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1. 설명하지 않아도


9년 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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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도착했어, 천천히 와.

4번 출구 쪽에 가 있을게.


지하철 개찰구를 지나 4번 출구 방향으로 걸어가며 양손으로 핸드폰을 두들겼다. 그때 나는 타이스의 명상곡 중후반부를 듣고 있었고, 문자의 답은 거의 바로 도착했다.


어, 나도!


엥? 이어폰도 빼지 못한 채 몸을 뒤돌렸다. 하얀색 패딩을 입은, 나만한 여자애가 양손으로 핸드폰을 도닥이며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아, 그다.


나는 곧장 그의 이름을 불렀고, 불린 이름의 주인은 금세 고개를 들었다. 환한 표정 하나가 그려졌다. 호다닥 앞으로 다가가 양팔을 벌려 서로를 안았다. 반가움의 속도보다 기쁨의 표출이 앞섰는지, 그만 배를 쾅— 하고 부딪히는 첫 인사를 나눴다.


나는 소리 없이 ‘억’ 하고 있다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우리 배로 인사한 것 같은데? 아하하…”


팔짱 하나를 사이좋게 나눠 낀 채 길을 거닐며 서로의 목소리에 대해 말했다.

 

그가 말했다. “너, 더 목소리가 멋있어졌다.”

나는 —갑작스러운 칭찬에 당황했지만— 웃으며 답했다.

“너도. 넌 진짜 여전해. 변함이 없어.”


그와 내가 다시 만나기까지 대략 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마지막으로 만난 게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가늠조차 어려웠다.


SNS를 통해 외관적으로는 각자 잘 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통화 한 번, 안부 하나 묻지 않았던가. 앳된 듯하면서도 중저음 톤으로 안정된 그의 목소리가 눈앞에 있으니 괜한 애틋함이 맺혔다. 그래, 너는 이런 목소리였다. 이 목소리였어.


다만 여전히 변함없는 것도 분명히 있었다. 그는 내가 알던 성격 그대로 유순했고, 웃음이 많았고, 따뜻했다.


그가 나를 바라보는 눈망울 안에 많은 감정들이 스쳐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시간이 많이 흐르는 사이, 서로가 모르는 시간 속에 여러 일들이 있었던 게 아닐까. 잊고 있던 추억들이 하나둘 꺼내졌다.


떠들썩한 김치볶음밥 맛집에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는 붉은 벽돌에 둘러싸인 ‘음악다방’으로 향했다. 커피와 음악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란다. 이 만남을 주선해 준 중요한 것이 그곳에 있기도 했다.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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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어둑한 분위기, 인파가 북적이지 않고 개별 좌석이 마련된 그 카페에는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이곳에 오래전부터 와보고 싶었다고 친구는 의자에 앉자마자 내게 말했다.

 

우리는 어쩌다 클래식 곁에 있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나는 팝페라, 그 아이는 성악. 우리가 어렸을 때까지만 해도 각자 좋아하는 곡에 대해 밝히면 꽤 독특하다는 말을 듣곤 했다. 때때로 ‘왜’ 그것들을 좋아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물음에 허술한 답변을 내놓아야 할 때가 많았는데, 이 사이 안에서는 그럴 일이 없었다. 왜 끌리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다 알고 있었다.


그러니 오늘의 만남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거창한 소식도 없이 지내던 내가 갑자기 SNS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것도 우리가 좋아하던 장르의 가장 기저에 깔린 클래식을 발견해 이를 주제로 서슴없이 땅굴을 파헤치고 있으니, 이 친구의 입장에서는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파르페와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테이블 위로 하나씩 메달려 있는 은은하면서도 강한 조명 아래에서, 서로의 인생샷을 건져주겠다며 애를 쓰다가도 굳이 한 소파에 앉아 얼굴을 붙여 다정히 사진도 찍었다. 파르페를 다 먹었을 때쯤 그는 내 글에 대해 말해주었고, 나는 그가 원하는 것, 이루고 싶은 것들에 대해 물었다.


그러다 그는 내게 어쩌다 바이올린을 좋아하게 되었는지도 물어보았다. 그에 대한 대답을 내놓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카페 안으로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이 흘러나왔다.


이 곡이 어떤 곡인가. 내가 방금 전 그에게 “어떤 바이올린 협주곡 하나를 우연히 들었는데, 그걸로 시작했어.”라고 말한 참이 아니던가.


9년 만에 친한 친구 앞에서 긴 설명 없이, 음악으로 내가 사랑에 빠진 순간을 이야기했다.


“이 곡 때문에, 좋아진 거야.”


내가 그 말을 하자마자 친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흐르는 소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가 내가 정말 마음이 흔들렸던 부분을 들어주었으면 해서 말을 덧붙였다.


“이따가 2악장에 어떤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을 들어봐 줘.”


그는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1악장이 지나가는 사이 대화를 이어갔는데, 마침 그때 여덟 명쯤 되는 손님들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일순간 당황했다. 상대적으로 고즈넉한 2악장은 —스피커 음량도 크지 않아— 못 듣고 넘어가겠구나 싶었는데, 감사하게도 그들은 소근소근 대화를 나누었다.


덕분에 오가는 말들 사이에서 친구와 머리를 맞대고 ‘그 부분’을 기다릴 수 있었다.


그는 물었다.

“여기야?”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답했다.

“응, 조금만 있으면 나와. 잠깐만, (…!) 여기다.”


시선을 바닥에 내려놓은 채 가만히 귀 기울였다. 머물렀다. 내 시야에 그가 소리를 따라가고 있는 게 보였다. 내가 신호를 주기 전까지 그렇게 가만히.


나는 물었다.

“어때?”


그는 눈망울을 반짝이며 답했다.

“뭔지 알겠다.”


그래. 더 묻지 않았다. 물을 필요가 없었다. 그는 내가 무엇에 끌렸는지 알았고, 나는 그가 무엇을 이해했는지 알았다. 내가 어찌 그 순간을 잊을 수 있을까.

 

 

 

2. 설명이 도착하는 자리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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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공연을 이렇게까지 자주 보러 다니기 전에는, 나만 예습을 잘하고 관람석에서 기침 소리가 덜 나오면 ‘최고의 공연’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공연장이란 공간은 늘 그렇듯 최상의 컨디션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무대에 오르는 연주가들은 모두 눈부신 소리를 펼쳐내겠지, 하고 막연하게 생각하며 관람석에 앉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장르에 깊이 빠져들수록, 생각보다 훨씬 기대에 못 미치는 공연을 종종 접했다. 연주자가 연주를 못했냐고? 곡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냐고? 아니, 이건 소리의 문제였다.

 

소리가 내 앞까지, 이 안으로 들어와야 하는데 훨씬 앞선 지점에서 딱 끊겼다. 그 이상 더 다가오지 않았다. 

 

내가 이 사태를 처음 느꼈던 건 ‘실력에 관해서는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연주가의 무대 안에서였다. 거기다 다른 공연장에서 같은 곡을 들어본 적이 있어 딱 좋은 버전은 어떻게 들려오는지 기억까지 하고 있던 상황이었으니 해괴했다. 


거기다 모양새는 또 어땠던가. 의도된 날 것 이상의, 더 직접적인 소리의 형태로 눈앞에 나타나는 걸까. 분명 이 앞까지 다가올 때는 보다 정제된 형태의 ‘야생적임’이었는데.


여러 물음에 대한 해답을 오래도록 찾지 못하다가, 우연히 한 공연장에서 눈을 껌뻑이며 이 모든 소리의 원인을 알게 되었다. 바로 공연장이었다.


연주가가 아무리 잘해도, 관람객이 매너를 잘 지켜도, 공연장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면 그날 공연의 성공은 100%에서 70%로 줄어들었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만 잘하면 된다는 불안에서 벗어나, 처음 가보는 공연장이나 클래식 전용이 아닌 장소, 혹은 야외 무대에 설 때면 그날의 소리가 어떻게 퍼져나갈 것인지까지 염려하기 시작했다.

 

저 벽과 무대가 바이올린을 혼자 내버려 두진 않을까. 잔향을 거의 만들어내지 못하면 어떡하지. 아, 여기까지 왔는데... (멀리) 


수많은 ‘어떡하지’의 파도 속에서 해결 방법은 하나도 찾지 못한 채, 그냥 그날 연주자가 더더욱 잘해내주는 방향으로 물 떠 놓고 기도해야 하나 싶었던 와중이었다. 그런데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서초에서 흥미로운 강의를 연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것도 ‘공연장이라는 거대한 악기’라는 주제로.


뭐? 공연장이라는 거대한 악기? 그 문구를 보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예매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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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내내 분위기는 꽤 화기애애했다. 음향 컨설턴트 김남돈 전문가가 들려주는 실제적인 사례들에, 공간과 관련된 기본 이론과 공연장에 얽힌 웃픈 이야기까지 더해지니 참여자들의 집중도도 자연스레 높아졌다.

 

그 현업 특유의 애티튜드가 있지 않은가. 아,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이런 내용은 이미 백만 번쯤 강의해온 연륜이 절로 느껴졌다. 다만 시간이 한정되어 있어, 설명을 빠르게 이어갈 뿐이었다.

 

공연장이 어떤 역할을 했어야 했는지, 실제 공연장의 잔향 정도와 무대 설계 시 신경 써야 하는 포인트는 무엇인지, 또 그동안 어떻게 해왔는지까지.

 

그 이야기들을 하나씩 듣다 보니, 내가 불편해할 수밖에 없었던 지난날들을 구체적인 문장으로 설명받는 기분이 들었다.

 

‘좋은 공연장은 잘 울려야 한다. 다만 그 울림은 반드시 사용 목적에 맞아야 한다.’ 저 한마디에 얼마나 많이 긍정했는지 모른다.


공연장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울림의 양이 중요하다는 점, 직접음과 반사음의 시간 차에 따라 그 울림이 결정된다는 점, 잔향 시간이란 소리가 정점에서 소멸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라는 점,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의 잔향 시간이 약 2.1초라는 사실까지.

 

내버릴 내용 하나 없었지만, 내가 그날의 강연자에게 가장 크게 공명했던 말은 바로 이 지점이었다.

 

좋은 음악을 들으면 사람은 울게 된다.

울기 위해서는 공간감이 필요하다.

음악의 소리에 둘러싸여 있다는 느낌,

몸이 붕 뜨는 느낌이 있어야 한다.

 

그래, 좋은 음악을 만나면 마음이 벅차올라 눈물을 흘릴 수 있다. 어떤 외부적인 스트레스 요인이 아니라, 음악이 압도적인 압력으로 나를 짓누르고, 통과하고, 감싸안아버리는 바람에 울게 된다.


다만 그 감정선까지 다다르기까지는 여러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도 이제는 확실히 알았다. 연주가의 성의, 관객들의 집중력과 열린 마음도 무척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무대 위 연주가들의 합을 충분히 감싸 안아줄 수 있는 공간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많은 공연장을 다녀보진 못했지만, 몇 개 지역의 공연장을 오가며 클래식이 마냥 이해가 안 되고, 막상 들어봐도 잘 모르겠다면,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는 게 꼭 우리 탓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연을 접하기 전까지만 해도 속상한 추억이었는데, 이렇게 설명을 받을 수 있다니 싶었다. 역시 어떤 기억이든 의미 있게 새겨 두면, 이렇게 가까운 미래에서라도 이해받을 수 있는 순간이 온다.

 

혼자만의 경험을 이렇게 많은 사람들 속에서 조용히 공감받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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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사람에 관해선 어떤가. 12월의 음악을 괄호 안에 넣고 어떤 인연들을 맺어왔던가.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와도 금세 통화를 마치고 만난 것처럼 대화를 나눴고, 전혀 다른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같은 타이밍에 웃었다. 

 

좋아하는 것이 같다는 이유만으로도 이만한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데, 음악으로 생을 함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건 또 어떤 느낌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12월 14일의 아티스트 살롱에서는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과 첼리스트 박유신이 ‘가장 가까운 거리 속 다른 시선’이라는 주제로, 음악을 가까이 두고 살아가는 삶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듀오 연주를 선보였다.

 

악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부터, 어디서든 자유롭게 서서 연주할 수 있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부럽다는 첼리스트의 귀여운 푸념까지 이어졌고, 연주가 부부 특유의 장난스러운 티키타카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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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상적인 부분을 떠올려보자면 단연, 실내악에 관한 이야기겠다. ‘실내악이 어떤 것 같냐’는 김영욱 바이올리니스트의 질문에 잠시 객석이 멈칫하는 장면을 보고, 아, 맞다. 이 장르, 원래 어려운 거였지.


지금이야 각종 소나타와 친해진 상황이라 그렇지, 예전의 나 역시 그랬다. 그저 본의 아니게 특정 연주가의 레퍼토리를 따라갔을 뿐인데, 작품 대부분이 실내악이었고, 그걸 명작으로 계속 접하다 보니 어느새 취향으로 굳어졌다. 

 

아무 생각 없이 현악 4중주, 8중주, 피아노 듀오, 퀸텟까지 접하다 보니 이게 낯선 장르인지 완전히 잊어버린 채 1년을 다 보냈다.


그들이 말하는 실내악이란 무엇일까. 실내악은 관객과 연주자, 연주자와 연주자 사이의 호흡이 가장 중요한 장르며, 우리의 일상과 닮아 있고, 소규모 편성만으로도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오케스트라보다 더 크게 느껴질 수 있다고 했다. 작곡가들이 생의 마지막에 실내악 작품을 남기는 데에는도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저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은 다락방의 대화, 조근거림, 여덟 명이 그려내는 하나의 서사. 그 모든 것이 실내악 안에 담겨 있지 않은가.


내가 이곳을 사랑하게 된 것도 거창하지 않다. 이 세계 안에 존재하는 모든 요소들—작곡가와 연주가, 살아 있는 악보와 예기치 못한 변수들, 어둠 속에서 가장 솔직해지는 나—그 모든 것이 모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클래식을 곁에 둔다는 건, 애당초 무지의 상태를 매일같이 받아들이는 일과도 같다. 하나를 알면 두 개를 모르게 되고, 세 개를 알았다고 생각하면 천 개의 질문이 남는다.


그러니 겁먹을 필요 하나 없다. 우리가 연주가보다 이해도가 높을 수는 없고, 작곡가들과 금세 공명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편해진다. 보고 싶은 것만 골라 가며 즐기면 되지 않겠는가. 오늘은 첼로의 활 끝을 봤다가, 오늘은 비올라의 길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실내악은 우리 일상과 닮아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살아가야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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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만 해도 그렇다. 나는 그들이 추천해 준 네 곡의 음악을 소중히 받아들고 돌아왔다. 강의에 참석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들이 아닌가.


그러니 집에 돌아오는 길엔 또 신이 나버렸다. 그들이 말한 것 중 이미 마음에 들어온 곡도 있었고, 곧 만나게 될 음악도 있었다. 악기와 소리를 통했을 뿐인데 사람 안으로 이렇게나 파고들다니. 


이런 와중이니 내가 객석 안에서 기꺼이 외로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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