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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사막이 배경인 영화들을 떠올려 본다. ‘알라딘’의 사막은 신비함을, ‘듄’의 사막은 경이로움을, ‘매드맥스’의 사막은 분노를 보여주었다. ‘시라트‘의 사막은 끝없는 상실을 강렬하게 담아내고 있다. 어쩌면 한때 큰 바위 산이었던 단단한 돌은 깨지고 깨져 마침내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작은 모래 알갱이가 되었을 때, 그제야 힘없이 바람에 날아가며 ‘상실’에 대해 느끼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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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상실과는 거리가 먼 듯 관객들의 심장이 울릴 만큼 큰 소리의 음악으로 첫 장면을 시작한다. 2000년대 홍대 클럽을 연상시키는 익숙한 EDM 비트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보이고,  낯선 듯 익숙한 풍경에 어리둥절하다가도 어느새 그들과 함께 동화되어 내적으로 리듬을 타게 된다. 음악만큼 강렬한 복장과 화장을 한 사람들 사이로 너무나 평범한 옷을 입은 남성과 아이가 눈에 띈다. 주인공 ‘루이스‘는 아들 ’에스테반’과 함께 실종된 딸을 찾아 레이브파티를 헤매고 있었다. ‘광란의 파티’, ‘미친 듯이 악을 쓰다’라는 뜻의 ‘Rave Party’처럼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춤추는 사람들과 그들 사이를 천천히 지나가며 얼굴을 확인하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마치 물과 기름처럼 서로 섞이지 않고 떠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큰 협곡을 채우고 있던 사람들은 군인들에 의해 해산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레이브파티가 열린다는 정보를 얻은 일부 사람들이 감시 라인에서 벗어나 탈주하게 된다. 그곳에 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루이스와 그의 아들도 갑작스럽게 그들을 따라나섰고, 절대 섞이지 않을 것 같던 물과 기름이 함께 사막을 동행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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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트>에서는 ‘상실’의 원인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라디오나 텔레비전 속 모습, 그리고 군인들의 말을 통해 ‘전쟁‘중임을 암시하긴 하지만 특정 지역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나오지 않는다. 춤출 때는 몰랐던 레이버들의 팔 하나와 다리 하나가 없는 것도 직접적으로 콕 집어 말하지 않고, 집과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들의 부재도 무겁게 표현하지 않는다. 대신 황량한 사막만이 끊임없이 화면에 계속 될 뿐이다. 루이스와 그의 아들조차도 가족의 존재가 없는 부재 상태이지만, 그들의 막막한 마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감독은 씨네 21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레이브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이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중략) 어떤 면에선 상처를 드러내는  게 훨씬 성숙하게 자신을 받아들이고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관객들 역시 그런 인물들에게 쉽게 공감하고 매료된다고 여긴다."

 

- 씨네 21 인터뷰 중

 

 

딸을 찾기 위해 낯선 문화의 땅에 왔음에도 자신뿐만 아니라 아들의 감정도 꾹 눌러 담아 오던 ’루이스‘의 마음은 생과 사의 경계인 사막에서 레이버들과 협력하며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레이버들에겐 은총이지만 루이스에겐 그저 소음이던 음악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지며 각자의 영역을 이해해나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힘을 합쳐 사막을 헤쳐가던 그들에게 비극적인 사건이 시작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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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장난 혹은 전쟁의 비극을 나타내듯 생과 사의 경계에서 사막에서 사람들은 충격적 사고를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루이스는 상실의 가운데 서고 나서야 사람들의 상처를 똑바로 마주하게 된다. 상처 입은 자들만이 상처 입은 자를 보듬어 주 듯 레이버들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루이스를 위로하고자 한다. 다시 큰 음악을 틀고 모든 걸 잊기 위해 몸부림치듯 춤을 추기 시작하고, 루이스도 자신만의 몸짓으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애쓴다. 첫 장면의 그들의 춤을 떠올려 보면 그때와는 다르게 온갖 감정이 느껴진다. 리듬에 맞춰 흥겨워 보이던 그들의 모습이 이제는 울분에 어찌할 줄 몰라 몸을 못 가누는 것처럼 보인다.

 

 

”세상의 종말은 일어난 거지?”

 

“나도 몰라, 종말은 이미 오래전에 시작됐어”

 

 

지옥을 가로지르며 이승과 낙원을 잇는 다리 ’시라트’ 속에선 세상의 종말보다 개인에게 종말이 이르렀을 때 삶을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종말의 기준점은 어떻게 정하면 되는 것일까. 마치 사막에서도 생명이 피어나는 것처럼 이미 다 끝났다고 생각할 때 새로운 삶이 시작되기도 한다. 그리고 새로운 터전이 이승이 될지 낙원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기찻길에 기차가 운행하려면 두 개의 철로 선이 나란히 함께해야 한다. 종말의 지옥 속에서도, 끝없는 상실 속에서도 서로가 곁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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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와 레이버들은 과연 칼날보다 날카로운 길 끝에서 낙원을 찾을 수 있을까? 제78회 칸영화제 심사위원 상 수상작인 <시라트>는 이미지적 충격과 사운드 효과가 훌륭하기에 반드시 극장에서 만나기를 강력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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