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지난달은 단조로운 일상의 연속이었고, 그렇기에 지루함을 타파할 선물 같은 여행이 찾아오기만을 바랐었다. 그리고 얼마 전 다녀온 11일간의 하와이는 나에게 정말로 선물 같은 기억이 되었다.
하와이에 간다는 사실은 지난 2025년 9월에 결정되었다. 내가 속해 있는 음악대학에서 국제 교류 차원으로 준비한 프로그램으로, 이에 지원하여 선발된 것이기 때문이었다. 마냥 놀러 가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내가 해야 할 작업이 있었고, 그렇기에 마음 놓고 기대만 할 수는 없는 일정이었다.
그렇게 준비하다 보니 시간이 흘러 2월이 되었다.
#1 흐림
하와이 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는가? 대게는 쨍한 햇볕 아래 야자수, 푸르른 바다, 자유롭게 수영하는 사람들을 떠올릴 것이다.
나 역시 그런 모습을 기대하면서 비행기에서 내렸지만, 뜻밖의 흐린 날씨가 나를 반겼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비까지 오기 시작했다. 심지어 휴교령이 내려서 다음날 연습이 취소되었고, 꼼짝없이 실내에 머물러야 했다.
기대와 다른 하와이의 모습에 실망했고, 남은 날들도 이런 날씨가 이어지면 어쩌지 하는 우려에 침울해졌다.
#2 무지개
그러나 비가 온 뒤에는 무지개가 뜬다.
3일 차부터 본격적인 일정이 시작되었고, 우리는 첫 관광으로 ‘다이아몬드 헤드’라는 트래킹 명소에 방문했다. 여전히 보슬비가 내렸지만, 돌연 쌍무지개가 보이는 것이 아닌가! 하와이에 반하게 된 것은 그 순간인 듯하다. 자주 비가 내리지만 그만큼 자주 무지개가 뜨는 낭만의 장소, 하와이는 그런 곳이었다.
그날 이후로는 날씨가 관용을 베풀었고, 덕분에 내가 상상하던 하와이의 모습을 두 눈으로 목격할 수 있었다. 맑은 날씨 아래 야자수, 비키니를 입고 수영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한가운데 내가 있었다.
와이키키 바다는 생각보다 따뜻했고, 알맞은 세기로 자주 치는 파도는 인공 파도풀보다 훨씬 더 재미있었다.
스노클링 명소라고 불리는 ‘하나우마 베이’도 갔었다. 평소 액티비티를 즐기는 편이 아니라 스노클링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일행의 제안으로 도전하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물속에 고개를 집어넣자마자 형형색색의 물고기 떼가 보였고, 그 광경에 홀린 듯 한참 동안 물고기 뒤를 쫓아다녔다. 나에게는 충격적일 만큼 신선한 경험이었고, 이번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되었다.
#3 연결
하지만 잊지 말자. 내가 하와이를 방문한 주요 목적은 관광이 아니었다. 여기저기 구경하느라 잠시 본분을 망각했지만, 나는 음악을 통해서 사람들과 연결되고자 하는 사명감을 가지고 이곳에 온 것이다. 오기 전에는 영어로의 소통을 살짝 걱정했지만, 교환학생 때 연습해 둔 영어 실력이 도움이 되었다.
나의 주요 임무는 하와이 대학교 학생들이 쓴 곡을 초연하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국악기, 특히 내 전공인 거문고에 대해서 알려주고 그들이 써준 곡에 대한 피드백을 남기기도 했다. 처음에는 작곡 스타일이 일반적인 국악 창작 방식과 달라서 낯설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음악 스타일을 이해하게 되었고, 종래에는 그들의 곡에 담긴 미학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작곡가 친구들과 친해져서 함께 술도 마시고 추후 다른 작업을 기약하기도 했던 시간이 정말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다.
이 외에도 다양한 장소에서 버스킹 공연을 했다. 현지 초등학생들에게 국악을 들려줄 기회도 몇 번 있었는데, 아이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구경하는 모습을 보면 자동으로 미소가 지어졌다. 우리가 준비한 음악에 열심히 반응해 줄 때는 행복해서 눈물이 나올 뻔했다. 맑은 날씨와 천혜의 자연환경 속에서 뛰어놀면서 자라는 아이들이 부럽기도 했지만, 순수한 아이들이 나에게 전달해 주는 행복 역시 커서 도리어 내가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언젠가 어릴 때 접했던 한국의 음악을 기억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연주하던 기억이 난다.
#4 여유
해외를 나온 것은 딱 1년 만이었다. 이전에도 느꼈지만, 한국과 달리 외국에는 곳곳에 여유가 가득하다. 물론 나에게 있어 한국에서의 삶은 현실이고 해외에 나온 순간은 여행이라는 차이점도 있겠지만, 그런 점을 차치하더라도 외국 사람들의 생활 방식은 한국처럼 쫓긴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서로 웃어주고, 문도 잡아주고, 각자의 삶에 만족하고 여유가 있으니 한 걸음씩 배려하면서 살 수 있다.
나는 한국에서 지내는 1년 동안 그걸 잊어버린 듯하다. 그동안 이유를 찾지 못한 채 점점 몸과 마음이 무거워지고 있었는데, 이번에 하와이를 다녀와서 그 이유를 찾았다. 나는 다시금 여유를 잃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11일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 추억으로 또 다른 1년을 살아갈 힘을 얻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서울은 황사로 온통 흐리지만, 내 마음속에는 햇볕이 쨍쨍하던 하와이의 한 장면이 있다. 그곳의 사람, 대화, 문화가 죽어있던 내 눈빛을 또 한 번 초롱초롱하게 만들었다.
고마운 마음을 담아, 언젠가 하와이를 다시 찾게 될 그날까지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