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뮤지컬 〈몽유도원〉이 2026년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관객과 만났다. <몽유도원>은 삼국사기의 도미 설화를 토대로, 사랑과 욕망, 충절과 파멸을 그린 창작뮤지컬이다.
이야기는 왕 여경이 꿈속에서 만난 이름 모를 여인에게 강하게 사로잡히며 시작된다. 향실의 도움으로 전국을 뒤져 꿈속 여인인 아랑을 찾지만 아랑은 이미 도미와 결혼한 몸이었다. 이를 알게 된 순간부터 여경의 사랑은 개인적 욕망을 넘어 권력으로 작동하며 그 결과 도미와 아랑은 자신들의 의지와 관계없이 비극의 소용돌이 한가운데로 밀려들어 간다.
서사 구조는 비교적 직선적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사건의 나열 속에서 인물의 내면을 천천히 쌓아 올린다. 권력을 이용한 욕망과 사랑, 충절과 파멸이 단순한 대립으로 놓이지 않고 각각 인물의 갈등과 선택안에서 입체적이고 복잡하게 얽힌다.
〈몽유도원〉은 서양 오케스트라를 기반으로 하면서 국악기의 음색과 판소리의 발성, 호흡이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대금, 피리, 해금 등이 만들어내는 선율은 극의 정체성과 정서를 한껏 끌어올리는 핵심 요소가 된다.
특히 판소리 발성은 뮤지컬 넘버 속에서 독특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서사의 정서를 끌어올리는 핵심 요소로 기능한다. 앙상블들의 군무는 마치 한 폭의 '움직이는 동양화'처럼 보인다. 역동적인 움직임과 정적인 장면을 오가며 구성되는 그림은 흥과 한을 담아낸다. 무대의 세트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영상과 조명이 결합하며 공간의 변주를 그린다.
배경에 펼쳐지는 수묵화는 마치 그림 속에 섞여 들어가는 듯한 느낌까지 든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연출 장치는 단연 '달'이었다.
〈몽유도원〉에서 달은 단순한 배경 이미지가 아니라 작품의 세계관을 지탱하고 극의 흐름을 이어간다. ‘몽유’와 ‘도원’이 전제하는 꿈의 상태는 본질적으로 밤의 시간대에 놓여 있으며, 달은 현실과 꿈 사이 그 경계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이다. 또한, 우리 역사에서 왕이 곧 해로 여겨져온 맥락을 살펴보면, 여경이 대표하는 권력은 태양의 빛으로 도미와 아랑의 사랑은 달빛 아래에서만 지속 가능한 관계로 읽을 수 있다.
실제로 달은 도원에서 이루어지는 도미와 아랑의 결혼식 장면에서 밝고 온전한 형태로 떠 있다. 도미의 추방과 아랑의 탈출 장면에서도, 그리고 이들이 다시 재회하는 순간에도 달은 변함없이 푸르게 빛난다. 반면, 여경과 아랑의 결혼식에서는 개기일식이 발생하며 달이 해를 가린다.
이는 단순한 불길함의 표시를 넘어 서로 다른 두 세계가 충돌하는 장면임과 동시에 ‘달’이 상징하는 도미와 아랑의 사랑이 다시금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는 암시일지도 모른다.

또한, 목지국 사람들의 서사와 도원의 이미지 역시 달의 연장선 위에 놓인다.
목지국 사람들은 권력의 바깥에 위치한 존재들이며, 도원은 현실과 꿈의 경계에 있는 공간이다. 이 둘은 모두 달빛 아래에서만 완전히 드러나는 세계다. 태양, 즉 왕권과 제도의 빛 아래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달빛 속에서 비로소 형체를 갖는 것이다.
결국 〈몽유도원〉에서 달은 도미와 아랑의 사랑을 비추는 빛이자, 여경의 욕망이 도달하지 못하는 경계이며, 몽유도원이 존재할 수 있는 조건이다. 이 '달'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도미 설화라는 고전적 비극은 자칫 뻔한 교훈담으로 소비되기 쉽다. 결말 역시 쉽게 예측 가능하다. 욕망은 파멸로 향하고, 사랑은 희생으로 남는다. 그러나 〈몽유도원〉은 이 뻔함을 무대 위로 올려 그 결말을 다시 경험하게 만든다. 텍스트 속에 머물던 서사는 음악과 춤, 빛과 공간을 통과하며 감각의 문제로 확장된다. 자연스럽게 관객은 인물들의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고, 저마다의 여운을 안고 집으로 돌아간다.
입김이 나오는 추운 겨울밤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공연이었다. 공연장을 나오면서 본 동그란 달이 도미와 아랑의 사랑을 다시금 곱씹게 만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