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새도 언젠가는 둥지를 떠나듯, 사람은 언젠가 자라온 곳에서 떠나기 마련이다. 둥지를 떠나 다시 시작하게 되는 곳이 어디가 되든, 그 이유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우리가 가장 쉽게 체감하게 되는 것은 우리가 ‘떠났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분명한 건 이제 24시간의 대부분을 함께 지냈던 사람들과 더 이상 같은 맥락을 매번 공유하며 살아가지 않는다는 것, 우리와 우리의 둥지 사이에는 어쨌거나 분명한 시차가 생긴다는 것.
짐 자무쉬의 신작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는 이 시차를 아주 세심하게 포착한다. ‘파더’, ‘마더’, 그리고 ‘시스터 브라더’로 이어지는 3부작으로 구성된 영화는, 서로 다른 곳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던 가족이 한곳에서 모이는 엉성한 순간을 담아냈다.
영화는 뉴저지, 더블린, 파리의 너무 다른 세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들은 공통으로 오랜만에 서로를 마주하게 됐다. 한때는 모두가 한 집에서 하나의 사건을 공유하며 살아갔을지 모르는 일이지만, 떨어져 살다가 다시 만난 얼굴엔 어색함, 불편함이나 삶의 시차가 가져온 슬픔이 비친다.
“Bob’s your uncle!”
1부 ‘파더’에서 남매인 제프와 에밀리는 뉴저지의 어느 호수에 살고 있는 아버지를 찾아간다. 남매 역시 오랜만에 만났고, 그들은 아버지가 무엇을 하고 살며 수익원은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떨어져 살았다. 오랜만에 만난 세 사람은 둥지에서의 과거를 회상할 때를 제외하곤 어딘가 맞지 않는 톱니바퀴 같은 대화를 나눈다. “Bob’s your uncle!”이라는 농담도 아버지만의 것일뿐, 남매에겐 이해하지조차 안되는 실패한 유머가 되어버린다.
제프와 에밀리는 어머니를 잃고 아직 잊지 못한 채로, 정리가 안 된 집에서 가끔은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는 아버지가 불편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두 남매가 집으로 돌아가자,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어지럽혀져 있는 집을 깔끔히 치우고, 숨겨뒀던 차를 꺼내 멋진 옷과 장신구를 걸치고 여자 친구를 만나러 간다. 그들이 보여주는 건 사실 두 사람 몫의 불편함이 아닌, 세 사람 몫의 불편함인 것이다.
‘마더’ 속 세 모녀도 그렇다. 유명 작가인 어머니의 집에서 1년에 한 번 모이는 자매 릴리스와 티모시는 극과 극처럼 다른 성격과 외모를 가졌다. 어머니는 두 사람을 만나기 전, 테라피를 받으며 상담사에게 두 딸을 모두 사랑하긴 하지만 조금 더 애정이 가는 쪽은 동생인 티모시라고 말한다. 하지만 티모시는 번듯하고 반듯하게 살아가는 어머니의 집에 방문해 여자 친구를 우버 기사라고 칭하고, 새로 산 차는 정비소에 있고 인생은 행복하다는 거짓말을 꾸며내어 자신의 삶을 포장한다. 그 거짓말이 성공적으로 전달됐느냐는 또 다른 문제겠지만 말이다.
언니인 릴리스 역시 두 사람을 진심으로 반가워하지만, 이야기 도중의 삐걱임을 참지 못하고 화장실로 빠져나와 깊은 한숨을 내쉰다. 이미 떠나 온 둥지는 이전만큼 편하고 잘 아는 상대가 되어주지 못한다는 걸 보여주는 듯하다. “Bob’s your uncle!”하는 말은 동생인 티모시와 어머니 사이에서만 통하는 말일 뿐이다. 찻잔에 차가 몇 번이고 따라지고 또 비워질 때까지, 화목한 그림을 만들어내려고 애쓰지만 그 사이사이엔 자꾸 애매한 정적과 애매한 애정이 끼어든다.
‘시스터 브라더’에서는 부모님을 사고로 잃고, 부모님이 있는 파리로 돌아온 스카이와 그의 쌍둥이 빌리가 오랜만에 마주한다. 그들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오랜만에 만나도 말과 마음이 통할 만큼 가까운 남매 사이다. 똑같은 순간에 “Bob’s your uncle!”이라는 말을 생각해 낼만큼. 둘은 마지막으로 부모님이 살던 집과 유품을 넣어둔 창고를 둘러보며 그들의 물건을 정리한다.
이리저리 파리 시내를 이동하는 차 안에서, 두 사람은 솔직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 마음은 비통한 슬픔이기도 하고, 방금 알게 된 부모님의 옛날 이야기가 만들어낸 감정이기도 할 것이다. 시간은 흐른다는 것, 결국에 우리는 어딘가를 떠나오고 누군가는 우리를 반드시 떠난다는 세상의 간단한 문법이 주는 비통한 슬픔을 두 사람은 함께 통과한다.
달라지는 건 나쁜 걸까
영화는 자녀들이 모두 성인이 된 가족의 모습을 그린다. 세상의 모든 가족이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가 강요하는 ‘정상 가족’이 아니듯, 세 가족의 모습이나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정서는 제각기 다르다. 짐 자무쉬는 불안하고 불편한, 동시에 같은 둥지가 주었던 애정과 따뜻함을 기억하는 ‘가족’과 그 속 개인의 모습을 똑바로 그려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우리의 현재나 미래, 그리고 과거와도 같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존재하고, 그렇게 될 것이니까. 한 집에 구성원이 모두 함께 살아가며 같은 음식을 저녁으로 먹고, 같은 주제의 TV를 보던 날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지났고, 모두가 각자의 집과 각자의 삶을 찾아 둥지를 떠났다. 엄마의 삶도, 아빠의 삶도 달라졌다. 이전과는 달리 조금 서먹해졌고, 서로 모르는 이야기가 많아졌다. 다시 만난 대화는 반갑지만 쉽게 잘 이어지지 못한다. 하지만 그 시차가 단지 슬프거나 나쁘기만 한 것일까? 영화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답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이 가족들을 통해 불편해하는 얼굴을, 또 다른 삶을 살아가는 아쉬움 담긴 애정을, 그리고 비통한 슬픔을 그려내며 우리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건 어떠한 사건이나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 그 자체일 것이다.
그러니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는 과장하거나 숨겨버리는 제스쳐를 제외한 채 담담하게 여덟 개의 삶이 이리저리 부딪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를 보고 나서며, ‘이상적인’ 것에 대한 부담과 믿음을 조금이나마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백 번의 어색함과 백 번의 슬픔을 견딜 마음의 준비가 1g이라도 더 생긴다면. 그것이야말로 짐 자무쉬가 전달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짐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