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부끄럽지만 에디터로서 글을 연재하며 ‘작가’가 되는 짜릿한 상상을 해 본 적이 종종 있다. 물론 지금 다시 읽으면 부족한 부분 투성이지만, ‘그간 연재해 온 에세이들을 차곡차곡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출간하게 된다면 어떨까?’,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는다면 즐거울까?’ 하며 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펼친 적 있다.
이러한 기저에 깔린 갈망이 있었기에, ‘나의 무엇이 책이 되는가’라는 제목을 처음 접하고 나서 선택함에 망설임이 더욱 없었다. 그래, 과연 나의 무엇이 책이 될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런데 사실은 조금 사실 좋은 의미에서 뒤통수를 맞았다고 해도 될 만큼 큰 ‘반전’이 있었다. 책의 표지만 보고 예상한 전개는 작가의 어린 시절, 인상 깊은 경험에서부터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 소위 말해 특별한 시간과 경험들을 시간순으로 나열하며 조금은 더 차분하고 ‘정석적인’ 방법으로 풀어나가는 것이었는데 말이다.
보기와는 다른 그러한 ‘반전’이 무엇이었는지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소개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근거 있는 희망’을 선물하는 책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피아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세상을 바꾼 예술작품들’ ... 모두 다른 작가의 저서가 아닌 ‘나의 무엇이 책이 되는가’를 쓴 임승수 작가의 작품이다. 이외에도 피아노, 목민심서에 대해 다룬 저서들도 있다.
첫 번째 반전은 에세이면 에세이, 철학이면 철학. 오로지 외길만을 걸으며 완성한 이력이 아니라 실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며 쌓은 저자의 커리어이다.
그냥 저서만 나열했을 뿐인데. ‘작가는 전문분야가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었어?’ 하는 고민을 타파한다. 다양한 분야에의 글쓰기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본인이 농도 짙은 애정을 가진 주제나 분야가 있다면 얼마든지 ‘책’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또한 구체적인 실제 경험을 통해 전수하는 ‘노하우’는 이렇게 촉발된 희망의 불씨를 책을 읽는 내내 간직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오마이뉴스를 통한 연재와 출판 일대기 이야기, 또 책의 내용을 구성하려고 할 때의 분량 부담에 대한 실질적인 조언 등이 그렇다.
‘나는 이러한 특별한 경험이 있어 특별한 책을 출간할 수 있었다’라는 다소 아쉬운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저서의 다양성, 다양한 출간 경험을 통해 독자들에게도 충분히 근거 있는 희망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매우 독창적이라고 할 수 있다.
재미와 센스를 두루 갖춘 책
나는 책을 읽을 때 다음과 같은 상황일 때 ‘재미있는데’하고 느낀다. 첫 번째는 책의 어떤 부분에 깊이 공감하며 읽을 때, 또 두 번째는 그냥 여타 돌려 말할 필요 없이 그 자체로 재미있을 때.
그래서 ‘나의 무엇이 책이 되는가’는 시종일관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글을 쓸 때 자주 실수하게 되는 부분을 짚어주는 부분에서 ‘그럼, 그럼’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 수 있었다.
글을 쓸 때 지시어를 남발하는 습관이 있는 나는 특히 이 대목을 읽을 때 특히 흥미로웠다. 완벽한 실수의 예시와 약간의 꾸짖음 그 뒤로 차근차근 지시어를 남발했을 때의 문제점과 올바른 서술 방법까지. 친절하게 혼나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이외에도 글을 한 편이라도 써본 독자라면 누구나 자신의 글쓰기 경험을 떠올리며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이 많다. 그리고 한바탕 공감이 끝나고 나면 쉴 새 없이 ‘순수하게 재미’ 있는 모먼트가 쏟아진다. 심지어 이전에 썼던 저서에서의 발췌 부분에서조차 그 자체로 웃긴 문장과 어휘들을 찾을 수 있으니. 말을 다 한 것 같다.
시종일관 ‘책 만들기’에 집중하는 책
동일시하기 쉽지만 사실은 글쓰기와 ‘책 만들기’는 엄연히 다르다. 글쓰기는 글을 작성하고 난 후의 결과물이 단편의 파일로 남을 수도, 종이 한 장에 그칠 수도 있는 부담 없는 일에 가깝다. 또 다른 사람들과의 이해관계에서 매우 자유롭다. 하지만 책은 여러 글이 모여, 또 여러 사람과 여러 사람의 현실적인 이해관계를 거쳐 우리가 직접 보고 만질 수 있는 실물 상품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책의 속지를 이루는 글을 ‘잘’쓰는 법을 설명하는 데에 분량을 일정 부분 할애하면서도, 우리에게 생소한 ‘책 만드는 과정과 결과’를 시작부터 끝까지 놓치지 않고 쉬운 언어로, 또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소개 해 준다는 점에서도 저서의 명확한 목표와 차별성이 드러나 좋았다고 말하고 싶다.
‘나의 무엇이 책이 되는가’는 글쓰는 일을 좋아하는, 막연한 작가의 꿈을 가진 독자들에게는 기분 좋은 ‘긴장감’, 그리고 따라 하고픈 모방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다.
또 글에 관심이 없던 독자들에게까지 거침없이 다가가 글쓰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없애는 ‘재미’를 선물하는 책이다.
그러니까 되도록 모두가, 이토록 다재다능한 책을 만나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