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떤 판에 설 것인가?
신랄한 풍자를 통해 통쾌한 이야기 한 판을 들려주는 창작 뮤지컬 ‘판’을 관람하고 왔다. 뮤지컬 ‘판’은 시즌마다 풍자하는 내용이 조금씩 바뀌는 관객 참여형 극이다. 전반적으로 즉흥 연기나 호응 유도가 많은 편이라 관객과 배우가 더 많이 소통할수록 더 큰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공연이다.
객석 입장 시 응원봉 ‘뻐꾸기 불’을 나눠주는데, 이는 전기수 ‘호태’가 즉흥 이야기 판을 펼칠 때 어떤 장르로 진행할지 투표하는 데 사용된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지난 시즌에 관람했을 적과 똑같이 ‘공포’ 장르가 선정되었다. 완성도 있게 풀어내기 가장 어려운 장르인 만큼, 배우들의 낯빛에는 난감한 기색이 스쳤다. 관객들마저 탄식하는 와중에 능청스럽게 소화해내는 모습을 보며 역시 ‘판’ 출연 배우들은 다르다고 느꼈다.
19세기 조선 후기를 배경으로 하나 역사를 다루는 비중은 높지 않아 이해하기 수월하다. 외려 현 세태를 비판한 말장난이 많아서 여기가 조선인지 21세기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래서인지 이야기 구조도 단순하다. 지금으로 치면 MZ세대에 가까운 양반 ‘달수’가 전기수 ‘호태’를 스승으로 모시며 매설방 내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려냈다.
초중반에는 ‘달수’의 성장을 위한 사건들 위주로 전개되어 어수선하다가도 후반부터는 극의 분위기가 눈에 띄게 전환된다. 세상을 풍자하는 패관소설을 통해 누구나 자유롭게 이야기를 펼치던 매설방에 대한 탄압을 기점으로 꼭두각시 놀음, 인형극, 가면극 등 전통 연희가 줄지어 등장한다. 여기서 독재와 부정부패 등 나라를 혼란하게 만드는 자들에 대한 비판이 배우들의 입을 빌려 신명 나게 펼쳐진다.
3년 전 공연을 관람할 당시에는 권력층에 대한 분노가 확연하게 와닿았다면, 이번에는 모든 상황이 종료된 후 그에 관해 조소하는 느낌이라 순한 맛에 가까웠다. 관객과 배우의 목소리가 하나 되어 “씨구야!”를 계속해서 외쳤던 그때가 생각났다. 그럼에도 모든 이야기를 이끄는 산받이의 주도하에 여기 모인 관객들이 이야기 판에 물들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여전히 즐거웠다.
공연 초반에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흥겹고 신명 나는 ‘이야기꾼’부터 듣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쾌-하였도다’, 민중의 한과 분노가 폭발하는 ‘새가 날아든다’까지 전통 악기와 밴드의 조합으로 탄생한 신선한 넘버들은 중독성이 넘쳤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그런 이야기’는 이야기를 포기하지 않은 평범한 자들이 역사를 만든다는 사실을 전하며 짙은 여운을 남겼다.
공연예술은 본질적으로 사회에 대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놓치고 있던 사실을 예술가들의 입을 빌려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창작자들의 역할이다. 물론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쉽고 재밌는 공연도 좋다. 허나 가끔은 눈앞의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공연이 필요하다.
뮤지컬 '판'이 이야기하듯 지금의 시대를 만들어가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임을 깨닫고 살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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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판’은 가벼워 보여도 결코 가볍지 않은 공연이다. 새 한 마리의 날갯짓이 모이고 모이다 보면 어느새 돌풍으로 변하는 것처럼 말이다. 당신이라면 가만히 있을 것인가? 한 번 더 날아오를 것인가?
그 답이 궁금하다면 바로 지금, 이야기 판으로 뛰어들자. 얼쑤!
26/01/02 20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