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시리즈 <보잭 홀스맨>은 한물 간 배우 보잭이 겪는 자기 혐오와 우울, 그리고 망가진 관계들을 통해 인간 내면과 실존을 깊이 있게 다루는 작품이다.
<보잭 홀스맨>은 애니메이션이기에 가능한 표현들을 빌려 동물과 인간이 공존하는 할리우드라는 독특한 세계관을 펼쳐낸다. 이런 매체적 특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극 중 인물의 내면을 시각적 언어로 표현하는 점이 시리즈의 큰 매력이기도 하다.

이러한 <보잭 홀스맨>의 묘미는 작은 디테일에도 섬세하게 녹아 있다. 특히, 인물들이 머무는 공간 곳곳에 배치된 현대 미술의 이미지들은 단순 배경 소품 이상의 역할을 하며 시리즈의 밀도를 높인다. 앙리 마티스나 앤디 워홀 같은 현대 미술의 거장의 작품을 동물의 모습으로 바꿔 재치 있게 비튼 오마주는 숨은 그림 찾기와 같은 소소한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이런 시각적 장치들이 극 중에서 단순히 화면을 채우는 미적 배경에 머무르지는 않는다. 인물들이 머무는 뒷배경에 위치하는 작품은 때로 그들의 처철한 내면 상태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보잭 홀스맨>은 이처럼 인물의 감정적인 서사를 시각적으로 확장하고, 그 내면을 드러내는 메타포적 장치로서 현대 미술 작품을 적극적으로 활용해낸다.


(위, 데이비드 호크니의 「예술가의초상」, 아래, <보잭 홀스맨> 속 「예술가의초상」의 인용)
그중에서도 보잭의 서재에 걸려, 시리즈가 진행될 수록 무너지는 보잭의 내면과 그의 자기 인식 과정을 가장 상징적으로 투영하는 것이 바로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이다. 「예술가의 초상」은 1972년 작으로, ‘수영장의 두 인물(Pool with Two Figures)’이라는 부제를 가진 회화이며, 정적이면서도 긴장감이 느껴지는 구도와 빛-물-시선이라는 주제를 정교하게 결합한 작품이라 평가된다.
작품의 구도는 애니메이션 속 보잭의 내면 상태로 재해석해볼 수 있는데, 이를 알 수 있는 장면은 보잭의 환각 속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시즌 1의 열한 번째 에피소드에서, 환각 속에서 그림을 바라보고 서 있던 보잭의 시선은 곧 완전히 작품의 내부로 이동한다. 그는 수영장에 빠진 인물이 되고, 물속에서 빠져나오려 헤엄치지만 그 속에 갇히고 만다. 이는 「예술가의 초상」이라는 회화를 애니메이션의 세계관으로 완전히 편입해 인물의 내면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보잭 홀스맨>만의 방식이다.
환각 속에서 보잭은 그림 속 물에 빠진 자신을 보며 "Shouldn’t we help him? (도와줘야하지않아?)"라고 묻는다. 하지만 물에 빠진 이도, 그를 바라보는 이도 결국 보잭 자신이다. 빠져나오지 못하는 자아와, 그 모습을 지켜볼 뿐인 자아. 삶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구조하려 하지 않는 태도는, 우울과 무기력의 본질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물의 투명함이 주는 잔인한 거리감
이렇듯 물과 수영장의 이미지는 <보잭 홀스맨>에서 계속해서 반복되며, 그 심리 상태를 상징하는 핵심 모티프로 기능한다. 이 이미지들은 호크니의 회화에서 비롯된 물의 투명성을 계승해 애니메이션 내에서 그 불확실성을 보잭의 내면 서사로 확장한다.

「예술가의 초상」은 호크니가 연인이었던 피터 슐레진과 이별한 당시 그린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를 반영해, 물에 빠진 이를 바라보는 남자의 이미지는 고통스러운 감정을 가만히 응시하는 호크니의 자기 반영적 이미지라고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수영장의 물은 투명하지만 침잠된 것들. 즉 보이지만 도달할 수 없는 것. 더 나아가 인지는 가능하지만 닿을 수는 없는 것들을 은유하는 중요한 매개이다.
보잭에게 수영장은 우울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공간인 동시에, 과거의 후회와 죄책감이 투영된 공간이기에, 「예술가의 초상」은 애니메이션 내에서 기억과 고립, 자기 반영을 상징하는 것이다.
현대판 나르키소스 신화
시즌 6에서, 보잭은 프린세스 캐럴린에게 「예술가의 초상」을 선물한다. 베이비 샤워 선물이라는 핑계를 대는 그에게 캐럴린은 냉소적으로 반응한다.

"It’s a 1970s pop art interpretation of the Narcissus myth. How appropriate for a baby. (나르키소스 신화를 70년대식 팝아트로 해석한 작품이네. 아기가 참 좋아하겠어.)"
"‘Narcissus? I thought the painting was about me. (나르키소스라고? 날 그린줄 알았는데.)"
이 대화에서, 보잭은 「예술가의 초상」이 여지껏 자신의 내면을 반영하는 자화상 같은 존재였음을 드러낸다. 또한, 캐럴린의 대사가 제시하는 「예술가의 초상」에 대한 해석은 작품을 보잭의 자기 인식에 빗대어 보는 데 흥미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나르키소스 신화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 나르키소스가 자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외면하고 상처를 입힌 끝에, 저주로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매혹되어 오직 자신만을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그는 타인을 사랑하지 못하는 자기애의 굴레 속에서, 스스로만을 응시한 채 고립과 죽음에 이르게 된다. 이 신화는 극단적인 자기애가 관계의 단절을 초래하고, 결국에는 자기 파괴적 결말로 귀결될 수 있음을 경고하는 서사로 해석된다.
자신의 모습에 지나치게 매혹되어 죽음에 이른 나르키소스처럼, 보잭 역시 지독한 자기애와 자기 연민에 매몰되어 주변을 상처 입히고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물에 빠진 자신을 응시하면서도 구조해 내지 못하는 보잭의 그 무력한 응시는 결국 나르키소스의 비극과도 맞물린다.

회화는 멈춰 있는 오브제이지만, 애니메이션은 그 정지된 감각에 움직임을 부여한다. <보잭 홀스맨>은 여러 회화의 이미지를 빌려와 보잭이 서서히 침몰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그려냈다.
물속에 잠긴 과거의 나를 바라보거나, 누군가 건져주길 바라며 끝없이 가라앉는 실존적 고통은, 애니메이션 속 회화의 이미지를 통해 선명히 은유된다.
이처럼 정적인 오브제를 넘어 시청각 매체의 세계로 편입된 데이비드 호크니의 「예술가의 초상」은 인물의 깊은 서사적 감정과 정신분석적 상징을 구축하는 강력한 도구로 기능했다. <보잭 홀스맨>은 회화가 가진 고유의 상징성을 자신의 서사로 끌어들임으로써, 인물의 내면을 어떠한 대사보다도 깊이 있게 표현해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