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이 뭔지 모르는 이들의 사랑 - 에고이스트 [영화]

그럼에도 사랑할 수 있는 이유
글 입력 2023.08.12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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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에 관한 글을 쓸 때면 쓰는 나와 읽는 독자 모두에게 상기시키고픈 전언이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퀴어라는 범주로만 한정 짓지 말고, 퀴어라는 범주 전체로도 확장하지 말자고. 대상이 누구든 유념해야 할 태도지만, 특히 자기 의지와 무관히 겹겹의 꼬리표를 달고 다니는 이들에게 제한과 확장은 필연적으로 협소한 감옥이 될 것이기에 그렇다.


적어도 내가 접한 ‘퀴어영화’ 대부분에선 유사한 형태의 감옥이 보였다. 감옥은 이야기가 그들을 온전히 책임지지 않는 것에서 만들어진다. 이야기는 흔히 지난한 갈등을 지나 마침내 사랑을 확신하거나 끝내 넘어설 수 없는 절망을 마주한 순간 마무리된다. 가슴 절절한 시작 혹은 미어지는 끝에서 그들의 이야기는 화려한 종말을 맞는다. 사실 그것은 삶의 수많은 챕터 속 하나의 발단에 지나지 않는데도.


예술작품 속 캐릭터라면 피해 갈 수 없는 운명의 굴레이긴 하지만, 퀴어 같은 존재들에게 극적 서사와 열린 결말은 유독 무책임한 처사 같다. 이후의 이야기가 뻗어나갈 상상력의 뿌리가 단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의 서사는 제한 혹은 확장되어 인간 삶의 축을 이루는 실체가 아닌 신기루로 휘발되는 것이 아닐까 염려된다. 이들의 장르가 ‘영화’가 아닌 ‘퀴어영화’로 분리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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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앞서 언급한 책임감을 가졌다고 느낀 영화를 봤다. 마츠나가 다이시 감독의 <에고이스트>다. 영화의 서사는 퀴어의 특별한 사랑으로 시작해 인간의 보편적 사랑으로 나아가며 ‘퀴어’와 ‘퀴어영화’를 ‘인간’과 ‘영화’로 확장하는 힘을 가진듯 했다. 정확히는 ‘확장’이 아니라 묵은 꼬리표를 떼어내 원래의 형태를 되찾은 ‘복귀’에 가깝겠지만. 


영화는 코스케와 류타의 사랑에 집중한 전반부와 코스케와 류타 엄마의 사랑에 집중한 후반부로 구성된다. 코스케, 류타, 류타 엄마의 사랑이 서로에게 물에 번지듯 연결되는 모습은 사랑을 나누는 대상과 형태가 달라져도 사랑의 본질마저 달라지는 것이 아님을 잔잔하고 선명히 설득한다. 


코스케가 류타에게 나눈 사랑이 있기에 류타 엄마에게 나눌 사랑이 생길 수 있었고, 류타가 받은 사랑이 있기에 류타 엄마가 코스케에게 나눌 사랑이 생길 수 있었다. 사랑이 또 다른 사랑의 씨앗이 되고 그 다양한 종자들이 발아하여 관계를 풍부하고 깊게 만드는 순환은 그들이 나누는 사랑 앞에서 너무나 자명한 진리처럼 보인다. 그들의 사랑은 처음부터 끝까지 낭만이라는 궤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렇게만 보면 에고이스트 역시 '로맨틱한 사랑'이라는 흔한 퀴어 신기루를 만들어 낸 것에 그친 게 아닌가 싶다. 낭만적이기만 한 사랑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의 것이든 사랑은 어쩐지 구린내가 나야 한다. 사랑하는 이 앞에서 고고하기만 할 수 있는 작자는 그다지 매력적이지도, 현실적이지도 않다. 온전한 낭만을 거부하는 것이야말로 사랑을 사랑으로 만드는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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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이스트의 묘미는 그것이 낭만적으로 묘사하는 사랑을 낭만의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게 하는 제목에 있다. 로맨티스트가 아닌 에고이스트, 이기주의자라는 단어의 선택은 그들의 사랑에 끊임없이 의심을 심는다. 류타가 보이는 미묘한 눈빛과 행동은 제목과 결합하여 분명 그 뒤에 숨겨진 불순함이 있음을 암시한다. 그것을 인식한 순간 감히 순수한 사랑 뒤에 품은 욕심과 욕망이 무엇인지 파헤치겠다는 정의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사랑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진리에 현혹되어. 


영화는 친절히 그 ‘불순함’을 드러낸다.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부유한 코스케는 가난한 류타에게 삶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훌륭한 상대이다. 류타 뿐만이 아니다. 모친과 사별한 코스케에게 류타와 류타 엄마 역시 부재한 사랑을 충족할 수 있는 훌륭한 상대가 된다. 영화 초반 왠지 그들의 마음이 온전한 사랑으로 느껴지지 않고 불안한 이유는 이 관계를 통해 각자가 충족하려는 결핍과 이득과 의도가 명확히 파악되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 사랑의 근원은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감정과 물질을 주고받는 것이다. 가끔 서로의 선을 침범하기도 하면서, 자기 욕망을 더 깊이 상대에게 투영한다. 그러니까 그들 사랑의 발로는 뭐니 해도 이기심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사랑이 한 번도 낭만의 궤도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느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들이 자아내는 이기심과 사랑의 조화 앞에서 나는 설득 당하고 만 것이다. 사랑의 낭만적 숭고함 따위는 허영에 불과하다고. 사랑이란 결국 자기 욕망에서 시작한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에고이스트들의 행위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의 필요와 쓸모를 재료 삼아 상대를 향해 행동하고 무언가를 충족한다. 그것이 아름다운 결실로 이어지든, 추악한 말로로 이어지든 뿌리는 이기심으로 같다.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사랑이지만 코스케와 류타는 제법 아름답게 그것을 가꾸어 나간다. 그들의 욕망이 더이상 각자의 마음속에서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나의 행동이 상대에게 특정한 파동을 자아내고 그것이 다시 나의 파동과 공명하며 서로의 욕망을 더욱 복잡하고 깊게 얽히게 만든 것이다. 어느새 나의 욕망이 과연 나만의 것인지 확실히 구분 지을 수 없는 채로.


사랑과 이기심의 만남이 반가운 이유는 사랑이라는 이름이 갖는 막연한 신성함 때문이다. 그 거대함이란 사랑을 너무 무겁게 만드는 법이며 기어코 사랑을 두렵게 만들기 마련이다. 사실 사랑의 기본이 내 욕망을 채우는 것임을 인정한다면 사랑에 진입하기는 비교적 쉬워진다. 인간이야 본디 그런 존재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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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사랑을 주는 것이 이기심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은 왠지 모를 가책을 남기기 마련이다. 류타와 류타 엄마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나눈 코스케 조차 자기 마음이 의심된다는 듯 말한다. “저는 사랑이 뭔지 모르겠어요.” 사실 내 마음이 사랑이 아니라 욕심이었을 것이라고 고백하는 코스케에게 류타 엄마는 웃으며 말한다. “그건 네가 알 필요 없단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러니까 사랑을 받는 것 역시 대체로 이기적이라고. 


사랑을 준 것이 너의 욕망이었듯이 그것을 사랑으로써 받아들이는 것 역시 나의 욕망이라고. 너의 의도보단 내가 사랑이라고 받아들인 것이 중요하다고. 류타 엄마는 답한다. 시작이 그러하듯 끝도 철저히 이기적인 것이 사랑임을 그들의 대화는 보여주고 있다. 


그 이기심 앞에 사랑을 둘러싼 숱한 고민과 우려는 무색해진다. 사랑은...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과 결정할 수 없는 것이 비논리적으로 뒤섞인 믿음과 합의의 결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런 이기적이고 비합리적인 마음이 사실 평범한 형태의 사랑임을 보여준다. 허무한 사랑의 정의 앞에서야 우리는 비로소 사랑이 뭔지도 모르면서 사랑을 말하고 믿을 수 있음을 말한다. 무엇보다 그럼에도 사랑을 아름답게 가꿀 수 있다는 것도. 결국 사랑이란 한없이 가벼우면서도 무거운 것. 당사자들의 무모한 선택에 달려있을 뿐인 것. 


*


감히 사랑 앞에 이기적인 자신을 바라볼 자신이 없는. 사랑만큼은 실패하고 싶지 않은. 사랑이 너무나 거대해서 엄두가 안 나는. 저마다의 이유로 사랑이 두려운 우리가 이 영화를 통해 에고이스트가 될 용기를 얻을 수 있길 바란다. 그렇게 더 많은 사랑이 싹 틀 수 있기를.


알기 때문에 사랑하는 게 아니라,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사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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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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