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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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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구하고 있습니다.

 

전세로요. 얼마 전까지는 직장을 구하고 있었는데 그새 문장 속의 주어가 바뀌었다. 세상에 나올 때 모든 걸 다 내 힘으로 하지 못한 탓인지. 30대가 돼도 내 손에 쥘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다. 차도 있고 집도 있고 뭐 여러 가지 내 것이에요, 이야기할 수 있는 게 많을 줄 알았는데 말이다.

 

10년간 같이 살던 동거인이 결혼을 하고 동생을 주워 같이 살고 있어서 아직 월세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세는 한국에만 있는 기묘한 제도이지만, 언젠간 한국 땅에서 없어지지 않겠냐는 부정적인 전망도 있지만 사실 내가 사는 동안은 이어질 것 같아서 전세를 살아야겠다 생각 중이다. 당장 내일의 미래도 모르는데 2년 후의 미래에 돈이 쌓일 걸 생각해서 뭔가를 투자하겠다는 것이 정신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 무리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2년 후에 내가 생존해 있다면 전세할 걸 후회하고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열심히 전세를 알아본다.

 

그런 일상 속에서 30대의 무게감을 느낀다. 고작 30대에 까불고 있네 라는 말을 듣더라도 할 말은 해야겠다.

 

인생 3분의 1을 산 지점에서 내 삶에 대한 인사이트는 제공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20대 후반에도 정처 없고 불안했지만 30대의 불안함은 좀 더 확실해진 실체를 동반한다. 동일한 점은 아마 내 자리가 어디인지 확실히 모르겠다는 것. 다른 지점은 아마 내가 책임져야 할 내가 20대보다 늘어난다는 것이다. 암보험을 들었고 운전자 보험을 들었다. 아프면 병원에 바로 가게 된다. 당일 수술해야 하는 상황에서 보호자가 필요하다는 점을, 내가 속한 공동체가 주변에 존재해야 한다는 점을 인지한다. 직장에 후배가 생길 연차, 아랫사람을 대하는 방법도 익혀야 한다. 갈수록 고정 지출이 늘어나는 세상에서 돌아갈 수 있는 집에 대한 투자의 필요성을 느낀다. 엄마 아빠에게 물어볼 수 있는 것들은 한계가 생기고 이제 나는 새로운 사회가 만든 질서나 법을 익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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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틱, 틱… 붐!'을 다시 봤는데 30대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가 느껴져서 껄껄 웃고 말았다. 웃긴 이야기가 아닌데…

 

30대란 시커먼 아가리를 쩍 벌리고 갈 곳 없는 불쌍한 20대를 부동산과 투자와 보험과 노후 대비 등의 문제들로 끌어당기는 개미지옥이다. 발이 푹푹 빠지는 바닥 아래에는 어른의 책임과 부담이 자리하고 있다. 20대에는 몸이 가벼워 그런 것들을 비웃으면서 날아다닌다. 고작 1년이 더해졌을 뿐인데 이상하게 꺾이는 무릎을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모래 아래로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지점이 30대가 된 내가 가지는 불투명한 공포다.

 

또 다르게 말하면 30대는 1차 세이브포인트 같은 거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여기서부터는 놀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까딱 잘못하면 님의 노후가 끝장날 수도 있거든요.. 같은 경고 표지의 역할도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30대에 각자의 선택을 한다. 결혼을 하는 친구들도 있고 갑자기 모든 커리어를 내려놓고 다른 길을 선택하는 친구도 있고 하던 거 열심히 하는 사람도 있고 표준화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그럴 필요와 의무는 어디서도 공식적으로 요구된 바 없지만 대부분이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에 대체로 정답처럼 여겨지는 그런 것.

 

나의 경우에 30대에 직면한 가장 큰 과제는 집과 회사였다. 더 번듯하고 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집을 찾기 시작했고 더 괜찮은 회사로 가기 위해서 열심히 나 자신을 예쁘게 포장하기 시작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회사를 옮겼다. 오랜만에 결심한 이직이었고 환경도 하는 일도 바뀌는 선택이라 조금 겁나긴 했지만 모두가 하나같이 좋은 선택이라고 고개를 끄덕인 만큼 이동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난 지금 선택에 대한 불만은 딱히 없다. 두 번째 이직만에 나는 어느 정도 기대감을 버리는 연습에 통달했고 세 번째에 와서는 어떤 막막한 적응도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해결된다는 점을 믿었다. 그리고 그 경험은 나를 그렇게까지 배신하진 않았다.

 

그리고 다음은 집, 아 이 문제는 아직도 해결이 안 됐다. 가장 괴로운 지점은 내가 완전한 무지의 영역으로 내던져진 상태라는 점이다. 어떤 영역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이 있다고 한들 조금의 틈으로 내 상식이 뒤집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공포스럽다. 그리고 영영 내 자리가 없을 것이라는 점도 매섭다. 세 달 전은 너무 빨라서 내 입주일자를 맞출 수 있는 집이 없지만 두 달 전에는 퇴실 통보를 해야 한다. 애매하게 떠버린 시간 속에서 영원히 부동산을 부유하다가 집이 구해지지 않는다는 압박 속에서 포기하는 법을 배웠다. 그럴듯한 방 두 개를 마련하기 위해선 최소 2억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포기는 쉽고 대신 그 자리를 분노가 대부분 차지한다.

 

아마 당분간 나는 집을 구하고 있을 것이다. 전세를 알아보고, 계산기를 두드리고, 포기했다가 다시 분노하는 일을 반복하면서. 주변의 30대들과 집 이야기를 하면서 막막함과 약간의 상실감, 본능적인 짜증을 여러 번 공유했다.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고 당장 몇 달 뒤 내가 어디에 살게 될 지도 불투명하다. 어쩌면 30대는 아직 자리를 얻지 못한 시기라기보다 자리가 없다는 감각을 견디는 법을 배우는 구간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저 만 19세가 넘은 성인일 뿐 어른이 되진 못했다 투덜거리는 모든 30대를 위하여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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