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띠링- 알림이 도착했습니다. - 연극 ‘짬뽕’

글 입력 2024.05.09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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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오늘, 5년 전 오늘....'


클라우드 서비스를 애용하던 시절, 가끔 왔던 알림이다. 그 알림을 터치하면, 과거의 내가 부지런히 기록한 추억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되게 어리고, 풋풋했네.’라는 생각을 하며 그때의 추억에 금세 빠져들곤 했다. 날짜는 같지만, 요일과 연도가 다른 오늘이라는 점에 기분이 묘했다.


그 알림은 그리움에 울컥하게도 했으며, 그때의 행복감을 다시 느끼게 해주었다.


얼마 전에 관람한 연극 ‘짬뽕’은 그 알림과도 같았다. 그 시절 사람들의 정과 잊지 말아야 할 아픈 역사를 다시 떠올리게 한 연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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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짬뽕’은 20주년을 맞이하여 5월, 무대에 다시 올랐다. 5.18 민주화 운동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며, 8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극장 입구에는 그 시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추억의 뽑기 이벤트가 마련되어 있으며, 연극 티켓과 무대, 소품 등 곳곳에서 옛 감성이 깃들어 있었다.


1979년 12.12 군사 반란 이후, 신군부 세력이 권력을 장악하며 국민들의 봄은 송두리째 도둑맞았다. 그리고 1980년, 5월의 봄도 빼앗겼다. 당시 시민들의 상황과 감정을 세밀하게 그려낸 작품이어서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이 보기에도 좋다. 그래서인지 다른 대학로 연극에 비해 중장년 관객이 많았다.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 손자 이렇게 대가족이 나란히 앉아 관람하는 걸 보았는데, 바람직한 광경이었다.


5.18 민주화운동을 모티브로 한 작품은 많이 봐왔다. 그럼에도 항상 질리지 않는 이유는 우리의 아픈 역사이며, 잊지 말아야 할 역사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색다름 한 스푼까지 더해진다면 더할 나위 없다. ‘짬뽕’은 그런 작품이었다.


짬뽕 한 그릇 때문에 그 사태가 일어났다는 발상이 신선했다. 그리고 다른 작품과 달리 ‘짬뽕’에는 계엄군에 대한 언급은 있으나 등장하지 않았다.


또 신선했던 점은 주체였다. 대부분 5.18 민주화운동을 바탕으로 한 연극이나 영화는 정치적인 입장이나 운동을 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러나 연극 ‘짬뽕’은 운동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이 주체이다. 최측근도 아니고, 정확한 내막이나 심각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소시민을 중심으로 그들의 삶을 그려냈다. 개인적으로 이 점이 가장 신선하게 다가왔으며, 이 연극의 특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모르거나, 믿지 않거나 또는 라디오, TV에서 나오는 말만 믿는 사람들이 더 많았을 거다. 그래서 극 중 인물들이 더 사실적으로 느껴졌다.


사랑하는 미란이,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동생 지나, 표현은 못 해도 친동생으로 여겼던 만식이까지. 작로에게 그들은 오래 함께하고 싶은 가족이었다. 그렇기에 작로는 그저 가족들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잘 몰랐으면 하고, 그 일에 가담하지 않길 바랐다.


‘에이~ 그럴 리가’라며 안일하게 생각 ->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 -> 두려워지기 시작 -> 만식이를 말리는 모습 ->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음 -> 행복이 깨질까 봐 두려워 벌벌 떠는 모습 -> 가족을 지키기 위해 총을 잡은 순간 -> 잠시 주춤했지만, 가족을 생각하며 뛰쳐나가는 모습


작로의 이러한 감정선이 설득력 있게 잘 그려졌다. 그 감정선이 세밀하게 드러날 수 있었던 건, 신작로 역을 맡았던 허동원의 연기 덕택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작로가 군인에게 총을 겨누던 장면에서 순식간에 바뀐 허동원 배우의 눈빛이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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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극에는 반전도 있었다. 작로가 미란이에게 가짜 금반지를 선물했었는데, 사실 그 금반지가 진짜였다는 것, 계엄군인 줄 알았던 두 명의 군인이 알고 보니 방위였다는 것, 다 죽은 줄 알았는데 작로 혼자만 남아 꿋꿋이 생을 살아왔다는 것의 반전들은 극을 더 풍성하게 하고, 감동을 2배로 느끼게 해주었다.


작로, 미란, 지나, 만식이가 함께 소풍 갔던 날이 마지막 장면으로 나오는데, 그때 가슴이 찡했다. 앞으로 다가올 일을 모른 채 떠들고 웃고, 봄 소풍 하나에 행복해하던 그들의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다. 봄 소풍 가서 함께 찍은 사진이 영정사진으로 바뀌는 연출은 연극 ‘짬뽕’하면, 첫 번째로 떠오를 것 같다.


‘짬뽕’의 이야기는 매우 슬프고 아프다. 아주 매운 짬뽕처럼 눈과 코가 맵다 못해 아리다. 그러나 장르가 블랙코미디라 코믹한 부분도 있어서 눈물을 글썽이다가 웃다가를 반복했다.


코믹한 요소가 많아서 전체적인 분위기가 밝았다. 당시 국민들의 아픔이 매우 자세하게 묘사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자꾸 코끝이 아리고, 눈물이 고였던 이유는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무대 위에 보이지 않았던, 무대 뒤 즉 이야기 속에 함축된 것들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국민이기에 연극을 보는 내내 가슴이 아팠다. 영화 ‘서울의 봄’을 본 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그 여운이 아직 남아있었는데, 연극 ‘짬뽕’까지 보니 이야기가 연장선으로 느껴졌다.


한국의 계절은 모두 아름답지만, 우리에게 봄이란 한 해의 시작이자 첫 계절이다. 그만큼 우리는 봄을 특별하게 생각하며, 설렘을 가득 안고 봄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그 마음은 그때도 똑같았을 테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봄을 빼앗기고, 다시 찾지 못하였으니 얼마나 원통하고 고통스러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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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때, 국민의 권리에 배웠던 게 생각난다. 교육과정에 나왔던 만큼, 권리 그리고 자유는 당연히 보장받아야 한다. 이 당연한 걸 빼앗겼던 그때 그 사람들의 심정과 지키기 위해 어떻게 했는지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과거이자 역사이다.


우리의 역사를 바탕으로 한 작품을 볼 때마다 항상 고마움을 느끼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이 연극이 내게 가져다준 또 하나는 고마움을 되새기고, 자유와 권리가 보호받고 있는지 또는 나도 모르는 사이 잃어가는 건 아닌지 사유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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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득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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