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총인구의 5%.
현재 우리는 260만 명이 넘는 이주민과 함께 살고 있다. 불법 체류자를 포함하면 그 수는 정확히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인구 감소와 3D 업종 기피 현상으로 노동력이 부족한 음식점, 숙박업, 건설 현장, 농어업 등의 산업은 이미 외국인 노동자에게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외국인 노동에 대한 제도는 여전히 충분히 마련되어 있지 않다. 제한적인 고용허가제를 피해 브로커를 통한 밀입국을 시도하는 경우도 있고, 합법적인 루트로 입국했더라도 직장 이동이 어려워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업장을 벗어나 불법 체류자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러한 제도적 공백이 지속된다면 사회적 갈등은 더욱 심화될 것이고, 노동시장 내 불법 외국인 고용 역시 점차 확대되어 내국인에게도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결국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변화를 받아들이고 이에 대비하는 준비가 필요하다.
이주노동자의 비극 – 안산, 황금용의 현재
'안산, 황금용'은 독일 극작가 롤란트 쉼멜페니히의 희곡 '황금용'을 현대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안산 공업도시로 이주한 베트남 청년 ‘꼬마’를 주인공으로,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마주한 현실적인 문제를 다룬다. 2009년 유럽에서 만들어진 작품이지만, 지금의 한국 사회에 더없이 시의적절한 작품임이 분명하다.
'안산'이라는 구체적인 공간 설정은 익명의 소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원작과 차이가 있다. 약 10만 명에 달하는 이주민이 거주하는 이 도시는 다문화 거리와 반월국가산업단지 등 이주노동자들이 가시적으로 밀집하여 있는 공간 중 하나다. '안산'이라는 상징성 있는 지명을 통해 작품의 서사는 더욱 현실적인 무게를 지닌 채 관객에게 전달된다.
'안산, 황금용'은 포스트 서사극 형식을 통해 7개의 에피소드와 48개의 장면을 비선형적으로 배열한다. 장면들은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지만, 끝내 하나의 주제를 향하여 완결 구조를 형성한다. 관객은 수동적으로 서사를 따라가기보다, 긴장감을 유지한 채 각 장면에 집중하며 조각난 이야기를 스스로 연결해 나가게 된다.
배우들은 극 속 인물과 배우 자신이라는 두 층위를 동시에 수행하며, 극과 현실 사이의 거리감을 확보한다. 관객 역시 이 거리감을 통해 사건을 감정적으로 소비하기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는 하나의 서사극으로 감동을 전달하기보다는, 비극적 사건을 현실의 구조적 문제로 인식하게 만드는 형식적 선택이다.
창작집단 상상두목이 내세우는 ‘좋은 텍스트에서 좋은 공연이 나온다’는 신념은 위와 같은 맥락에서 설득력을 얻는다. 텍스트의 문제의식을 한국의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고민, 그리고 이를 구현해내는 연출과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폭력을 바라보는 연극적 태도
'안산, 황금용'의 연출적 특징은 배우들의 일인다역과 적극적인 거리두기 전략에 있다. 여섯 명의 배우는 요리사, 노인, 승무원, 연인뿐 아니라 개미와 베짱이까지 넘나들며 성별과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다수의 역할을 교차적으로 연기한다. 젊은 배우가 노인을 연기하고, 체구가 작은 여성이 폭력적인 남성 인물을 맡기도 한다.
공연 초반 배우들이 자신이 맡은 역할을 간단히 소개하는 장면은 관객의 흥미를 환기시키는 동시에, 이들이 얼마나 다양한 위치에서 연기를 수행하게 될지 예고한다. 일인다역과 더불어 내레이션과 해설이 적극적으로 활용되며, 연극은 수시로 극중 서사에서 이탈해 인물과 배우를 명확히 분리한다.
개인적으로 감정적 몰입보다는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는 작품을 선호하는 편인데, ‘쉬어가다’와 같은 대본 지시를 직접 발화하며 극과 분리되는 순간을 관객과 공유하는 장치는 특히 인상 깊었다. 이러한 연극적 활용은 긴장감을 완화하며 유머를 만들어내는 동시에, 파편화된 장면들 사이를 매끄럽게 잇는 역할을 한다. 대사 속 접속사를 활용한 장면 전환 역시 눈에 띄었다.
급작스러운 역할 변화 또한 의상과 소품, 혹은 장면 전환 시 직접적인 자기소개를 통해 관객에게 연극적 허용임을 분명히 알린다. 체구가 작은 여성 배우가 폭력적인 남성 인물을 연기할 때, 관객은 물리적 위압감보다 구조적 폭력에 더욱 주목하게 된다. 이는 작품이 선택한 표현 방식으로서 적절했으며, 동시에 관객이 느낄 수 있는 불편함을 최소화하는 선택이기도 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위치를 단순화하거나 기존의 사회 문제를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이를 풍자하고 비틀어 제시함으로써 관객은 서사로부터 자신을 분리한 채 보다 객관적으로 문제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다만 마지막 ‘꼬마’의 독백은 예외적으로 감정적 몰입을 유발하는 장면이다. 냉소적으로 사건을 관찰하던 작품이 이 지점에서 비극적 서사를 부여하며 클라이맥스로 향하는데, 폭력과 진실이 드러나는 과정 속에서 반전처럼 작동하는 장면이라 느껴졌다. 개인적으로는 이 장면에 대해 ‘호’에 가까운 인상을 받았다.
2평 남짓한 비좁은 주방
이야기의 중심에는 안산 다문화 거리에 위치한 타이-차이나-베트남 식당 ‘황금용’이 있다. 그중에서도 비좁고 주방을 배경으로 한다. 배우들의 시끄럽고 정신없는 대사, 스모그 효과로 표현되는 연기와 열기는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노동 환경을 감각적으로 보여준다.
베트남 청년 ‘꼬마’는 극심한 치통을 앓지만, 불법 체류자라는 이유로 치과에 갈 수 없다. 신음이 계속되자 동료들은 결국 파이프렌치로 이를 뽑는다. 그 과정이 다소 우스꽝스럽고 혼란스럽게 진행되어, 이후 꼬마의 죽음이 더욱 갑작스럽게 느껴진다. 썩은 이를 뽑는 일이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에 대한 이해할 수 없음, 바로 그 감각이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현실이다. 이주노동자들은 언제든 설명되지 않는 죽음에 노출될 수 있는 삶, 즉 인간으로서 보장받아야 할 최소한의 권리로부터 분리되어 살아간다.
서사가 진행될수록 파편화되어 있던 이야기들은 각자의 연결 지점을 드러내며 하나의 구조를 이룬다. 줄무늬 옷을 입은 남자는 아내가 동남아 이주민과 바람이 나자 왜곡된 피해의식을 갖게 되고, 황금용 맞은편에서 아시아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한 씨는 우연히 데려온 베트남 여자아이를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으며 폭력을 행사한다. 황금용 위층에 사는 할아버지는 쇠약해지는 자신의 몸에 대한 분노를 외부로 표출하며 살아가고, 갈색 머리 승무원은 애인을 ‘바비퍼커’라 부르며 자신과 남성에 대한 혐오를 일상의 유머로 무마하려 한다.
이들은 각자가 지닌 상처와 분노를 외부로 돌리며 자기 보호를 시도하지만, 국내 헌법의 보호 바깥에 있는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은 최하층에서 그 모든 폭력의 화살을 감당할 수밖에 없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한국인과 외국인 노동자로 단순화할 수도 있었겠지만, 작품은 다층적인 서사를 쌓으며 불편함을 줄이기 위한 방식을 택한다. 게다가 본래 이 문제는 결코 이분법으로 정리될 수 없으며, 개인을 넘어 사회 제도의 허점이 원인임으로 적절한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거시적인 시선으로 문제를 바라보도록 유도하는 서사 구조는 효과적이었다.
황금용이라는 환상
개미와 배짱이라는 익숙한 우화를 현대적으로 활용한 점 역시 흥미롭다. 작품은 ‘일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는 교훈이 과연 모두에게 공정하게 적용되는지에 대해 질문한다. 관객은 초반에는 비교적 가볍게 극을 즐기다가, 점차 우화 너머에 존재하는 사회적 문제를 인식하게 된다. 베짱이가 여동생으로 치환되는 장면은 다소 직접적일 수 있으나, 그로 인해 극의 완결성은 오히려 강화된다.
제목 속 ‘황금용’은 이주노동자들이 품고 오는 기대와 욕망의 상징이다. 출세와 성공, 부를 의미하는 이 상징은 꼬마가 한국에서 얻고자 했던 모든 것을 함축한다. 더 나은 삶,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미래, 여동생을 되찾아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 그러나 꼬마는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시신이 된 채 황금용 카펫에 싸인다. ‘코리안 드림’이 누구에게는 끝내 실현될 수 없는 환상임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꼬마가 이를 뽑은 자리 안에 사람들이 있다는 환상적 표현은 그가 처한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멈추지 않는 피와 고향을 떠난 순간부터 시작된 치통, 그리고 남겨진 구멍 속 가족들은 그의 꿈이 끝내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암시한다.
꼬마의 썩인 이를 발견한 검은 머리 승무원은 치아를 쉽게 버리지 못하고 오랫동안 바라본다. 모르는 사람의 치아를 입에 넣어보며 그 구멍을 느껴보기도 하지만, 피와 수프의 맛은 점점 옅어지고 결국 아무것도 느낄 수 없게 된다. 우리가 체감할 수 있는 외국인 노동자의 비극 역시 이 정도의 희미함에 머무르는지도 모른다. 장시간 비행 뒤 몰려오는 피로처럼, 삶의 피로가 감각을 무디게 만들기 때문이다. 승무원은 결국 치아를 강 아래로 던진다. 꼬마의 상처와 비극은 그렇게 쉽게 은폐된다. 이것이 지금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이다.
연극 '안산 황금용'은 이미 한국 사회의 필수적인 구성원이 된 이주민들의 삶에 주목한다. 단일민족은 더 이상 지켜야 할(혹은 지켜낼 수 있는) 정체성이 아니다. 노동력 수출국에서 수입국으로 전환된 지금, 사회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현상들을 인정하고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요구된다.
사진 출처. 창작집단 상상두목 제공 / ⓒ윤헌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