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더 글로리 : 용서는 없어. 그래서 그 어떤 영광도 없겠지만 [드라마/예능]

글 입력 2023.01.08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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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와

주관적인 견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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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넷플릭스)

 

 

넷플릭스 공개와 동시에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으며 현재 OTT 화제성 1위를 거머쥐고 있는 작품이 있다. 작품의 연출력, 작가의 필력, 배우의 연기력까지 다방면에서 인정받고 있는 '더 글로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고자 한다. 이 작품은 처음엔 김은숙 작가의 복수극으로 주목을 받았고 멜로 장인으로 불리던 배우 송혜교의 복수에 가득 찬 반전 연기로 이목을 끌었다.


나 또한 현재까지 공개된 시즌 1의 8화까지의 작품을 하루 동안 쉬지 않고 달렸다. 이토록 시청자들이  한 작품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든 건 뛰어난 연출과 작가의 촘촘한 대본, 그리고 배우들의 숨 막히는 연기가 삼박자를 이루어 조화로웠기 때문이다. 가해자 집단의 잔인하고도 추악한 모습과 피해자의 설움과 울분을 스크린에서 느꼈을 때 나는 단순히 이를 드라마로서 바라보기 어려웠다. 배우들의 연기에 몰입이 단숨에 되었다는 뜻과 동시에 실제와 드라마 상의 현실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드라마 상에서는 가해자 집단이 피해자를 온갖 추악한 방법으로 폭행하고 학대한다.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어 계속해서 '10초 넘기기' 버튼을 누를 수밖에 없었던 가해자들의 폭행은 10여 년 전 청주의 한 중학교에서 일어난 학교폭력의 형태와 유사했다. 극중 피해자 동은은 학교를 자퇴하고 공장에서 일을 하며 검정고시를 치르고 대입에 성공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 속에서 동은 또한 나이가 들었지만 여전히 그때의 피해와 잔상 속에 머물러 있음을 그의 신체적 정신적 트라우마를 통해 알 수 있다.

 

시간이 지나도 아프고 사라지지 않는다. 폭력의 형태는 시공간을 초월해 잔류하고 그들의 흉터에 남아있다.

 

 

 

오늘부터 내 꿈은 너야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보호를 받지 못했던 10대의 동은은 결국 학교를 자퇴하게 된다. 가해자들의 극악무도한 폭행에 지치고 지친 동은은 극단적인 선택까지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극단적인 선택의 기로 앞에서 자꾸만 눈물이 나고 주춤거리게 된다.

 

이대로 생을 마감하기에는 너무 억울하고 분하다. 새하얀 눈 속에서 동은은 자신의 몸에 난 상처를 닦고 또 닦아 봤지만 그 상처들은 전혀 사라지지 않고 나아지지 않았다. 온몸에 난 상처를 눈으로 닦다가 눈 속에 파묻혀 눈물을 흘리는 어린 동은의 모습은 한없이 가엽고 마음이 아파 나도 따라 눈물이 고이기도 했다.


그런 동은을 살게 한 건 가해자를 향한 복수심이었다. 어느 날은 가해자들이 있는 체육관에 찾아가 그들의 꿈을 묻는다. '꿈이 뭐니?' 이 질문 하나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꿈은 미래이며 누군가에겐 희망이고 누군가에겐 현실이며 또 누군가에겐 용기가 되기도 한다. 돈이 많은 집안에서 태어난 가해자들은 너무도 쉽게 그들의 미래를 그리고 있었고 동은은 그런 가해자를 바라보며 말한다. '오늘부터 내 꿈은 너야. 우리 꼭 또 보자, 박연진.'


어떤 증오는 그리움을 닮아 멈출 수 없다는 동은의 말이 이 작품의 모든 의미를 아우르고 있지 않을까. 가해자를 향한 증오와 복수심, 미움과 울분, 분노와 같은 복합적인 마음이 섞이고 단단하게 굳어 오늘날의 동은이 살아갈 수 있고 살아가게끔 하는 원동력을 만들어냈다. 동은의 삶의 목적과 목표가 '증오'와 '복수'의 연속이었다니, 참 슬프고 모순적이지만 동은은 이와 같은 꿈을 가지고 억척같이 버티고 버텨왔다.

 

 

 

타락할 나를 위해, 그리고 추락할 너를 위해


 

동은의 복수는 학교를 자퇴하고 세상에 등을 돌린 채 묵묵히 걸어갈 때부터 시작되었다. 동은에게 가해자들을 향한 복수는 가장 고통스럽고 눈물 나야 할 것이었다. 하나 둘 정보를 모으고 계획을 세웠다. 우연이었는지, 운이 좋았는지 때마침 가해자 연진은 결혼을 하였고 이듬해 가을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그때 이런 대사가 나온다. '가을에 태어날 네 아이의 이름을 난 백 개도 넘게 지어봤어. 건배도 내가 대신했어. 타락할 나를 위해, 추락할 너를 위해.'


가해자 집단은 여전히 누군가에게 갑으로서 소리를 내고 있었고 과거의 일을 반성하기보단 숨기기에 급급했다. 높은 위치에서 웃으며 인생을 즐기는 가해자들을 위한 동은의 복수는 그 어떤 것보다 고통스럽고, 그 고통이 오래가기를 바랐다. 그리고 동은은 알았을 것이다. 복수를 마음먹음으로써 자신의 영혼이 말라가고 복수를 행함으로써 스스로도 타락하게 될 것이라는 걸 말이다. 타락에 대한 두려움보다 그들을 향한 증오심이 더 컸기에 동은은 이를 모두 '감수하고' 가해자의 추락을 향해 나아간다.


 

 

나는, 너의 아주 오래된 소문이 될 거거든


 

과거는 그렇다. 기억하고 싶을 땐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잊고 싶을 땐 죽어도 잊히지 않고 자서전의 첫 페이지처럼 여운이 길게 남기도 한다. 기억은 그렇게 주체의 말을 듣지 않고 얼마나 주체를 깊게 찔렀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정신을 파고들 만큼 깊게 찌르는 기억일수록 오래도록 잊히지 않고 기억된다. 반면에 그저 스쳐 지나가는 기억은 당장에 내일, 아니 몇 분 뒤라도 까먹을 수 있다.


동은에게 과거는 아주 깊게, 살갗을 파고들어 혈관을 관통하는 고통스러움을 선사하였고 이는 현재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에 비해 가해자 집단에게 과거의 그 기억은 그저 심심해서, 시간이 남아돌아서 행한 걸로 남아있어 몇 십 년 만에 동은의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을 하지 못하였다. 동은은 그런 가해자의 오래된 소문이 되기로 하였다. 끈질기게, 길게, 아주 오래 그들을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되어 세상이 그들에게 등을 돌리게끔, 시간이 지나 복수가 끝났을 때 그들 옆엔 그 누구도 남지 않게끔 말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파상은 파상으로, 때림은 때림으로 갚을지니. 글쎄, 그건 너무 페어플레이 아닌가요?'

 

과거의 파상은 누적되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과거는 그저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까지 영향을 미치는 무시를 할 수 없는 존재이다. 동은의 대사를 들으면 그가 얼마나 말로 이루어 말할 수 없는 고통과 분노 속에서 살아왔는지 알 수 있다. 이미 눈덩이처럼 불어난 그의 상처와 망쳐버린 꿈과 현재는 똑같은 고통으로 갚기엔 불공평하다는 동은. 뭐든지 돈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과거에 대한 진심 어린 반성이나 사과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가해자. 동은은 그들을 향해 천천히 갈아왔던 칼을 비로소 들었다. 천천히 함께 말라가자던 동은이 안쓰럽고 위태로웠다.

 

 


난 왕자가 아니라 나와 같이 칼춤 춰줄 망나니가 필요하거든요


 

'더 글로리'에서 주목할 만한 관계성에는 의사 주여정과 동은의 위태롭고도 끈끈한 연대가 있다. 여정은 의사 집안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살갑고 가족 관계가 화목하며 집안이 풍족한 것처럼 표현되지만 그 또한 커다란 상처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연쇄살인마에게 살해당한 의사 아버지와 매번 여정에게 살인의 과정을 세세히 적어 편지를 보내는 연쇄살인마 사이에서 여정 또한 동은과 마찬가지로 누군가를 향한 복수심을 가지고 살아왔다. 정신과 상담을 다니며 복수심을 잠재우고 트라우마를 없애고자 노력하였지만 그 어떤 치료도 효과가 없었고, 이내 복수를 목표이자 목적으로 둔 동은을 만나고 알아차린다. 자신의 상처는 해결될 수 없음, 그리고 동은의 복수를 보고 자신이 살아있음을 말이다.


여정은 발포 비타민이 물속에 떨어져 기포가 올라오는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말한다. 수도 없이 상상 속에서 몇 번이고 죽인 연쇄살인마를 아버지의 유품으로 찌를 때, 정신과 상담은 전혀 자신을 고쳐주지 못했다고 말한 뒤 여정이 깊은 심해 속으로 잠수하고 빛을 향해 나아올 때  발포 비타민의 기포 소리와 유사한 소리가 들린다. 이건 여정의 복수심과 증오가 동은을 만나 표출하는 방식으로 풀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겉은 유해 보이지만 속은 그 누구보다 아린 상처를 품고 살아온 여정은 동은과 방식은 달랐지만 많이 닮아있었다.


복수를 이야기하는 동은에게 여정은 '후배의 세상도 폐허뿐일 거예요.'라고 말하며 말리지만 동은의 온몸에 나있는 씻기지 않는 흉터를 보고 칼춤을 추는 망나니, 즉 조력자가 되기로 마음을 먹는다. 앞으로 다가올 시즌 2에서는 동은의 남은 복수의 과정뿐 아니라 여정이 자신의 기억과 트라우마를 어떤 방식으로 해결해나갈지 궁금해졌다.

 

 

 

글로리(Glory)는 없는 '더 글로리'


 

모든 내레이션은 피해자 동은의 가해자 연진을 향한 편지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김은숙 작가는 인터뷰에서 동은의 내레이션은 모든 순간이 그의 비명이었을 것이라 말하였다. 또한 피해자가 가장 상처를 받는 말이 '그래서 너는 잘못이 없었어?'라는 되려 피해자를 향한 날이 선 질문들이었으며 이에 김은숙 작가는 피해자는 정말 단 하나의 잘못도 없었음을 사명처럼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글을 썼다고 한다. 이를 내포하는 듯한 대사가 실제로 드라마 상에 여럿 나온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 우리는 누구를 해하거나 상처를 줄 권리가 없다. 그게 정신적이든 신체적이든 말이다. 동은은 복수가 끝난 뒤 남는 건 폐허뿐이라는 여정의 말에 이미 자신은 폐허이며 존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다는 건 그런 것이다.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말, 행동 따위가 누군가의 존엄을 건드리고 그를 폐허로 만들 수 있다.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는 사양한다. 그들을 향해 어떤 물음표를 던지지 않기를 바란다.


작품을 보며 가해자를 그저 가해자로 그려줘서 좋았고 고마웠다. 가해자들에게 어떠한 공감이나 동정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악하고 잔인하게 표현해 줘서 함께 미워하고 증오할 수 있었다. 자녀를 사랑하지만 경제적 과시 외에 진심 어린 말을 하지 못하고, 자녀를 향한 사랑인지 상대방을 향한 집착인지 헷갈렸으며 계급과 권력이 존재하는 가해자 집단의 얄팍한 우정 속에서 그들의 얇고 비열한 연대를 알 수 있었다.


다가오는 3월 '더 글로리'의 시즌 2를 기다리며, 모든 피해자들의 아픔과 분노에 조심스레 연대를 하며 넷플릭스 '더 글로리'에 대한 글을 마무리해 보겠다.

 

 

[안영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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