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중요성이 새삼 조명받는 시대다.
감사일기, 칭찬일기, 모닝페이지, 불렛저널…. 이름은 제각각이지만, 결국은 ‘기록’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인다. 해가 바뀌는 1월이면 어김없이 다이어리 코너에 사람이 북적이고, “올해는 꼭 써보겠다”는 다짐이 저마다의 새해 목표 목록에 오른다. 기록은 어느덧 자기계발의 기본값처럼 자리 잡았다.
나 역시 다르지 않다.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2026년의 첫 장을 펼치며 다짐했다. 이번에는 꾸준히 기록해보겠다고. 그런데 펜을 들자마자 문득 이런 질문이 스쳤다.
기록이라는 것, 왜 해야 하는 걸까?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그런 선택의 상황에서, 과거의 인물이 어떤 논리로 어떤 결정을 내렸고 그 결과가 어땠는지 기록되어 있다면, 그리고 내가 그것을 읽고 참고할 수 있다면 나의 선택은 훨씬 더 정교해지기 마련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많은 사람들은 역사서, 자서전을 읽는다. 하지만 그 모든 선택의 기록이 다 내가 쓴 것이라면? 이보다 더 정확하게 ‘나’를 반영해주는 해법서는 없을 것이다. 즉, 나만의 데이터베이스가 생기는 셈이다.
또, 우리는 보통 어제와 오늘이 비슷하다고 느끼며 우리 삶이 정체되어 있다고 착각하곤 한다. 하지만 1년 전의 일기를 읽어보면 비로소 알게 된다. 그때 내 미래를 완전히 암흑처럼 보이게 만들었던 고민이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심지어 무슨 고민이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을 때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럴 때 우리는 다시금 깨닫는다. 하루 하루 미미해 보였던 작은 발걸음이 모여 내가 이만치 멀리 걸어온 것이다. 다시 말해 기록은 내가 멈춰 있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영수증이다.
기록의 중요성은 이제 충분히 알겠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그런 당신을 도울 책이 한 권 있다. 제목부터 ‘기억하라(memento)’는 전언을 강력히 외치는 『메멘토 북』이다.
『메멘토 북』은 팀 에디테라가 만들고 출판사 임팩터가 펴낸 기록서다. 첫인상은 솔직히 압도적이다. 시중의 아담한 질문형 다이어리와는 결이 다른, 큼직한 판형과 만만치 않은 두께에 시작도 전부터 부담이 앞선다. 하지만 이 책은 의외로 다정하다.
1. 매일 쓰지 않아도 됩니다.
2. 마음이 가는 질문부터 시작하세요.
3. 낯선 질문에 당황하지 마세요.
4. 빈칸을 겁내지 마세요.
5. 오직 정답은 내 안에 있습니다.
6. 완벽하지 않아도 됩니다.
7. 다시 써도 좋습니다.
8. 아직 쓰지 않은 이야기를 스스로 만들어보세요.
9. 쌓아둔 기록은 나만의 아카이브가 됩니다.
10. 소중한 사람과 함께 작성해보세요.
이 문장들은 일종의 선언처럼 읽힌다. 기록은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며, 정답은 밖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는 고백. 그래서 이 책은 방법을 강요하기보다 태도를 제안한다. 내 마음대로 써도 된다는 것, 쓰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다시 써도 좋다는 것. 기록을 가로막던 완벽주의를 한 겹 벗겨낸다. 책장을 넘기면 생각보다 더 넓은 여백이 펼쳐진다. 당황스러울 만큼 비어 있는 공간. 그러나 이 광활한 여백은 공백이 아니라 가능성이다. 할 말이 생기면 적으면 되고, 떠오르지 않으면 덮어두면 된다. 질문은 방향을 제시할 뿐, 속도는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다.
이 책이 던지는 질문들은 만만치 않다. 가벼운 상상에서 시작해 어느새 마음 깊숙한 곳을 건드린다. 그동안 ‘나’라는 존재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본 적이 있었던가 되묻게 된다. 타인의 시선과 일정, 해야 할 일들에 밀려 정작 나 자신을 탐구하는 일은 미뤄두고 살지 않았는지.
부끄럽게도, 필자는 아직 나 자신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 심지어는 나 자신을 잘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가,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하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메타인지가 중요하다고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유튜브와 인터넷 서점 사이트에 검색해 보았었다. ‘메타인지 잘 하는 법’.
그러다 만나게 된 『메멘토 북』 덕분에, 이제는 나에 대해 내밀히 알아가 볼 수 있을 것 같다. 책의 두께와 크기만큼 내 마음도 든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