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멀어짐을 통해 가까워지는 - 도서 '해법 철학'

세상의 안과 밖
글 입력 2024.03.03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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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아학파'.

 

'금욕'과 '절제'에 관한 의견을 주고받는 학파로 알려져 있다. 이 분야에서 의견이 오고 간 역사는 비단 한 시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모든 철학이 그렇겠지만, '스토아주의'의 이야기는 사람과 사이에서 정의되고 그 안에서 배움과 가르침이 오고 간다.

 

재미있는 점은, 스토아 학문이 가진 특성이다. 스토아 철학의 내용은 고대의 그리스로부터 시작된, 여러 학자들이 삶에 임하는 자세에 대해 논한 모든 형태의 자료를 통틀어 포함한다. 말에서 말로 전해지다 글로 남게 된 이야기, 제자가 스승의 가르침을 필기한 자료 등. 남기고자 하지 않았지만 일상과 맞닿아 있는 곳에서 누군가에 의해 그 가치를 인정받고 이어져 온 학문이라고 볼 수 있겠다.

 

도서 '해법 철학'의 서문에서는 이러한 특성을 언급하며, '스토아 철학'이 품고 있는 많은 비판과 갈등의 여지 그 외에, 윤리와 심리학의 측면에서 스토아가 삶에 제시할 수 있는 방점들에 대해 책에서 소개하고자 한다고 말한다. 

 

그 소목차는 12가지로, 판단, 외적인 것, 관점, 죽음, 욕망, 부와 쾌락, 타인의 생각, 가치판단, 감정, 역경, 덕, 배움이 있다. 각 목차에는 여러 철학자들의 발언이 인용되고, 그 발언자의 삶이나 발언의 배경이 담기기도 한다. 읽다 보면 그동안 생각해왔던 '철학'이 가진 심오하고 이상적인 이미지를 다르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책의 내용은 앞에서 언급한 목차의 순서대로 진행이 되며, 초반부에서 볼 수 있는 내용이 가장 기본적이라고 할 수 있다. 후반부로 갈수록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형태였다. 그리고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보았던 부분은 '판단'과 '죽음'에 대한 내용이었다.

 

 
"어떤 외적인 것 때문에 힘들다면, 네가 힘든 이유는 그 외적인 것이 아니라 너의 판단 때문이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판단'은 '사건'의 이후에 발생한다. 정확히 말하면 사건의 발단 후 사건에 대한 인식, 그리고 인식한 것을 기반으로 한 '판단'의 순으로 한 인간의 인지가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겠다. 즉, 사건은 인간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건은 '외적인' 것이다. 존재 하나만으로 성립될 수 없는, 적어도 둘 이상의 존재가 영향을 미치는 상황의 맥락에 따른 발단. 그것에 대한 온전한 인지를 거치고서야 인간은 반응할 수 있다.

 

책에서 인용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말은 이 흐름에서 우리 삶에 적용이 가능하다. 인간은 그만의 판단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손댈 수 없는 수많은 외적인 것들에 대한 집착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 말인즉슨, 외적인 것을 외적인 것으로 놔둘 때 인간은 반응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뜻이다. 인간은 외적인 것에 대해, 즉 가해진 충격이나 일어난 사건에 대해, 내린 판단에 따라 일어나는 감정 또는 감각을 돌아볼 때 비로소 초연해질 수 있다.

 

이 부분에서 흥미로웠던 건, 이성의 영역으로 여기던 '판단'이 감각의 영역에 있다고 간주하는 '반응'의 기초라는 점이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MBTI에서 T의 성향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을 때 F의 감각을 가장 잘 조절할 수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이 이론이 세상만사에 모두 적용될 수 있을진 모르겠다만, 적어도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감정과 감각들에 대한 성찰, 관계 안에서의 책임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 유용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루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기, 흥분하지도 무감각해지지도 않기, 가식 떨지 않기. 이런 것들에 인격의 완성이 있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죽음은 앞서 짚었던 스토아 철학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 '판단'과 맞닿아 있는, 어쩌면 '판단'의 가장 궁극적인 단계가 될 수 있다. 정확히는, 죽음 그 자체에 대한 인간의 가장 큰 편견인 '두려움'에 스토아 철학은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느낄 짧은 고통 이후 우리는 삶을 통해 겪어야 했던 수많은 번뇌나 신체적 고통에 연연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사실. 그리고 죽음은 머무르는 것이 아닌 머물렀다 떠나는 것이라는 사실. 죽음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태어나기 전과 같이 그 어떠한 긍정과 부정의 판단에 예속되지 않는다는 사실. 마지막으로 찾아오는 '죽음'이라는 존재가 생명체 모두에게 보편적이라는 사실. 방금 언급한 사실들 외에도 수많은 논거들을 들어 '죽음'에 대해 인간이 가지는 맹목적인 두려움에서 벗어날 것을 독려한다.

 

책을 읽는 내내 이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들의 공통점이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그리고 판단했을 때, 적어도 이 책에서 말하는 스토아 철학의 주요 주장은 나와 외부를 분리하여 생각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었다. '절제', '금욕'보다도 한 차원 더 나아간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성찰하고, 군더더기 감각을 정리하는 능력을 수련한다. 나의 영향이 닿지 않는 것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방법을 배우고자 한다.

 

*

 

때때로 인간은 그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무언가로부터 고통받는다. 그리고 인간에게 고통을 선사하는 주체는 타인의 언행, 나의 몸과 마음을 힘들게 하는 '상황'이 될 때가 가장 많다. 이 상황에서 보통은 '내가 00으로 인해 고통을 받는다.'라고 단정 짓기 마련이다.

 

내가 나서서 해결할 수 있는 범주의 문제라면 상관이 없지만, 그게 아니라면 더욱 큰 고통을 마주하게 된다. 예를 들면, 나에 대한 헛소문이 퍼져 바로잡기 어렵다든가, 타인에게 기대하고 있는 언행이 있다거나,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를 내가 정할 수 없는 상황과 같은 경우 말이다. 그 경로를 지정할 수 없고 결과 또한 조정할 수 없을 때. 우리는 '해답이 없다'라고 판단하고 좌절하기도 한다.

 

책의 이름과 같이, 스토아 철학은 끊임없는 고통을 견뎌내는 삶 속 해법처럼 곁에 둘 수 있는 원리인 것 같다. 언제나 옳다, 또는 어느 곳에나 적절하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통제할 수 없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나의 마지막을 상상하며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멀어짐을 통해 가까워지기. 책에서 말하는 것은 언제건 한 번쯤 시도해 볼 법하다.

 

 

해법철학 표1.jpg

 

 

[유서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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