수보다도 노출되기 쉬운 환경에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정말로 평범한 20대 청년, 그것이 나이기 때문이다.

 

그런 틈새를 노려 필자는, 미흡하나마 밈이라는 창문을 통해 세상을 들여다보고 좁고 부족한 식견을 독자분들과 나누어보고자 한다.

 

*

 

'누칼협'이라는 말이 있다.

 

뜻은 의외로 간단하다. '누가 칼 들고 협박했냐?' 라는 말이다. 들어보셨을지는 나도 모르겠다. 회사원들의 커뮤니티인 블라인드 발 meme으로 알고 있는데 정확한 출처는 모른다.

 

그저 한 의문문의 줄임말인 밈 그 자체와 다르게 그 문장 자체는 일종의 함의를 고 있는데, 그 뜻은 이렇다. 아무래도 다양한 직업들이 저마다의 고충이 있다. 급여가 적다던지. work-life balance가 나쁘다던지...

 

그런 상황에서 '누가 그런 상황에 처하라고, 내지 그런 직업을/상황을 선택하라고 칼들고 협박했냐?', 즉 '네가 선택한 길이기에 항의할 여지가 없고 난 관심이 없다'는 표현 되시겠다. 같은 의미에서 나온 것이 바로 '알빠노?'이다. 네가 선택한 길, 네 고충 따위 내 알 바가 아니라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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밈이란 원래, 평평하다 생각한 땅 위에 흘려놓은 물과 같아서 가끔 생각지 못한 다양한 방향으로 뻗어나가기도 한다. 출발지와도 다르게, 이제 이 문제는 직업인들로만 한정지어지지 않게 되었다. 흔히 말하는 '누칼협' 식의 '쿨한' 인식은 사회 전반에, 특히 인터넷 등 음지를 기점으로 만연하게 되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됐을까?

무례한게 쿨해지는 시대가 왔다.

 

무례함과 조롱이 시니컬함과 쿨함과 동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생겨났다. 그들에게 온정적이고 긍정적인 말은 순진하고 멍청한 것이며 냉소와 비웃음은 쿨하고 멋있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뭐, 그런 착각과는 다르게 사실은 전혀 멋있지 않다. 남의 아픔을 비웃고 공감을 포기하는 것, 이미 무너져 힘들어하는 다른 약자를 비난하고 밟는 것은 가장 하기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기 어려운 것은 무엇일까. 가장 어려운 건 협의(俠意)를 가지는 것이다. 나와 무관한 사람의 회한에 슬퍼할 줄 알고 분노할 줄 알며, 내 일이 아님에도 이것은 정의가 아니다, 목소리를 낼 줄 아는 행동은 하기 어렵고 대단한 일이다. 지난날 전태일이 그랬고, 박한열이 그랬다.

 

그리고 그렇게 베푼 선의는 내가 가장 약할 순간에 그 업보의 수레바퀴를 몇바퀴나 돌아 결국 나를 향하기도 한다. 반대로 그들의 사정을 외면하고 비난한 댓가는 더이상 내 권리를 위해 싸워줄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은 세태로서 비정하게 돌아올 것이다.

 

나는 자신이 정말 냉철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며 자신은 남을 돕지도, 도움을 받지도 않고 살고 싶다는 멍청한 의견을 들을 때마다 화가 난다. 우리는 평생 강할 수 없으며 어떠한 면에서 약자가 되는 순간이 온다. 아니라고? 기억하지도 못할만큼 어릴 때, 그렇게 나약한 당신을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이 들어갔나. 그 어린 당신이 남의 아픔을 비웃을만큼의 소위 '능력자'로 자라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사회의 안배와 배려가 있었을까.

 

각설.

정말 화나는 것 중 하나는, 기득권의 존재에 대한 긍정과 무력감, 패배주의적 사상을 담은 수용은 과거에 비해서 훨씬 더 늘어났다는 것이다. 계층 상승에 대한 희망이 사그러듦과 동시에 '난 안될거야'라는 생각은 빠른 속도로 '우린 안될거야'로 이어졌다. 그까지면 다행이다. 옆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왜 노력하지?'라는 시선이 꽂히는 순간이 가장 큰 문제다.

 

현명한 선택은 가만히 있는거란 말이야, 너만 노력하지 말란 말이야... 공포 그자체인 혐오사회다. 그런 사상과 더불어 '누칼협' 식의 사고를 가진다는 말은 결국 무슨 의미이겠는가. 내 칼 끝이 그런 같은 약자를 향한다는 것이다.

 

물론 같은 서민의 잘못을 묵과하라는 의미로 오인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라는 의미다.

 

예로부터 인간 사회는 소수의 기득권 계층이 다수를 핍박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병탄의 역사에서 그나마 시민이 그 권리를 찾을 수 있었던 이유는, 약자끼리의 연대가 필요함을 이해하고 스크럼을 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뭉친 사람들이 그 언제 감히 약자로 불리었던가. 공동의 권리 보호를 위하는 움직임은 늘 그러한 스크럼 속에서 시작되었고 이를 부인했던 기득권은 빠르게, 혹은 늦게 그 끝을 맞이하게 되었다.

 

따라서 누구인지 몰라도 '누칼협'이라는 밈을 살포해대는 사람들은 자의건 타의건 기득권의 개 역할을 충실히 잘 해주고 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그건 절대로 멋있는 일이 아니다.

 

 

[김우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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