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예능 ‘흑백 요리사 시즌 2‘가 장안의 화제이다. 한국에서 요리로 손꼽는 100인의 셰프들이 총출동하여 온갖 산해진미를 요리하는 모습들을 보고 있으면 ’미식‘의 힘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미슐랭 스타 셰프들의 화려한 손기술과 듣도 보도 못한 소스들이 춤을 추는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있다. 바로 백수저 셰프로 출연하신 ’선재 스님’이다. 사찰음식을 주로 만드시는 스님이 경연에서 선보인 음식들은 ’잣국수’나 ‘비빔밥‘ 등으로 우리가 흔히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친숙한 메뉴들이다. 그러나 맛은 평범하지 않은 듯싶다. 스타일도 다르고, 입맛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두 심사위원이 접시에 코를 박고 비빔밥을 먹는 장면은 시즌 1을 포함한 흑백 요리사 장면 중 가장 군침 도는 순간이었다. 특별한 재료나 소스가 들어간 것도 아니었는데,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손맛’은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손맛’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바로 ‘엄마’이다. 과자 이름도 ‘엄마 손 파이‘라고 지을 만큼 만국 공통으로 공감할 수 있는 맛이 바로 엄마의 사랑이 담긴 음식 아닐까? 아무리 음식을 못하는 엄마라 할지라도 정성과 사랑이 가득한 따뜻한 한 끼를 추억하지 않는 자식은 없을 것이다. 여기 ‘진심’으로 가득 찬 따뜻한 식탁을 나누는 특별한 레스토랑에 관한 영화 <논나>를 소개한다.
사랑하는 어머니를 보낸 남자 ‘조’는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그녀의 이름을 건 레스토랑을 개업하기로 한다. 이 식당엔 특별한 레시피가 있는데 바로 진짜 이탈리아 할머니 셰프들인 ‘논나‘들과 함께 한다는 것이다. ’논나‘는 이탈리아 어로 ’할머니’를 뜻하며, 영화의 원제는 ‘Nonnas’로 ‘할머니들’이라는 뜻을 나타낸다. 조의 전 재산으로 개업하게 된 레스토랑은 ’스태튼 아일랜드‘에 위치하고 있는데, 스태튼 아일랜드는 뉴욕의 5개 자치구 중 하나로, 남서부 섬에 위치하여 무료 페리로 맨해튼에서 들어갈 수 있다. 이곳은 뉴욕에서 이탈리아계와 아일랜드계가 많은 지역으로, ‘베라자노내로스교’라는 이탈리아 탐험가의 이름을 딴 다리가 있을 정도로 이탈리아 문화와 전통의 영향이 지역 사회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슬플 땐 배를 채워야 해, 그래야 이겨낼 수 있어”
따뜻한 말로 상실의 아픔을 겪는 ‘조’를 위로하던 할머니들은 주방에 들어가자마자 개성 강한 이탈리아 할머니로 돌변한다. 지역 갈등으로 서로에게 토마토와 마늘을 던지는 그들을 보니 화개 장터에서 전라도와 경상도 사투리로 욕 배틀을 뜨던 우리의 모습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러나 싸움은 언제나 서로의 벽을 허무는 작은 열쇠라고 했던가, ‘할머니‘이기 이전에 엄마이고, 여자이고, 소녀였던 그들은 서로 진심으로 세월과 마음을 나누며 하나가 된다. 단순히 할머니이기 때문에 마음이 통한다는 것이 아닌, 그들이 쌓아온 역사와 청춘의 시간이 지금의 빛나는 은발을 만들어 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인상 깊은 연출이었다.
“우리 논나들을 위하여!”
슬로푸드의 가장 큰 힘은 음식을 먹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모두 행복해한다는 것이지 않을까? ’조’의 레스토랑에 모인 논나들은 그 누구를 위해서 요리하지 않는다. 바로 자기 자신을 위해 절뚝이던 발을 이끌고 온 힘을 다해 움직인다. 느리지만 하나하나 정성 들여 차린 음식들에는 그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인생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논나들의 마음을 잘 아는 ‘조’도 레스토랑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발 벗고 나서지만, 이상하게도 가게에는 새로운 손님이 들어오지 않는다. 이런 게 바로 이탈리아 식 텃세인 걸까. 어쩐지 폐업한 가게 자리를 샀을 뿐인데, 마을의 경계심을 산 조의 가게는 하루, 이틀..한 달이 되도록 손님이라곤 친인척들 밖에 오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도 논나들의 기를 꺾지 않으려 주급을 챙기고, 이 가게가 반드시 잘 될 것이라고 믿는 조의 태도가 감동스러웠다.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고 요리하는 논나들만큼이나 강한 마음을 갖고 자신의 레스토랑과 논나들의 음식들을 자랑스러워하는 조의 믿음이 서로를 가족으로 만드는 연결 고리가 되는 것 같았다.
“밥상에서는 늙지 않는다”
논나들 과 조의 레스토랑은 결국 운영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마지막 디너파티를 준비한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그들은 기뻐 보였다. 자신들을 위해 힘써준 모든 이들을 초대하여 근사하고 따뜻한 음식들을 대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모르는 사이여도 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함께 음식을 나누며 이야기하고 춤을 추고 논나들을 위해 힘껏 박수를 쳤다. 영화 <논나>의 매력은 단순히 ’최상급 요리‘나 ‘이탈리아 문화‘를 보여주는 것에서 넘어서 ‘함께하는 식탁‘의 값어치를 깊게 느끼게 해준다. 영화에서는 ‘밥상에서는 늙지 않는다‘라는 말이 반복해서 나오는데 이는 ‘가족과 함께하는 식사의 소중함‘으로 해석된다. 밥상 앞에선 세대나 성별 간의 차이. 문화와 편견을 뛰어넘어 모두가 하나 되는 정서적 교류의 장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논나들의 레스토랑 ‘에노테카 마리아’는 망했을까? 이 영화는 실화를 기반으로 2025년 기준 15년째 현재까지도 스태튼 아일랜드에서 손에 꼽히는 식당으로 사랑받고 있다. 전화 예약이 필수라고 할 만큼 인기가 좋고, 이제는 이탈리아에서 국제적으로 뻗어나가 세계 각지의 논나들을 고용 중이라 한다. K-푸드가 사랑받는 지금 언젠가 ’한국 논나’의 특별 요리도 에노테카 마리아에서 맛보게 되는 날이 올까?
극적인 반전도, 자극적인 연출도 없는 잔잔한 영화였지만, 마치 영화 속 슬로푸드와 같이 은은한 감동과 따스한 이야기, 그리고 매력적인 논나들의 캐릭터가 돋보인 가족 영화 <논나>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