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는 모순적인 감정이다. 사람들은 공포를 두려워하지만, 결국 그 무서움 때문에 또 다른 공포가 생겨난다. 으스스한 무언가를 피하고 싶어 하지만, 동시에 그곳에서 짜릿한 스릴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미지(未知)에서 오는 무지(無知)를 위협으로 느끼면서도, 결국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어쩔 수 없이 마음속에서 피어오른다.
단적인 예가 바로 초등학교다. 우리의 어릴 적을 돌이켜보면, 초등학교는 그야말로 온갖 괴담의 온상지였다. 특히 동상이 있는 학교라면 벗어날 수 없었던 ‘자정만 되면 피눈물을 흘리며 움직이는 동상’ 괴담. 과학실이나 양호실에 있는, 근육의 형태를 드러낸 빨간 마네킹이 돌아다닌다는 소문이나 4층 여자 화장실의 잠긴 네 번째 칸에서 누군가가 울고 있다는 소문 등 그 종류는 뻔하면서도 무궁무진했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에는 책을 읽는 모습의 아이 동상이 있었는데, 매일 밤 자정이 되면 그 아이의 눈에서 피눈물이 흐르면서 책이 한 장씩 넘어가고, 그 책장이 모두 넘어가는 순간 모두가 죽는다는 이야기가 쉬쉬하며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귀여울 따름이지만 그 당시에는 아이들 모두가 동상을 피해 다니던 기억이 난다.
이런 괴담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다양하다. 우선 인간의 본능적인 두려움을 자극하며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경우.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숲속에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어둠에의 두려움이나 모르는 사람이 자신의 목숨을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경계심 등이 그렇다. 반면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전략적으로 무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상황도 있다. 산속에 숨기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면 그 산에는 아주 무서운 괴물이 산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뿌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 모두도 아닌 제3의 경우가 또 하나 있다. 재미와 놀이를 위해 괴담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경우에는 가장 대표적인 집단이 하나 있다. 바로 SCP 재단이다.
SCP는 세계 여러 나라가 공유하는 오래된 괴담 창작 세계관이다. Secure(확보), Contain(격리), Protect(보호)의 각 첫 글자를 딴 약어로, 이름 그대로 이 세계에 존재하는 괴물들을 SCP 재단에서 잡아들여 확보하고, 민간인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격리하고, 그들을 보호한다는 설정이다. 우리나라보다는 외국에서 더 활성화되어 있긴 하지만 국내에서도 충분히 인기가 많고 유명해, 이를 바탕으로 하는 소설이나 만화, 게임이 나오는 등 IP 확장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SCP 재단이 관리하는 정체불명의 괴이들을 ‘SCP-00’식으로 일련번호를 붙여 부르는데, 사이트 이용자들은 누구든 자유롭게 자신의 상상력을 발휘해서 새로운 괴물이나 현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름, 특징, 생김새, 주의점 등 모든 것이 창작자의 마음대로고 원한다면 사진이나 그림도 만들어서 덧붙일 수 있다. 재미있는 점은 그렇게 만들어진 창작물에 대해 다른 사용자들이 평가를 남길 수 있도록 되어 있어서, 안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들은 SCP 세계관 속 하나의 설정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시스템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전 세계 수많은 창작자들이 머리를 모아 흥미로운 괴담들을 만들어내면, 그것들을 공유하고 모으고 쌓으면서 하나의 세계가 탄생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괴담은 아예 지어내진 경우도 있고 현실과 교묘하게 엮여 마치 진짜인 듯한 재미를 주는 것도 있다. 예를 들면 2006년에 행성의 정의가 새로 정해지면서 태양계 행성에서 퇴출되었던 명왕성이 사실은 실제 행성이 아니라 거대 외계생명체의 알이고, 우리는 일반인에게 이 존재를 숨기려는 SCP 재단의 은폐에 의해 잘못된 진실을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 등이다. 해외에서는 머리에 사이렌이 달린 모습의 괴물인 ‘사이렌 헤드’가 엄청난 유행이 되며 모두가 공유하는 일종의 도시 괴담으로 정착하기도 했다. 누군가 유튜브에 제작해 올린 5분짜리 사이렌 헤드 단편 영화가 한 편에 조회수 2억 회를 넘긴 일도 있었다. 그 외에도 유명한 웹소설인 <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나 게임 <로보토미 코퍼레이션>, 몇 년 전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소재인 백룸 등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본 서브 컬쳐 작품들이 여기에서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
‘공포’라는 장르 자체가 다소 마이너하기 때문에 낯설게 보일 수는 있지만, ‘창작의 집단화’라는 틀에 집중해서 본다면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 많은 시스템이다. 누구나 정보 공유에 참여할 수 있는 나무위키나 어릴 적 하던 릴레이 소설과도 언뜻 비슷하다. 빨간 마스크나 우물에서 기어 나오는 링 같은 존재가 모두의 어릴 적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어른이 되면서 상상은 불필요한 일이고 창작은 재능 있는 특정인만의 역할이라고 여기게 되는 사람들이 많은데, SCP 재단은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을 만한 창작 이야기 세계관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