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뮤지컬 <몽유도원>이 2026년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개막했다. 뮤지컬 <몽유도원>은 삼국사기 속 ‘도미전’ 설화를 모티프로 하여, 도미와 아랑의 사랑 그리고 왕 여경의 헛된 욕망을 통해 현실과 꿈을 넘나드는 무대를 구성했다. 최인호 작가의 소설 <몽유도원도>를 원작으로 한다.
우리에게는 진부함이 필요하다

뮤지컬 <몽유도원>은 왕 여경의 꿈에서 시작한다. 무대 전면은 황량한 들판과 거대한 새 형상의 수묵화 영상으로 채워졌고, 여경은 새로부터 끊임없이 쫓긴다. 외롭고 쓸쓸한 분위기의 무대는 한 여인의 등장으로 반전된다. 흐드러진 꽃들 속 홀연히 나타난 여인을 만나 여경은 평온을 찾는다. 더 이상 황량한 들판도, 거대한 새도 여경을 위협하지 않는다.
암전. 앞전의 수묵 풍경은 사라지지만, 그보다 쓸쓸해 보이는 왕좌에 여경이 홀로 앉아 있다. 꿈에서 깨어난 여경은 꿈에서 만난 여인에 완전히 사로잡힌 상태다. 여경은 자신의 충직한 신하 향실에게 존재조차 불명확한 여인을 찾아낼 것을 명령한다. 향실은 마한족이 만든 도원에서 마침내 여경이 찾아 헤맨 여인, 아랑을 찾아내는 데 성공한다. 아랑은 이미 도미와 혼인한 상태지만 그러한 사실은 여경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아랑과 도미는 서로의 꿈이었지만 여경에게 아랑은 자신의 꿈이었을 뿐이다. 전자를 사랑, 후자를 욕망이라고 우리는 알고 있다. 아랑은 자신에 대한 집착을 계속하는 여경을 상대하기 위하여 자신의 얼굴에 상처를 내는 선택을 한다. 당신의 꿈으로 남지 않기를 선언한다.
도미는 눈을 잃었고 아랑은 아름다운 얼굴을 잃었다. 그리고 여경은 모든 것을 잃었다. 백제는 멸망을 눈앞에 두고 있다. 도미와 아랑이 잃은 것은 사실 잃은 것이 아니다. 그것들이 바꾸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서로 함께 할 수만 있다면 굶주림과 추위도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경은 자신이 좇은 허망한 꿈도, 충직한 신하도, 자신의 국가도 상실한다.

뮤지컬 <몽유도원>은 도미전 설화를 모티프로 한다. 서사적 완성도를 위하여 최인호 작가의 소설을 활용하였지만, 오래된 설화인 만큼, 서사 구조는 간단하다. 아랑과 도미의 진실한 사랑이 한 축에 있다면, 그것을 파괴해서라도 아랑을 쟁취하고자 하는 권력자 개로왕이 있다. 그리고 권력자의 행패와 강압 속에서도 아랑과 도미는 위기를 해쳐나가 사랑을 지켜낸다.
서사 구조가 오래되고 간단하다는 것은 익숙함의 약속이기도, 보장된 호소력을 의미하기도 한다. 고전이 될 수 있던 작품들-인간 간의 사랑과 신의, 악에 대한 징벌과 선에 대한 보상을 기약하는 이야기들-을 인간은 계속해서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한편, 사회에서 오랜 기간 약속처럼 다뤄진 이야기들은 동시에 진부함으로 쉽게 평가된다. 그러나 진부함을 그렇게 간단하게 혹은 부정적으로 다루는 것이 적절한 평가인가. 우리가 바라는 것은 빈번하게 기분 좋은 진부함이지 않은가. 오래되고, 낡고, 닳은 이야기들. 갑돌이와 갑순이의 이야기를 속 깊이 바라지 않는가. 오늘날 창작되는 서사 작품이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진부함이 아니라 진부함마저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뮤지컬 <몽유도원>은 이런 점에서 진부함을 정면으로 계승하기로 선택했다. 뮤지컬 <몽유도원> 익숙한 사랑 서사를 그대로 담아냈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이 더욱 타당한 것이 될 수 있도록 살을 붙였다. 이를테면, 왕인 여경이 이미 혼인한 아랑에게 보이는 과도한 집착의 배경으로 꿈과 치열한 당파 싸움을 제시하여 여경의 왜곡된 욕망에 대한 설명력을 높였다.
한편, 한국적 사랑 서사를 발굴하는 데 도미전을 채택한 것은 제작사의 전략적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상대적으로 익숙한 조선이 아닌 삼국시대를 선택한 것은‘한국적 미학’의 범위를 넓히고 또한 의복 및 무대 재현에서 느껴지는 신선함을 높이는 효과를 낳았다. 같은 사랑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백제와 당시 멸망한 마한, 마을 공동체인 도원 등이 배경이 되며 무대 연출을 다양화했다.
무대로 기억 남을 뮤지컬

뮤지컬 <몽유도원>의 가장 큰 힘은 음악이었다. 오케스트라 편성을 바탕으로 대금과 피리, 해금 등 국악기를 함께 편재하여 음악 자체에 국악의 느낌을 녹아냈다. 특히 아랑 역의 배우는 판소리적 창법을 함께 구사하여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무대장치와 등장인물의 의상의 완성도 역시 높였다. 깊은 궁궐과 너른 도원, 아랑과 도미의 이별과 만남의 장소로써 물가가 겹겹이 쌓이며 서사의 진실성을 높였다.
우리는 이미 도미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 도미의 이야기를 모르더라도 우리는 이 세상을 구성하는 이야기의 원형을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공연예술로써 완성도를 극대화한 뮤지컬 <몽유도원>을 마주할 이유는 충분하다. 우리는 새로운 이야기만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좋은 무대와 진실한 이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