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움직이는 관광안내소를 본 적이 있나요? [여행]

서울로 출퇴근하는 20대 청년이 서울 한복판에서 관광안내소에 감명받은 이유
글 입력 2023.06.11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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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아주 좋은 5월의 어느 날, 나는 서울 북촌으로 향했다. 몇 주만 더 지나면 금세 더워질 테니 그 전에 야외로 나들이하러 다니고 싶었다.

 

북촌은 경복궁과 창덕궁, 그리고 인사동을 끼고 있어 외국인도, 한국인도 많이 찾는 지역이다. 다만, 나는 일전에 북촌 한옥마을에 처음 갔을 때는 생각보다 볼거리가 없어 더위만 먹고 벗어났던 기억이 있다. 한옥이 가득한 풍경과 분위기에 감탄하긴 했지만 인사동의 쌈지길처럼 인상적인 지역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야말로 다시 한옥마을의 매력을 느껴보고자, 나는 지하철 안국역에서 내려 곧장 북촌한옥마을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후회가 밀려왔다. 예상보다 날이 너무 좋다 못해 더웠다. 한옥 마을은 한옥 마을답게, 간판이 큼직하게 있거나 특출나게 유명한 가게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무작정 마을 길을 걸으며 발걸음이 닿는 대로 탐방할 예정이었다. 사전에 한옥마을 블로그를 보며 어딜 갈지 골라두려 했지만, 맛집이나 카페에 관한 정보만 잔뜩 얻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삐질삐질 땀을 흘리며 본격적으로 탐방을 시작하려는데, 굉장히 눈에 띄는 사람이 시야 안에 들어왔다. 새빨간 옷에 빨간 모자를 써 멀리서 봐도 존재감이 엄청난 두 사람. 가까이서 살펴보니 외국인을 위한 관광 안내사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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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울특별시 공식 홈페이지

 

 

‘하긴, 여기는 청와대도 근처에 있고 한옥마을이다 보니 외국인이 많이 오겠구나.’ 나는 서울시가 일 잘하네- 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그들의 뒤편에 있던 큰 약도를 살피고 있었다.

 

그때 아주 청량한 목소리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필요하시면 지도 한 장 드릴까요?”

 

빨간색으로 온몸을 휘감은 안내사가 친절하게 지도를 건네주어서 나는 감사히 지도를 받들고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누군가 스팟을 정리해 둔 지도 팸플릿을 건진 것만 해도 행운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친절한 안내사는 “괜찮으시다면 지도 설명을 해드릴까요?”라며 펜을 집어들었다.

 

그 순간엔 사실 ‘굳이 들어야 할까?’ 싶었다. 카카오맵으로 다 검색도 할 수 있고, 대충 맛집이랑 유명한 카페, 유명한 경치가 어딘지 다 알고 있는데… 외국인도 아니고, 여기가 아예 처음인 사람도 아닌데 관광 안내를 받는다는 게 익숙지 않아 어색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짧게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답하고 함께 지도를 보기 시작했다.

 

안내사의 설명을 다 들은 후, 나는 그들을 부르는 이름이 ‘레드 엔젤’이라는 사실에 매우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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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사는 현재 위치부터 시작해서 어떤 곳들이 한옥마을의 정취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스팟인지 미리 준비한 형광펜으로 거침없이 표시해 줬다. 형광펜으로 표시해 준 곳들은, 한옥 형태의 맛집, 카페가 아니라 내부까지 한옥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가옥, 공예 체험을 할 수 있는 체험관, 문화센터 등 블로그 검색으로는 눈에 띄지 않았던 정보들이었다.

 

또한 각각의 장소들을 찾아갈 수 있는 시간은 언제인지, 어느 구역은 실제 주민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조용히 지나가야 하는지 다양한 정보를 핵심적으로 설명했다.

 

가는 길이 헷갈릴 수 있는 구간은 또 다른 펜으로 화살표 표시까지 하며 안내를 마쳐주었다. 단 3분 안에 펼쳐진 설명이었다.

 

“우와, 설명 안 들었으면 어떡할 뻔했어?”

 

동행한 친구와 함께 감탄하며 그렇게 한옥 마을로 향한 우리는 ‘끝내주는’ 탐방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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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재벌집 막내 아들>, 영화 <암살>의 촬영지로 유명하다는 백인제 가옥. 이곳은 900평이 넘는 한옥 저택으로,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22호로 지정도 되었다고 한다. 1913년에 지어졌는데, 전통적인 한옥과 근대적인 요소가 함께 어우러져 있어 색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마루에 반쯤 누워 처마와 장독대, 흔들리는 나무를 한 풍경으로 바라보고 있자니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었다. 고지대에, 차가 잘 지나가지 않는 마을이라 자연의 소리만 잔뜩 머금을 수 있었다.

 

1시간을 넘게 그 매력에 푹 빠져있다 나온 백인제 가옥의 입장료, 0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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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청은 한옥마을의 숨겨진 알짜배기 스팟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한옥 마을 중에서도 높은 오르막에 자리 잡고 있어 북촌의 전경을 보기 좋은데, 예약이나 입장료 없이 누구나 쉬었다 갈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한옥 안쪽에서는 큰 통유리창으로 정원을 감상할 수도 있고, 활짝 열어져 있는 창으로는 하늘 반, 기와 반으로 가득 찬 풍경을 느낄 수 있었다.

 

내부의 한 공간에는 항상 작은 전시회도 열리는 듯했다. 전시 작품 또한 자유롭게 천천히 감상하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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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엔젤이 쥐여준 지도와 설명 덕에 길 하나 헤매지 않고 북촌의 정취를 제대로 느끼고 돌아왔다.

 

움직이는 관광안내소로 유명한 레드엔젤은 2009년부터 서울시관광협회가 위탁받아 현재 서울 시내 9곳에서 80명이 넘게 활동 중이라고 한다. 시청, 동대문, 북촌, 서촌, 홍대, 고속터미널, 광장시장 등 서울의 주요 관광지에서 그들을 만날 수 있다.

 

이들은 단지 외국인을 위한 언어 통역의 역할만 하는 게 아니라, 길 안내, 맛집, 쇼핑, 관광 정보, 분실물 해결 등, 다양한 정보와 도움을 주고 있었다. 그래서 나처럼 ‘숨겨진 명소’와 같은 정보 덕에 좋은 시간을 보낸 한국인의 칭찬도 여럿 보였다.

 

유적지가 있는 지역에서도 어쩌다 들어갈 것 같은 게 관광 안내소인데. 레드엔젤 덕분에 아주 작은, 서울의 한 지역에서의 방문을 이렇게 멋진 추억으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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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울특별시 공식 홈페이지

 

 

앞으로도 어딘가를 지나다가 빨간 모자를 쓴 2인조를 만난다면, 반갑게 그들을 향해 달려갈 것 같다. ‘좋은 관광’의 가치를 가장 잘 알려주는 길잡이들을 놓치면 아쉬울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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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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