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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나에게 필요한 영화, 여행과 나날 [영화]

여행의 이유는 말로부터 벗어나는 것

by 원미 에디터
2025.12.29 07:16

 

 

당일치기라도 좋으니, 어디로든 혼자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올해를 되돌아봤을 때 좋았던 순간도 많았고 나름의 성과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어딘가 공허한 마음은 어떤 방법으로도 채워지지 않았다. 원래는 대부분의 시간에 기분이 좋았지만, 요새는 가만히 있을 때 웃음이 잘 나지 않는다. 여행이 필요한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여행을 가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언젠가 김영하 작가의 책 『여행의 이유』를 읽다가 발견했던 문장을 적어놓은 적이 있다.

 

 

고통은 수시로 사람들이 사는 장소와 연관되고, 그래서 그들은 여행의 필요성을 느끼는데, 그것은 행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다.

 

- 데이비드 실즈

 

 

이처럼 나의 괴로움이 곳곳에 묻어있는 내 방에서 혼자 우울해하고 있을 무렵, 미야케 쇼 감독의 <여행과 나날>을 보게 되었다. 영화 속 심은경 배우가 맡은 각본가 ‘이’는 꼭 나를 보는 것 같았다. 그는 나레이션을 통해, 일상을 산다는 것은 주변의 것들에 말을 붙여가는 과정이고, 살아가다 보면 그 말에 갇힌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말한다. 따라서 말에서 멀어지기 위해서 여행을 떠난다는 그 이유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어떤 생각도, 어떤 말도, 어떤 글도 더 이상 쥐어짜 내고 싶지 않을 때, 말에서 멀리멀리 떠나서 본질적인 순간과 감정에만 집중하고 싶을 때 여행을 가게 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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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나날>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앞부분에는 ‘이’가 집필한 각본으로 만든 영화가 나온다. 여행 중 일본의 바닷가 마을에 도착한 여자와, 그곳에 머물던 남자가 만나는 이야기. 역시나 여행을 소재로 하지만 계절은 여름이다. 영화가 상영된 이후 GV 장면에서는 사람들이 각자 작품에 대해 평한다. 언급되는 내용들처럼 그 영화는 에로틱하게 읽을 수도, 서로 이해할 수 없는 두 사람 간의 고독으로 읽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내가 그 영화에서 읽은 것은 ‘이’의 부유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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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대사는 각본가의 생각을 보여주기에, 대사들을 통해서 ‘이’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다음과 같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생각이 너무 많아지니까, 생각을 하지 않도록 아주 바쁘게 살면 어떨까요?” 하고 묻는 남자에게 여자는 “그건 또 그것대로 힘들다”고 대답한다. 남자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묻는다.


생각할 틈도 없이 힘들게 살면 지치지만,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생각이 너무 많아져서 괴로워진다. ‘이’는 이런 딜레마 속에서, 주변에서 옥죄어오는 말들 속에서 지쳐가고 있었던 것이리라. 그리고 ‘이’는 자신의 영화를 보며 스스로 재능이 없다는 좌절감을 느낀다. 생각이 너무 많을 때, 결과물이 좋지 않은 것은 모든 분야에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일상을 살다 보면 이런저런 말들에 둘러싸여 어쩔 수 없이 생각이 많아지기도 한다. 이 지점에서 나는 ‘이’라는 인물과 공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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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이’는 말에서부터 벗어나기 위해, 머리를 식히기 위해 눈이 많이 오는 겨울날 여행을 떠난다. 가는 길에 사진도 찍고, 자연의 풍경을 감상하기도 한다. 이윽고 숙소를 구하지만, 인기 있는 곳은 모두 만실이다. 하는 수 없이 산속에 있는 ‘벤조’라는 인물의 여관에 묵게 되는데, 친절한 서비스도 없고 심지어 코 고는 주인이랑 같은 공간에서 자야 한다. 그러나 그의 행동과 살아가는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마음을 편하게 하는 구석이 있다. 여관에 며칠을 묵던 중 ‘이’는 ‘벤조’와 함께 잉어를 훔쳐 오는 짧은 해프닝을 겪지만, 그 과정에서도 어느 때보다 즐거움을 느낀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는 여행은 왠지 재미가 없다. '벤조'와의 만남은 유명한 온천 숙소에 묵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여행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뜻밖의 이벤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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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 내가 가장 몰두하는 일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일이다. 그리고 <여행과 나날>은 이를 스크린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해 준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 혹은 고요하고 정적인 설원 등 화면을 가득 채운 자연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멀리서 자연의 색채를 고스란히 담는 방식, 화려한 효과를 가미하지 않고 수수하게 관조하는 방식은 관객으로 하여금 여행의 기분을 느낄 수 있게 만든다. 여행을 떠나는 그 마음과 여행에서 볼 수 있는 풍경, 그리고 예상치 못한 즐거운 사건까지, 가히 여행의 미덕을 다 담은 영화라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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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혼자 여행은 떠나지 못했다. 영화를 보고 깨달은 바가 있다면, 나를 둘러싼 권태로움은 내 다짐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여행이라는 명목으로 도망쳐야만, 물리적으로 벗어나야만 가능할 수도 있다. ‘이’의 영화 속 대사처럼, 방 안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살아있는 느낌’은 여행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반복적인 일상과 말들 사이에서 나도 모르게 생기를 잃었을 때, 새로운 곳으로 떠나서 활력을 충전해야만 하는 것이다.

 

자, 그러면 어디로 떠나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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