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너'라는 새로운 나 [만화]

글 입력 2023.11.25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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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불멸의 생이 가여워졌다. 열 두 살의 나는 <울버린>을 보며 죽지 않는다는 건 ‘세상에서 가장 강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작년의 나는 <불멸의 그대에게>를 읽으며 ‘불사’(주인공의 이름)가 가여워 끝내 2권으로 넘어가지 못했다. 고통과 죽음은 동의어가 아니며 시간이 고통을 무디게 해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불멸은 가학적이다.

 

그럼 이 불멸의 속성은 픽션에서 보통 어떻게 쓰이나? ‘울버린’을 거쳐 최근 재밌게 본 <무빙>의 ‘구룡포’와 <일곱개의 대죄>의 ‘반’이 그렇듯, 초 재생의 캐릭터는 보통 막무가내로 다루어진다. 어차피 죽지 않을 걸 아니까, 재생하지 못하는 다른 인물들을 위해 개의치 않고 앞장서는 캐릭터로 등장하는 것이 태반이다. 클리셰적으로, 불멸의 캐릭터는 언제나 희생한다. 이들에게 불멸은 상식을 벗어난 용기의 기원이 된다.

 

하지만 만약. 불멸의 존재가 위험을 무릅쓰고 싸우는 우리의 멋진 영웅이 아니라 그냥 고등학생이라면. 그러나 세상 모두가 이 고등학생의 희생을 바란다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죽지 않는 존재가 사실은 아이러니하게도 살고 싶어 발버둥치는 한낱 인간이라면. 바로 이 부분을 꼬집은 작품이 웹툰 <달로 만든 아이>이다.

 

 

 

인간, 영물, 귀신

 

아주 먼 옛날, 영물과 귀신은 인간을 잡아먹었다. 많은 인간이 희생되는 걸 원하지 않았던 ‘달아이’는 제 몸을 기꺼이 영물과 귀신에게 먹여 희생을 막고자 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이, 달아이는 영물과 귀신에게 입은 상처라면 그 어떤 것도 치료하는 능력이 있었다. 달아이는 달큰한 자신의 몸을 먹는 대신, 이외의 모든 인간을 사냥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렇게 이 세계는 달아이의 희생으로 균형을 찾았다.

 

‘늘박하’는 현대의 달아이다. 그러나 오랜 설화와는 달리 박하는 먹히는 것이 기껍지 않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귀신과 영물에게 먹혀왔지만, 아직도 여전히 박하는 아파한다. 그렇게 고통스럽게 먹히는 장면을 같은 반 친구 ‘설진도’가 목격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진도도 박하처럼 영적 존재를 볼 수 있었기에 박하와 함께 달아이의 비밀과 진실을 찾아내고자 한다.

 


달로만든아이.jpg

 

 

<달로 만든 아이>의 첫 번째 매력은 물줄기처럼 흘러가는 스토리이다. 얇은 개울을 따라 부유하다 보면 어느새 굵은 강을 만나 물살에 떠밀리듯이, 옴니버스 마냥 작은 사건들을 좇아가다 보면 그것들이 모여 자연스럽게 묵직한 에피소드로 이어지는 식이다. 인과관계를 짚어가며 시간 순서대로 풀어갔다면 자칫 지루했을 이야기를 새끼 이야기들로 적절한 서스펜스를 유지한다.

 

이를 테면 이런 것이다. 박하의 정체를 알아내고자 하는 에피소드가 시작되면서 ‘누나 귀신’과 ‘화리’를 만난다. 그 과정에서 누나 귀신의 과거 사인을 알아내는 것이 중요한 단서가 되면서 과거를 파헤치기 시작하고, 조력자 영물 ‘마사’의 등장을 기점으로 마사와 ‘은채’ 에피소드가 시작되며, 그 사이 꽃 피우는 남자를 만나 사이비 종교집단 ‘우리회’를 추격하고…

 

빽뺵한 에피소드들을 정신없이 따라가다 보면 어느샌가 모든 문제들의 해결점에 가까워졌음이 느껴진다. 단단히 꼬인 갖가지 사슬을 하나씩 건드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매듭의 중심을 찾게 되는 그런 감각이다.

 

<달로 만든 아이>처럼 길지 않은 호흡에 갖은 등장인물, 그에 따른 갖은 이야기들이 등장하면 집중이 분산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산만하고 그저 스토리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갈피를 잡지 못하는 만화 경험을 겪기 일쑤였다. 그러나 <달이 만든 아이>의 에피소드들은 결국 진도와 우리회의 정체라는 하나의 굵은 중심으로 귀결된다. 부산히 각자의 빠르기로 진행되던 에피소드들이 점차 한 데 모이며 큰 물줄기를 파악하는 순간(1부의 마지막 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비로소 그 모든 인물의 관계는 복선이 되고 이야기들은 효율을 찾아 교묘한 장치가 된다.

 

 

 

‘죄갚기’ 의 조건


  

 

“그 어떤 인간도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일의 고통은 알 수 없어. 그러니 그 고통을 이해한다는 것도 망상이야.” 

 

- <달로 만든 아이> 32화

 

 

작품의 중반부터는 ‘죄갚기’라는 설정이 등장한다. 자세한 서술은 없으나, 이는 한 인물이 받은 신체/정신적 고통을 정확히 계산해 이를 한 치 오차 없이 다른 인물에게 전달하는 영적 시스템으로 보인다.  ‘겪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도, 뉘우칠 수도 없다’라는 관점에서 시작된 죄갚기는 현재까지 스토리를 이끌어간 주된 설정 중 하나다.

 

죄갚기의 관점에서 박하는 까마득한 혼자였다. 남들은 볼 수 없는 걸 보는 탓에, 그리고 타고난 운명으로 인해 박하는 태초부터 누구에게 이해받기를 포기한 존재였다. 그런 박하에게 진도는 빛이었다. 처음으로 같은 세상을 보는 친구였고, 그의 존재를 알아챈 사람이었다. 진도라면 자신을 이해할 수 있다고 기대한 걸까, 아니면 진도만은 자신을 이해해주길 바란 걸까. 어떤 이유에서든, 박하는 진도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프다. 선하고 밝은 진도를 선망하고 동경하며 자신의 폭력적인 면모를 숨기고 싶어 한다. 진도 또한 박하를 아낀다. 그 이유는 앞으로 전개될 2부에서 주요히 다루어질 듯하지만, 박하를 끔찍이 아끼는 진도는 과보호 성향도 보일 정도다. 잔인한 운명을 타고난 박하를 어떻게든 해방해주고자 한다.

 

하지만 박하는 진도에게 위로받았나? 진도야말로 박하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같은 경험을 공유한 사람이 아닌가? 그렇다면 지금껏 진도는 한 번이라도 박하를 구원한 적이 있었나?

 

그렇지 않다. 박하가 작중 위로받고 이해받은 존재는 유일하게도, 그를 따라다니던 누나 귀신이었다. 박하와 같은 경험을 공유하기는커녕, 그 괴로움의 아주 원천적 존재, 다름 아닌 귀신이 박하를 안아주고 위로해준다. 박하는 아이러니하게도 귀신의 품에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엄마의 품을 떠올린다. 스산한 목소리와 어눌한 말투도 절망하는 박하를 구원하기에는 충분한 것이었다. 쓰러져 우는 박하를 안고 귀신은 말한다.

 

“아가 아가. 괜찮아 괜찮아. 사랑해 사랑해.”

 

 

 

너라는 나


 

‘죄갚기’의 논리대로 이해와 위로, 이런 것들의 전제는 ‘공유된 경험’이어야 한다면. 타인에게 이해받을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서로 다른 사람들이 공존하는 우리 사회에 이해와 위로를 기대할 수나 있을까.

 

뇌과학적으로 사랑은 ‘나’를 끊임없이 확장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본래 이기적인 인간의 뇌가 사랑을 이유로 남을 위해 희생하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를 또 다른 ‘나’라고 인식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진도와 누나를 떠올려보자. 똑같이 박하의 곁에서 그 아픔을 지켜본 두 인물이지만 진도는 집착이라는 방식으로 박하를 보호하려 하고, 누나는 박하를 사랑함으로써 보듬으려 한다. 그리고 박하는 공유된 경험이 있는 진도의 보호보다도 누나의 품에서 위로받는다.

 

누나는 작중 등장하는 그 어떤 영적 존재보다 매력 있고 인간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 어떤 면에선 진도보다도 더 사람 같은 인상을 준다. 비참한 자기 죽음, 그 진상을 파헤치는 것보다 박하가 자책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너의 슬픔을 나의 슬픔으로 생각하는 그 사랑 어린 마음이 누나를 그 어떤 존재보다 인간답게 만든다.

 

그 어떤 말이나 행동보다도 누나의 품에 눈물을 흘린 이유는, 인간만이 전할 수 있는 가장 인간다운 진심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위로는 공유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너를 나처럼 소중히 여기는 그 사랑이 전제되어야 가능한 것 아닐까. 나를 이해하기 위해 너도 똑같은 일을 겪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너를 나만큼 소중히 여기다 보니 자연히 너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 진정한 이해에 가깝지 않을까.

 

그렇다면 박하는 희망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는 박하를 사랑하고 있을 테니까. 하다못해 그 사람이 인간이 아니라 귀신일지라도. 이 세상의 누군가는 박하를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 더는 외로운 달아이가 아닌 늘박하 본인으로 평온히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박상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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