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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치워도 치워도 다시 쌓이는 눈 같은 사랑, 윤희에게 [영화]

눈처럼, 달처럼, 닥쳐 오는 자연재해처럼

by 김그린 에디터
2025.12.1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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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세상에 사람이 난 이래 그보다 더 많이 쓰인 단어란 또 없을 것이다. 무수히 반복되어 닳아 없어질 정도로 쓰였을 ‘사랑’이라는 단어는 아이러니하게도 쓰는 법은 하나건만 읽는 법이 천차만별이라, 사랑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 그리고 이 세상에 한때 존재했을, 또는 존재할 - 사람의 수만큼이나 많은 가짓수의 답변이 돌아올 것이다.


내가 아는 사랑이란 사랑이라는 단어를 적지 않는 것이었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너무 남용된 나머지 그것을 소리내어 말하는 순간 그 너머의 감정이 한없이 얄팍해져 버리는 것만 같았다. 기이할 정도로 단정적이며 노골적인 언약, 서로에게 부여하는 ‘애인’으로서의 역할, 서로가 서로의 소유라는 주장, 그리고 무엇보다도 육체적 탐닉이 부재한 사랑이야말로 이상적인 사랑처럼 여겨졌다.


내가 사랑이라는 단어를 읽는 방식이 세상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랑이라는 단어를 읽는 방식과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낀 것은 스물 이후, 인위적으로 그어진 어른의 선을 넘게 되면서부터였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어째서인지 연애, 결혼, 또는 그 밖의 다른 단어들과 동일한 취급을 받고 있었다. 사랑에는 규정된 단계가 있었다. 노골적 언약과 상호 구속과 소유가 없이는 통상적인 사랑의 반열에 끼지 못했다. 육체적 합치는 사랑의 필요조건이라 했다.


그런 단어들이 마치 끈적이는 스티커처럼 사랑에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는 것이 싫었다. 육체적 결합이 사랑의 증빙처럼 여겨지는 것이 끔찍이 싫었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사랑을 읽는 나 같은 사람들은 겨우 한 줌짜리였다. 스펙트럼 위의 이상치들. 사랑의 국외자(局外者)들.


대다수의 방식대로 사랑이라는 단어를 읽지 않는 이들에게 온전히 사랑할 기회란 설원에서 풀 한 포기를 찾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이는 예술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애석하게도 사랑이라는 주제를 표방한 수많은 영화며 문학이며 다른 작품들은 사랑의 결실을 육체적 합치라는 단일한 방식으로 풀어내곤 했다. 열에 아홉은 어김없이 그랬다.


그러나 아홉이 있으면 반드시 남은 하나가 있기 마련이라, 모두가 사랑이라고 입모아 말하는 수많은 스티커들을 덜어내고 떼어내어 도리어 더 아름다운 사랑을 그려낸 영화가 있었다. 그 영화의 이름은 <윤희에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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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도입부에 나오는 편지에서 쥰은 말한다. 겨울의 오타루에 있는 것이라곤 눈, 달, 밤과 고요뿐이라고. 윤희 너도 이곳을 분명 좋아할 거라고.

 

겨울의 오타루를 꼭 닮은 이 영화에서는 애정의 언약도, 사랑을 고백하는 말들도, 서로를 향한 소유욕의 발로도, 성적 이끌림도 나오지 않는다. 다만 있는 것이라곤 치워도 치워도 끝없이 내려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는 눈, 그리고 차가운 겨울 하늘에 조용히 떠올라 매일 조금씩 차오르는 달뿐이다.


세상이 사랑을 읽는 방식대로 읽자면 영화에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둘 사이에 가로놓인 세월은 쌓여만 가고, 부치지 못한 편지도 쌓여만 가고. 그 사람의 집을 코앞에 두고도 끝내는 문을 두드리지 못하고. 꿈에서 그 사람을 만난대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두고야 마는 두 사람은 사랑의 국외자들이다. 세상이 사랑을 규정하는 방식에 어긋나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강제로 입을 다물려야 했던.

 

오랜 시간을 굽이굽이 돌아와 그들이 다시 마주했을 때, 두 사람 사이에는 그 흔한 포옹 하나 악수 하나 찾아볼 수 없다. 그리웠다느니 널 잊어 본 적이 없다느니 하는 말 한 마디도 오가지 않는다. 그때나 지금이나, 두 사람의 모습은 세상이 규정하는 사랑이라는 단어와는 서울과 오타루만큼이나 동떨어져 있다. 어쩌면 그보다 더 멀리 떨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은 세상 그 무엇보다도 ‘진짜 사랑’처럼 여겨진다.

 

애정의 언약, 사랑의 고백, 소유욕의 발로, 육체적 결합 중 그 무엇도 없기 때문에 도리어 더 무거워지는 사랑. 말하자면 치워도 치워도 쌓이는 눈 같은 사랑.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아도 기어이 그 너머에서 차오르고 있는 달 같은 사랑. 막을래야 막을 도리가 없어, 마치 자연재해를 감내하는 마음으로 속절없이 이끌려 가야만 하는 사랑.

 

수십 년의 세월을 건너 꿈 속에서나 겨우 만나게 되어도, 그저 ‘같이 있는’ 것으로 족한 사랑. 수십 년의 세월과 몇 번의 꿈을 지나쳐 비로소 현실에서 만난다 해도, 밤의 고요에 몸을 묻고 그저 아주 찰나간 ‘같이 있을 뿐인’ 사랑. 손끝 하나 닿지 않고, 사랑이라는 단어는커녕 좋아했더라는 말 한 마디 꺼내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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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이 사랑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랑의 국외자는 비단 나뿐만이 아닌 것이다. 살갗 하나 닿지 않았음에도 마음이 저려 견딜 수 없게 만드는 마음을 사랑이 아니면 무어라고 명명할까.

 

비단 쥰과 윤희뿐만이 아니라, <윤희에게> 속 인물들을 둘러싼 서로 다른 마음들이 모두 그렇다. 라이터 하나 제대로 켜지 못하는 주제에 ‘네가 담배를 피우니까’ 나도 피워 보겠다는 마음이.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타박하며 그 손에서 라이터를 뺏어들곤 웃음짓는 마음이. 보기에 아름다운 것만 찍기 때문에 사람 사진은 찍지 않는다고 선언해 놓고선, 상대를 향해 줄곧 셔터를 누르는 마음이 사랑이 아니면 무엇일까.


영화의 말미에 윤희는 마침내 쥰에게 답장을 쓴다. 그리고 그 편지의 짤막한 추신은, 감히 말하건대 사랑이라는 단어 없이 사랑을 말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문장 중 하나다.

 

그릇되었다고 느껴 혀끝에 올려 본 적조차 없는 자신의 오래 묵은 사랑이 실은 그릇되지 않았음을 느꼈을 때, 그래서 사랑이라는 단어 하나 없이 사랑을 완벽히 발음할 때, 어긋났던 모든 것은 뒤늦게나마 제자리를 찾아 돌아간다.

 

사랑과 꿈을 모두 앗아 갔던 아버지의 표상에는 작별을. 필연적으로 ‘사람을 외롭게 해야만 했던’ 윤희와 ‘외로울 수밖에 없었던’ 옛 남편은 그간의 소회를 눌러담은 진실한 안녕을. 비록 그렇게 한다 해서 지난 날이 없던 것이 되지는 않겠지만, 봄이 겨울의 존재를 지우지 못한다 해서 봄이 오는 것을 무용하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그렇게 윤희의 추신이 끝나는 지점에서 ‘새봄’은 시작된다. 설원에서 마침내 찾아낸 한 포기의 풀처럼. 국외자의 방식대로 읽어 더 아름다운 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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