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세계는 ‘저항’이라는 거대한 흐름 위에 있었다.
전 세계의 청년은 새로운 변화를 불러 일으키기 위해 직접 거리로 나가 자신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외쳤다. 파리 소르본 대학의 학생 시위에서 시작된 68혁명은 새로운 가치관과 체제의 도래를 원했던 각국의 청년들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 일으키며, 대서양을 건너 미국 사회까지 거대한 영향을 미쳤다.
TV라는 새로운 매체의 등장을 통해 케네디와 마틴 루서 킹의 암살, 베트남 전쟁의 참상을 생생히 목격한 미국의 청년 세대는, 혁명의 열기에 힘입어 침묵을 깨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2차 세계대전의 승리라는 과거의 영광에 도취되어 있던 기성세대의 가치관에 반기를 들며, 미국 사회에 균열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아서 펜의 <보니 앤 클라이드>는 바로 이러한 산업적 위기와 시대적 반항심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폭발하듯 등장한 작품이었다. 영화는 단순한 오락을 넘어 억눌린 당대 청년들의 표상을 스크린으로 옮긴 시대의 상징으로서, 뉴 할리우드 시네마를 대표하는 상징적 작품으로 평가된다.
영화의 주인공 보니와 클라이드는 은행 강도이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가 이 범죄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영화는 이들을 단순한 악인이 아니라, 시스템에 보호받지 못하는 서민들에게 카타르시스를 가져다 주는 낭만적인 인물로 묘사한다.
그들이 총을 겨누는 대상인 '은행'은 미국 자본주의 시스템의 심장이며,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를 느낀 당시 청년들에게는 빈부격차와 전쟁을 낳은 병든 구조의 핵심이었을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을 대변하는 이러한 반영웅적 캐릭터는 뉴 할리우드 시네마가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메시지였다. 즉, 은행을 터는 보니와 클라이드는 그간 사회가 완벽한 이데올로기라 자부해왔던 자본주의의 모순을 꼬집는 청년들의 확성기가 아니었을까.
이는 이념을 위해 자신과 다를 바 없는 젊은이들을 죽이러 전장으로 내몰려야 했던 청년들이 느꼈던 부조리와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보니와 클라이드는 사회적으로 ‘옳다’고 인정받는 집단과 끊임없이 충돌하는 위치에 서 있다. 두 사람이 경찰에 의해 잔혹하게 사살되는 결말과 영화 내내 이어지는 경찰과의 대립은 기존 사회 권력에 대한 젊은 세대의 반항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보니 앤 클라이드>가 진정으로 뉴 할리우드의 기수라 불리는 이유는 선과 악의 경계를 과감히 허물었기 때문이다.
당대 미국의 청년층은 사회 시스템의 모순에 저항하는 낭만적인 주인공들에게 깊이 이입했다. 때문에, 둘을 향한 무자비한 총격은 당시 반전 시위에 나선 젊은이들을 폭력으로 진압하던 국가 권력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정의를 수호해야 할 공권력은 청년들을 끈질기게 추격해 억압하는 존재로 묘사된다. 관객은 법을 어긴 주인공보다, 오히려 무자비한 경찰에게 더 큰 반감을 느끼게 된다. 이 기묘한 구도는 기성 세대가 구축한 법과 질서가 과연 정의로운 것인지 되묻는 그만의 방식이었을 것이다.
보니와 클라이드는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이동한다. 훔친 차로 도로 위를 질주하는 그들의 모습은, 견고한 도시 문명을 거부하고 자유를 찾아 떠돌던 히피의 유랑과 닮아있다.
비록 영화는 이들의 처참한 죽음으로 끝나지만, 그 파멸을 단순한 패배로 볼 수만은 없다. 온몸으로 총알을 받아내며 쓰러지는 그들의 마지막 장면은, 결코 순응하지 않겠다는 60년대 청년들의 비극적이면서도 강렬했던 모습을 투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니 앤 클라이드>는 자본과 권력에 저항했던 60년대 미국의 정신을 가장 영화적인 방식으로 승화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