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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7년 만에 휴대폰을 바꿨다.

   

지금까지 쓰고 있었던 건 2018년 11월, 대학교 입학이 확정된 날 아버지가 선물로 사주셨던 아이폰 XS 기종이다. 고등학교의 끝자락부터 대학 생활, 그리고 직장에 들어온 지금까지 늘 곁에 있던 물건을 드디어 내려놓았다.


그동안 휴대폰을 교체하지 않은 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몇 번을 떨어뜨려도 잘 작동했고, 사용하는 기능도 늘 비슷했다. 다만 배터리는 지나치게 빨리 닳아 어디를 가든 보조배터리를 챙겨야 했고, 용량이 거의 가득 차 있어 주기적으로 앱과 사진을 정리해야 했다. 불편함은 있었지만, 버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책상 위에 기존 휴대폰과 새 휴대폰을 나란히 놓고 eSIM을 옮기려던 순간, 문득 오묘한 감정이 들었다. 한쪽은 꼬질꼬질하게 때가 탔고, 다른 한쪽은 사용감 하나 없이 반짝였다. 7년을 썼으니 당연한 차이였지만, 그 사실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두 휴대폰을 오가며 백업하다 보니 이전 휴대폰의 메모 앱과 일기 앱, 갤러리를 차례로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 안에는 지난 7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메모 · 일기 앱


 

메모 앱에는 나의 고군분투가 남아 있었다. 아르바이트나 직장에서 일을 하다가 급하게 받아 적은 내용들이 전부 그곳에 있었다. 대부분 제목도 없이 짧은 단어 몇 개만 나열된 메모들이었다.

 

특히 대학생 시절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며 남긴 메모들이 재미있었다. 당시에는 주문을 빨리 쳐내야 하는 급박한 순간이었겠지만, 지금 다시 보니 알 수 없는 단어들의 나열뿐이었다. 그럼에도 그 메모들을 보며, 적어도 그때의 나는 꽤 바쁘게,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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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에게 친절하고자 노력했던 과거의 나

 

 

반대로 일기 앱에는 단답이지만 당시의 감정이 담겨 있었다. 아이폰 기본 일기 앱은 매일 하나의 질문을 선택해 그에 대한 답을 기록하는 방식인데, 유독 2024년에 작성한 기록이 많았다. 힘이 필요했던 시기에, 내가 나 스스로에게 이런 말을 건네고 있었다는 사실이 조금 놀라웠다.

 

 

 

갤러리


 

학창 시절 대부분을 ‘덕질’과 함께 보낸 나에게 갤러리는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사진을 저장하는 공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열렬히 좋아하던 아티스트의, 누런 필터가 낀 셀카 사진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사실은 새삼스러웠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여행, 자연, 고양이, 페스티벌 영상처럼 일상을 기록한 사진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회사에서 공간 답사를 나가는 일이 잦아지면서, 행사가 열릴 건물의 구석구석을 촬영한 사진들도 갤러리에 쌓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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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좋아하는 것들이 늘어났다. 학생 때보다 경험의 종류가 다양해졌고, 그 안에서 행복을 느끼는 지점도 많아졌다. 친구들과 다녀온 일본 여행, 가족과 방문한 서울 근교의 카페, 동료들이 챙겨준 생일 케이크와 선물, 우연히 발견한 도심 속 공원과 우리 집 고양이까지. 나는 일상의 경험이 얼마나 소중한지 조금씩 배워가고 있었다.

 

 

 

음악


 

내가 사용하는 음악 어플에서는 매년 리캡 리포트를 제공한다. 2025년에는 어쩌다 밴드 음악에 빠져, 올해 가장 많이 들은 음악의 대부분이 밴드 음악이었다. 그런데도 리포트 속에서 수많은 밴드 음악 사이로 보이는 익숙한 아티스트. 바로 5년동안 발매하는 모든 곡들을 한 곡도 빠짐없이 들었던 가수 '엔하이픈'이었다.

 

이제는 데뷔 직후와는 사뭇 다른 스타일의 음악으로, 특히 해외에서 큰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의 콘셉트나 서사, 장르를 논하려면 그것은 오피니언에서 이루어져야 맞기에, 여기서는 내가 즐겨 들었던 음원만 소개하려 한다. 워낙 좋은 곡이 많아 한 곡만 고르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가장 애정하는 곡이라면 미니 5집 의 5번 트랙인 'Orange Flower'일 것이다.

 

 

 

 

오렌지꽃을 주고받는 것으로 사랑을 맹세하는 서구권의 문화에서 착안한 노래로 소년과 소녀의 사랑이 주제인데, 사실 주제나 가사보다 밴드 스타일의 리듬과 멜로디가 취향이라 자주 들었다. 이 때는 밴드 음악에 입문하기 전이었는데도 이 노래를 그렇게나 좋아했던 걸 보면 역시 취향은 쉽게 변하지 않는 것 같다.

 

뭘 해도 쉽게 질리고 금방 흥미를 잃는 나 같은 사람이, 한 아티스트의 음악을 5년 째 들어온다는 건 굉장히 기념비 적인 일이다. 팬심을 넘어서 인생을 살며 이토록 취향에 맞는 아티스트를 만나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이제는 어떤 앨범을 내도 내게는 '믿고 듣는 아티스트'가 되었기 때문에, 2026년에도 변함없이 그들의 음악을 계속해서 들을 예정이다.

 

***

 

휴대폰 속에 남아 있는 지난 7년을 훑고 나니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그래도 잘 살아왔다’라는 말이었다. 스스로 대단한 성취를 이뤘다고 느낀 적이 많지 않고, 무너졌던 순간도 많았지만, 그런 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 힘든 시기 속에서도 나름의 즐거움을 찾아냈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도 분명히 있었다. 내가 미처 기억하지 못한 다채로운 순간들을 휴대폰은 묵묵히 기록하고 있었다.


현대인에게 휴대폰이 분신이라면, 7년을 함께한 이 휴대폰은 말 그대로 나 그 자체였다. 곳곳에 남은 기록을 발견할 때마다 보물찾기하는 기분이 들었다. 다가오는 신년과 함께 새 휴대폰으로 새로운 기록을 시작하는 지금, 앞으로 어떤 순간들이 이 작은 기계 안에 차곡차곡 쌓이게 될지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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