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서운 것들을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공포영화요, 주로 즐기는 게임은 호러 게임이다. 극악무도한 괴물도, 무시무시한 귀신도 결국 현실에는 존재할 수 없다고 믿기에 별다른 공포심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나에게도 공포를 자아내는 것이 딱 하나 있다. 바로 ‘나폴리탄 괴담’이다.
나폴리탄 괴담은 일본의 공포 괴담 중 하나로, '나폴리탄 스파게티'를 주제로 한 괴담에서 파생된 장르 중 하나이다. 귀신이나 사람 등의 요소가 아닌 상상력을 자극해 공포심을 이끄는 이야기 로, 어떤 방식으로든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결말이나 내막에 숨겨진 것들을 오롯이 독자에게 맡기는 것이다. 기성 괴담이든, 창작 괴담이든 공포의 주체를 감추어 버리는 것이 나폴리탄 괴담의 포인트이며, 무서운 분위기를 연출해 내는 공포의 주체가 예측 가능해지는 순간 나폴리탄 괴담으로써의 본질을 잃어버리게 된다.
나폴리탄 괴담은 ‘매뉴얼 괴담’으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이는 기존 나폴리탄을 특정 상황 속 규칙서의 형태로 작성하는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다. 어딘가 긴박한 규칙서 속 신뢰성을 흔드는 설정과 장치를 적절하게 섞어 독자에게 혼란과 공포를 선사하는 것이다. 다음은 나폴리탄 괴담을 궁금해하는 이들을 위한 하나의 예시, '아트인사이트 이용 수칙'을 소재로 작성한 가상의 매뉴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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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 이용 수칙]
1. 아트인사이트 홈페이지 접속 시 파란색 상단바가 아닌 다른 색의 상단바가 나타난다면, 그 즉시 접속을 종료한 후, 5분간 눈과 귀를 막아주세요. 만일 해당 사항을 지키지 못했을 시, 4번 수칙을 따라주세요.
2. 아트인사이트에는 ‘오피니언 – 공포’ 카테고리가 없습니다. 해당 카테고리를 발견할 시 하단의 연락처로 이상 현상을 보고해주세요. 만일 참을 수 없는 호기심에 공포 카테고리를 눌렀다면, 죄송합니다.
3. 아트인사이트 ‘문화소식’ 카테고리는 1,059페이지까지 존재합니다. 만일 1060페이지에 도달하거나, 1,059페이지에서 입이 찢어질 듯 웃고 있는 여자아이의 사진을 목격했다면 최대한 빠르게 글을 작성하여 올려주세요. 이 때 글의 분량은 공백 포함 8,000자 이상이며 이미지를 포함하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4. 아트인사이트 홈페이지의 변형을 확인하셨거나 읽을 수 없는 글자들이 나열되어 있는 것은 정상입니다. 안심하신 후 페이지 새로고침을 부탁드립니다. 당신은 제대로 찾아오신것이 맞습니다.
5. [아트인사이트 이용 수칙] 4번 수칙은 공란입니다. 4번 수칙을 발견하셨거나, 규칙서에 반하는 내용이 존재할 시 해당 규칙서를 폐기 후 3일간해당 홈페이지 접속을 자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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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변형된 페이지에 들어가지 말라는 이유는 무엇일까’와 같이 일상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들을 비틀어 공포와 호기심을 유발하는 나폴리탄 괴담!
우리의 평범한 일상과 아주 가까우면서도 먼 것 같은 나폴리탄 괴담은 자유로운 창작과 간결하고 쉬운 글로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점점 더 그 몸집을 불려 나가고 있다. 지난 2월 창작 플랫폼 ‘포스타입’에서는 나폴리탄 괴담 스토리 기획전을 통해 작품 창작을 독려하고, 공모받은 나폴리탄 명작을 수상하며 나폴리탄 괴담의 인기를 증명했다. 포스타입을 포함해 ‘디시 인사이드’ 및 ‘아카라이브’ 등의 커뮤니티에서 개별 채널을 통해 활발하게 공유되고 있다.
특정 커뮤니티나 공간에서만 향유될 것 같은 나폴리탄 괴담은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또한 이러한 성장으로 인해 최근 다양한 콘텐츠에 이용되고 있기도 하다. 특히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리미널 스페이스’ 공포 게임이 나폴리탄 괴담과 아주 흡사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리미널 스페이스란 기존 건축, 예술 분야에서 사용되던 동일 용어에서 차용된 개념으로, 관찰자가 경험한 공간과 다른 괴리감, 친숙한 공간 속 알 수 없는 위화감과 공포심을 자아내는 공간을 이르는 말이다. 평범한 공간, 일상 속 공간을 비틀어 상상력을 자극하는 나폴리탄 괴담류의 게임이라고 볼 수 있으며 지하철 역사, 병원, 놀이방 등 현실적인 공간 대부분을 배경으로 한다. 최근 리미널 스페이스 게임이 게임 방송계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게임 크리에이터 및 구독자 사이에서는 ‘이상 현상’ 게임으로 불리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일본의 인디게임 ‘8번 출구’가 있다. 이 게임은 끝없이 반복되는 지하도에서 ‘8번 출구’를 찾아 탈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게임으로, 지하도 내에서 일어나는 이상 현상을 포착하여 올바른 길로 들어가야 한다는 절대적인 규칙을 가지고 있다. 실제 공간과 혼동할 만큼 뛰어난 그래픽과 ‘지하철’이라는 친숙한 소재를 이용해 간결하면서도 오싹한 공포를 선보이는 게임이다.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평범한 지하철 역사 내부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현상들이 발견된다. ‘도망쳐’라고 적혀진 표지판과 비정상적으로 키가 커진 행인은 물론, 피가 흐르는 천장과 알 수 없는 액체가 흘러내리는 환풍구 등 익숙한 공간과 기괴한 상황이 합쳐져 알 수 없는 불쾌감을 자아낸다. 또한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지하철 역사라는 공간을 통해 실제 일상 속에서의 끊임없는 공포감과 상상력까지 이끌어 낸다는 점이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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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무서운 것은 일상 속의 공포가 아닐까 싶다. 가상의 주제나 이상 현상을 주제로 한 나폴리탄 괴담은 어디까지나 상상 속의 이야기지만, 어딘가 있을 법한 현실의 공간을 배경으로 했다는 점에서 유독 큰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나폴리탄 괴담에는 독자나 유저를 깜짝 놀라게 하는 점프 스퀘어적 요소도,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무서운 사진 한 장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장 하나로, 단어 하나로 누군가를 오싹한 분위기 속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큰 힘을 가지고 있다.
서프라이즈 요소나 무시무시한 비주얼을 뽐내는 정통 공포물이 아닌 바람처럼 은은하게 불어오는 공포를 느끼고 싶다면 나폴리탄 괴담을 추천한다. 하지만 동시에 경고한다. 재미와 공포가 뒤섞인 새로운 장르에 푹 빠져 그야말로 공포 마니아가 될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