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라와 아그네스는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오래전 떠난 아버지를 마주한다. 동생과 달리 아버지가 편하지 않은 노라는 장례식 이후 너를 위해 쓴 각본이라며 영화 신작의 주연 자리를 제안하는 아버지의 제안을 매몰차게 거절한다. 그 역할은 구스타브의 영화를 감명 깊게 본 할리우드 스타에게 돌아가고, 오래전 세 사람과 어머니가 함께 살던 집에서 영화 준비를 하게 된다. 세 사람은 서로의 모습 속에서 오랜 세월 속 묻어둔 감정들을 하나씩 떠올리고, 한 편의 영화를 통해 이해할 수 없던 자신과 서로를 마주하게 된다.
<센티멘탈 밸류>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노르웨이 감독 요아킴 트리에의 신작이다. 2025년 개봉한 일명 ‘사누최‘는 코로나 시절 개봉영화임에도 불구하고 5만 관객 돌파라는 큰 성적을 거두었다. <센티멘탈 밸류>는 제78회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및 83회 골든 글러브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며 빠르게 관객들 사이에 입소문이 불고 있다. 위의 시놉시스를 읽어봤다면 느끼겠지만, 시놉시스 자체는 영화에서 굉장히 많이 다루는 가족의 단절과 화합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에 영화 자체를 크게 기대하진 않았다. 그러나 역시 영화는 활자를 통해서만 나타내는 예술은 아니기에 요아킴 트리에 감독 특유의 담담한 연출로 깊이 있는 아름다운 영화를 만날 수 있었다.
영화는 보이스 오버와 함께 카메라의 패닝(움직이는 피사체를 따라 배경을 흘려보내는 카메라 기법)과 달리(피사체 주변을 좌우 앞뒤로 부드럽게 움직이며 촬영하는 기법)를 통해 관객을 천천히 ‘집‘으로 자석처럼 당기듯 시작한다. 집 안에는 어린 노라와 아그네스, 그리고 젊은 시절의 구스타프와 아내가 한 가족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노라의 어린 시절 에세이가 ‘집’을 표현한 점을 이야기한다. 집은 사람이 많은 걸 좋아할까? 텅 빈 걸 좋아할까? 벽은 간지러움을 탈까? 아픔을 느낄까 등 여러 의문점들과 함께 어머니와 아버지의 싸움, 그리고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노라의 괴로움을 짧게 보여준다. 감독은 첫 장면을 통해 이 영화가 ‘집’에 관한 이야기 임을 강조하고 있다. 현재 시점에 이르러서 하나의 집에 살았던, 지금은 각자의 집을 이루고 살고 있는 세 사람, 아버지 구스타프 언니 노라 그리고 동생 아그네스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리고 100년 전 잘못 증축되어 벽 곳곳에 금이 가있는 집의 상태를 통해 세 사람의 관계를 간접적으로 나타내며 영화를 시작하고 있다.
보통의 가족 영화에선 1인칭 주관적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며 감정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데 센티멘탈 밸류는 정체 모를 보이스 오버를 통해 오히려 관객과 주인공들 사이에 간격을 두며 끝까지 이성적이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예를 들면 인트로 장면 중 아버지가 떠나간 후에 “집은 아버지의 소음을 그리워했다”라고 보이스 오버를 깔며 ‘노라’나 ‘아그네스’가 아닌 ‘집’이 그리워 했다라고 표현하여 간접적으로 두 딸들의 슬픔을 보여주면 서도 인물들에게 그 감정이 100프로 대입되지 않도록 말하고 있다. 이는 어쩌면 어릴 적 노라는 처음부터 아버지와의 오해를 풀고 싶어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보여주면서도 인물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도록 하는 효과를 가져오는데 그것이 ’노라‘라는 인물이 가진 캐릭터의 성격이기 때문에 그렇게 연출하게 된 것 같다.
’노라‘는 중요한 예술 학교를 지망할 때에도 자기 자신이 드러나는 에세이의 내용을 포기하고 유명 작품을 고를 만큼 자신에 대해 표현하지 않는 사람이다. 사랑하는 애인과 발가벗고 있어도 속내를 절대 말하지 않고, 성공한 연극배우로 큰 무대에 오르는 사람이지만 무대를 거부하는 등의 극도의 불안 증세를 갖고 있다. “누군가로 살아내고 나면 나를 더 알 수 있는 것 같아”라고 말하지만 정작 자신은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트라우마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자신에 대해 점점 잃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동생 ’아그네스‘는 언니와는 반대의 정서를 갖고 있다. 그녀 또한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상처가 있지만, 집에서 소음이 날 때마다 언니인 노라가 그녀의 곁에 있었다. 또 구스타프의 유명 영화에 배우로서 출연하며 언니보다는 아버지와 상대적으로 조금 더 교감을 나눈 추억이 있다. 그래서일까 아그네스는 어머니의 장례 소식을 아버지에게 알릴 만큼 그를 적대시하지 않았다. 그녀는 안정적인 가정 속에서 자상한 남편, 귀여운 아들과 함께 살아가며 동시에 노라 대신 집안의 일을 해결하는 현실 장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두 딸의 앞에 찾아온 구스타프는 현재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어릴 적 나치에게 고문 받던 어머니가 전쟁 종료 후 집에서 자살하면서 상처를 입은 그는 어머니를 기리고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를 만들었었다. 유명 영화제에서 회고전을 할 만큼 성공한 영화를 찍었던 그는 15년 만에 복귀작을 찍기 위해 시나리오를 배우로 활동 중인 큰 딸 노라에게 배역을 건냈지만, 그 자리에서 읽어보지도 않고 거절당한다. 한편 그런 그의 영화를 보고 감동받은 할리우드 스타 배우 ’레이첼‘이 함께 신작을 준비하기로 하는데, 그녀는 시나리오 속 인물을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감독에게 질문을 하다 어머니에 대해 물어보는데 구스타프는 단호하게 이 이야기는 어머니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말한다. 왜 구스타프는 수십 년 만에 만난 딸과 함께 이 영화를 찍고 싶어 했을까? 그 이유는 그가 노라와 마찬가지로 ‘예술을 하는 사람’이고 두 딸과 같이 자신 또한 ‘부모의 부재로 인한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트라우마는 어머니를 기리는 영화를 통해 극복하였지만, 울타리가 되어주었던 어머니를 잃은 혼란 속에 있을 두 딸이 오래전 자신이 주었던 아버지의 부재라는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게 될까 봐 이 시나리오를 쓰게 된 것이다. 한 집에서 정서적 교감을 이루던 가족이 오랜 세월 떨어져 살게 되더라도 예술을 하는 사람은 예술로서 자신의 혼란스러운 트라우마를 승화시켜야 비로서 자신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예로 들 수 있는 장면이 바로 마지막쯤에 아그네스가 언니인 노라에게 시나리오 중 한 대목을 가르키며 읽어달라고 하는 부분이다. 그 부분은 영화 앞부분에서 레이첼이 대본 리딩을 해보던 장면이었는데, 그때 레이첼은 눈물은 흘리고 있지만 인물의 생각까지는 간파하지 못한다. 여기서 이 리딩 하던 부분이 구스타프가 찍고 있는 영화에서 중요한 대목인 걸 알 수 있는데, 아그네스는 아버지의 그 어떤 설명 없이도 언니 노라에게 이 대목을 읽어달라고 짚어주며 단번에 아버지의 영화에서 정서적으로 가장 크게 중요하게 표현되고 있는 부분을 알아낸 것이다. 그리고 그 대목을 읽은 노라는 굳게 닫혔던 마음을 조금씩 열며 시나리오를 처음부터 읽게 된다. 그리고 그 둘은 말한다 “생각했던 그런 게 아니었어” 아버지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영화를 찍는다고 생각한 두 사람은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야 그가 자신들을 위해 이 이야기를 썼음을 깨닫게 된다.
예술은 구스타프의 마음처럼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들을 이해하게 해준다. 노라는 어린 시절 ‘집’을 에세이로 쓸 만큼 집에 대한 애정이 강한 사람이었고, 아그네스는 어머니가 쓰던 꽃병들을 버리지 못할 만큼 어머니를 사랑하던 사람이었다. 구스타프 또한 오랜 세월 동안 자녀들 곁에 있지 못했지만, 다시 한번 영화를 통해 자녀들에 대한 걱정과 사랑이 담긴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 한다. 그저 사물로서 자리할 수 있는 것들에 사람의 기억과 추억이 깃들게 되며 문화가 형성되고 그 문화를 통해 정서적으로 교감하며 사람들은 하나가 된다. 역사학자인 아그네스는 구스타프의 어머니이자 자신의 할머니인 ‘카린’의 나치 수용소의 기록과 사진을 보고 난 후남편에게 말한다. “사실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어, 그런데 같은 시대에 고문당하던 다른 사람들의 사진을 봐서 그런 걸까” 사진은 또 다른 예술이자 영화의 기본이 되는 장면이다. 우리는 역사처럼 알고 있는 사실들도 문화를 통해 접하게 되면 또 다른 정서적 교감을 이루게 된다. 마치 최근 개봉작 <왕과 사는 남자>를 통해 단종에 대한 역사를 다시 보고, 영월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센티멘탈 밸류>는 단순히 가족의 화합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 영화라는 예술적 공감을 통해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고, 또 다른 삶의 방향성과 관계의 성장을 나타내는 문화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이다. 누군가는 문화가 그저 돈과 시간이 많은 사람들의 취미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당신과 나 사이의 예술이 필요한 이유는 영화의 인물을 통해 내가 모르던 나의 모습을 보게 되고, 내가 알고 싶지 않았던 당신의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노라와 구스타프 그리고 아그네스의 아들은 함께 영화를 찍게 되고, 그 모습을 연기하는 노라를 보며 구스타프는 레이첼에게는 한 번도 말하지 않았던 말을 한다. “완벽해” 두 사람은 함께 살던 옛집은 아니지만, 세트로 지은 새집에서 촬영을 끝마친다. 그러고는 그 어떤 포옹이나 서로에 대한 말 대신 눈빛을 주고받으며 영화는 마무리가 된다. 세트장에서 임시로 지은 집은 뼈대만 남은 집이지만 오래된 집을 리모델링 한 것과 같은 하얀색으로 표현되고 있다. 마치 오랜 상처로 인해 멀어진 두 사람이지만 그래도 서로가 예전의 집에 대한 좋은 기억을 다시 하얗게 덮은 것처럼 표현된 것 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