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주 개인적인 스마트폰의 역사 [문화 전반]

그다지 단단하지 않은 하드웨어들과 보낸 시간을 돌아보자
글 입력 2023.02.21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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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웨어인가 소프트웨어인가


 

넷플릭스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를 보고 느꼈던 공포는 그것이 현실과 너무나도 밀접하게 살을 맞대고 있었기 때문에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버스에서 핸드폰을 잃어버린 이후로 주인공의 삶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우연히 주인공의 스마트폰을 주운 연쇄 살인범은 스마트폰에 스파이웨어를 설치하여 각종 SNS 및 메신저 대화 내역까지도 훔쳐본다. 살인범은 절대 알리고 싶지 않을 비밀까지 포함하여 주인공의 모든 취향, 생각, 인간관계를 파악하고는 이를 교묘하게 악용해 끝내 주인공을 죽음의 위기까지 몰고 간다. 영화의 제목처럼, 단지 네모반듯한 기계를 하나 떨어뜨렸을 뿐인데 내 모든 정보가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의 수중으로 넘어가 심각하게 악용될 수 있다는 사실은, 당장이라도 일어날 법한 일인지라 그 어떤 공포 영화보다도 더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그런 영화를 보고 있자니 문득, 스마트폰의 본질이 소프트웨어가 아닌 하드웨어에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질과 비물질의 오랜 이분법에서, 나는 자주 비물질의 가치를 지향하는 사람이었다. 어린 왕자에 나오는 말마따나 보이지 않는 것들이 때로는 더 중요하다며. 어쩌면 독서와 마인드 컨트롤을 통한 정신의 건강에는 지극정성이었으면서도 정작 몸의 건강은 사치스럽다며 제쳐 두고 있었던 이유도, 그리고 그 사실을 어느 여름날 응급실 침대에서 원치 않는 방식으로 깨달았던 것도, 이분법의 갈래에서 치우친 채로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보이지 않는 것만큼이나 보이는 것도 중요한데, 보이는 것을 마치 안 보이는 양 굴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어쩌면 인간을 닮은 AI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지금, 인간이 인간됨을 느끼는 순간은 어쩌면 몸으로의 육체적 체험을 통해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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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개인적인 스마트폰의 역사


 

이토록 하드웨어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부터 쭉 사용했던 스마트폰이라는 하드웨어를 이제 버릴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의 글감이 될 만큼 헤어짐이 아쉬운 스마트폰이지만, 정작 이 하드웨어의 모습을 보면 내가 그리 아꼈던 흔적이 보이지는 않는다. 너무 자주 떨어뜨려서 금이 간 화면에 적응하며 지낸 지도 오래며, 한 번 금이 간 이후로는 이상하게 사용하는 데 있어 더 조심스러움이 사라지고 말았기에 금의 숫자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야 말았다. 정신의 건강을 지키면서 몸의 건강을 한동안 방치했던 것처럼, 스마트폰의 이 불쌍해 보일 정도의 외양도 나의 소프트웨어 중심 사고로 인한 결과였으리라.


내 인생 최초로 소유한 하드웨어는 2013년도 모델인 삼성 갤럭시 S4다. 최신 모델을 받았다며 좋아라 하던 초등학생의 시간은 숫자 4가 23이 될 만큼, 생각보다 많이 흘러왔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는 친구들과 연락하기 위해 거실 테이블에 놓인 빨간색 유선 전화기를 사용했다. 종이에 친구들 집 전화번호를 적어 와서는, 용건이 있을 때마다 꼬깃꼬깃한 종이를 펴서 마찬가지로 스마트폰이 없는 친구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주로 '안녕하세요, 저 OO이 친구 OO인데요, OO이 있어요?'라는 정해진 멘트로 시작하는 통화는, 유선의 한계 탓에 오래 이어지지 못하고 용건만 간략히 전달한 채 끊어져야 했다. 그러나 처음으로 손에 넣었던 최신의 기술은 그런 모든 시공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열쇠나 마찬가지였다.


그다음으로 사용한 하드웨어는 2G 폴더폰이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처음으로 친 중간고사를 대차게 말아먹고 나서 부모님께서는 공부 좀 하라는 의미로 핸드폰을 바꿔 주셨다. 물론, 고백하자면, 당시에도 몰래 공기계와 노트북을 사용하고 있었기에 의도했던 효과가 나타났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의 경우,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도 핸드폰을 아주 늦게 가졌던 축에 속했다. 친구들이 '캔디폰'처럼 귀여운 색상과 동그란 모양의 폴더 폰으로 게임을 하고 문자를 보낼 때까지도 나는 빨간 유선 전화를 사용했다. 따라서 중학생 때 2G 폴더폰으로의 전환은 내게는 회귀가 아니라 다운그레이드였으며, 내 핸드폰의 역사는 역방향으로 흘러간다.


기술의 다운그레이드는 물론 일전에 누리던 편의를 크게 일축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삶의 질 측면에서는 업그레이드된 부분도 많았다. 상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휴대폰이 없었기 때문에 굳이 웹 서핑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으며, 덕분에 부모님의 의도처럼 공부나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관계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게다가 스마트폰만 사용하던 사람에게 폴더폰의 조심스러운 감성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였다. 카카오톡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는,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소통 방식이 가끔 지치게 느껴진다. '읽씹(메시지를 읽고 무시)'이나 '안읽씹(메시지를 일부러 안 읽고 무시)'이라는 단어가 생긴 이유도 마치 재촉하는 듯 피곤한 소통 방식 탓이리라. 그러나 폴더폰으로 주고받는 문자 메시지는, 왠지 모르게 사람을 조심스럽게 만들곤 한다. 

 

폴더폰에는 '알'이라는 게 있어서, 정해진 개수만큼의 문자밖에 보낼 수가 없다. 이에 한 번 문자를 보낼 때면 신중하게 온 마음을 압축적으로 꾹꾹 눌러 담아야 하며, 이처럼 진중한 작성 시간 때문에 문자를 주고받을 때면 늘 답장이 오기까지 기다리는 순간이 필요했다. 마음 졸인 기다림 끝에 몇 분이 지나 웅- 하고 진동이 울리기까지, 모두 빠르기만 한 세상에서 당장 컵라면 물 끓이는 시간조차 참지 못하는 나에게, 무언가를 기다린다는 일이 얼마나 설레고 기쁠 수 있는지 알려 준 최초의 계기였다.


수험생이 끝난 뒤부터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폰은 LG의 G8이라는 모델인데, 이제 LG사에서는 공장을 철수하여 더 이상 스마트폰을 생산하지 않는다. 나는 최신 유행과 거리가 먼 삶을 살지만 동시에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무언가에 애착을 갖곤 한다. 그래서인지, 지금 이 스마트폰을 떠나보내기 아쉬운 이유 중 하나는, 이것이 어쩌면 지구상에 남아 있는 마지막 LG 스마트폰이 될지도 모른다는, 세기말의 LG폰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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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꾸기 적당한 시기는 언제일까


 

만약 내가 조금 더 조심스럽게 다루고 아꼈더라면 지금 쓰는 이 스마트폰을 굳이 바꾸지 않고 더 오래 사용할 수 있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요즘의 스마트폰은 애초부터 약 2년 정도만 사용하고 바꾸게끔 설계된다고 들었으므로. 그렇다면 3년간의 사용기도 이미 너무 오랜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액정에 간 금을 제외하면 왜 굳이 기기를 바꾸어야 하는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지인들은, 아무래도 유행에 민감한 20대 초반이다 보니, 편의성보다는 '감성'을 고려해 새로 바꿀 기기를 추천해 주곤 한다. 그런 사람들 말마따나 감성적이라던가 트렌디하지는 않지만, 이 낡은 하드웨어는 여전히 멀쩡하게 제 기능을 다하며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드웨어는 단순 편의성을 넘어 심미성이라는 기준으로 평가된다. 게다가 이 하드웨어는 빠르게 낡도록 설계되었는데, 이는 물리적으로도 그리고 관념적으로도 해당하는 이야기다. 하드웨어에 부여되는 이미지 역시 유행에 따라 쉽게 떠오르고 저물기 때문이다. 진짜 스마트폰을 바꾸기 적절한 시기는 언제일까. 단순히 유행에 뒤떨어졌을 때일까, 아니면 더는 제 기능을 못 할 정도로 낡고 헤지는 순간일까. 분명한 것은, 한 번 스마트폰을 발명한 이후부터 인류는 앞으로도 그다지 '하드(hard)'하지는 않은 이 하드웨어와 함께 인생의 대부분을 보낼 것이라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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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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