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취의(捨生取義). 목숨을 버리고 ‘의(義)’를 좇는다는 뜻의 사자성어다. 생명을 포기하더라도 옳은 일을 하겠단 결연한 의지가 담긴 말이다.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 의리(義理)를 포기하지 말란 뜻이기도 하다.
기꺼이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지켜야 할’ 도리는 무엇일까. 가족, 친구, 연인 등 사랑하는 이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존귀하지만 닿을 수 없는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숭고한 가치 때문에 자신의 삶, 나아가 소중한 사람을 희생시킨다는 건 현대인으로선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신분이 낮든 높든, 사람의 목숨값은 흥정의 여지가 없이 공평하기 때문이다.
고선웅이 각색·연출한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엔 의리를 지키기 위해 자신과 가족을 희생시키는 이가 등장한다. 그는 평범한 시골 의사 ‘정영’이다. 정영은 45세에 얻은 귀한 아들을 복수를 위한 희생양으로 삼으며 20년이란 세월을 허망하게 흘려보낸다. 심지어 그 복수는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것도 아니다.
공주 주치의 정영은 공주 남편 조삭 아버지인 ‘조순’에게 은혜를 입은 적이 있었다. 조정 대신인 조순은 사회적 지위를 갖췄고, 인품도 훌륭하며, 수많은 이에게 덕을 베푼 위인이다. 이에 조순을 시기한 또 다른 조정 대신 ‘도안고’는 누명을 씌워 조씨 가문을 멸문시킨다. 조순 아들 조삭과 공주 부부에겐 태어날 아들이 있었다. 그가 바로 유일한 생존자 ‘조씨고아’다. 정영은 자신에게 조씨고아를 건네는 공주의 간청을 거절하지 못한다. 조순에 대한 의리 때문이다.
조씨 가문에 하나 남은 복수의 씨앗, 조씨고아를 지키기 위한 극단적인 선택들이 이어진다. 전국의 아기들을 모두 잡아들이란 도안고의 명령에, 친아들과 조씨고아를 바꾸기로 결심하는 정영의 광기에 가까운 신념이 그것이다. 또한 궁을 지키는 장군 한궐은 조씨고아를 숨기고 달아나는 정영을 내보낸 후 목숨을 끊고, 평화로운 말년만을 앞두고 있던 은퇴한 대신 공손저구는 조씨고아로 위장된 정영의 친아들과 함께 희생된다.
한궐과 공손저구는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어른이다. 하지만 정영의 친아들이자 조씨고아 못지않게 귀하게 얻은 아기인 정발은 왜 그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조씨고아 대신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기를 지키려다 남편 눈앞에서 자결한 정영의 처 또한 억울한 희생양이다.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할 아내, 자식보다 조씨 가문에 대한 의리를 더 귀하게 취급한 정영의 곁에 남은 건 무엇일까.
수많은 희생을 먹고 자란 청년 조씨고아는 정영의 주입식 복수 교육으로 깨어난다. 많은 것을 잃으며 20년을 기다린 정영의 처절한 삶에 비해 조씨고아의 복수는 짧고 허무했다. 태어날 때부터 정영 아들과 운명이 바뀔 정도로 귀했고, 복수에 성공하니 더 귀한 몸이 된 조씨고아와 달리 저승에서조차 정영의 수고를 알아주는 이는 없었다.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이처럼 복수 끝엔 공허만이 남는다는 뚜렷한 메시지를 보여준다.
‘동양의 햄릿’이라 불리는 중국 4대 비극 기군상 <조씨고아>를 고선웅이 각색·연출한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2015년 초연돼 10년간 무대에 올랐다. 2015년 대한민국연극대상 대상, 2016년 동아연극상 대상 등을 수상하며 고선웅과 국립극단의 대표작으로 자리 잡은 작품은 2016년엔 원작의 출현지인 중국으로 역수출되기도 했다.
2025년 11월 21일부터 30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된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10주년을 맞이하여 1,200석 규모 대극장에 입성하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증명했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10주년 공연은 2025년 12월 5일부터 6일까지 구미문화예술회관, 12월 19일부터 20일까지 제천예술의전당에서도 관객을 만난다.
오늘날 관객도 몰입할 수 있도록 더해진 현대적인 관점과 고선웅 연출 특유의 위트와 해학을 통한 완급 조절은 고유한 연극적 리듬을 만들어냈다. 중요한 상징들(달·바퀴·나무·칼·정영의 절단된 팔)만을 배치한 붉은 장막이 드리워진 무대, 조명의 빛과 그림자로만 그려지는 긴장감 있는 연출에선 극도로 절제된 미니멀리즘이 돋보였다. 한지, 천 등 한국적인 질감을 살려 제작된 의상과 소품까지 한국적 미학을 더하며 한 폭의 동양화 같은 미장센이 탄생했다.
비극적인 서사와 처절한 정서, 10년을 작품 속에서 산 배우들의 경이로운 연기와 폭발적인 감정 또한 심플한 무대를 꽉 채우고도 남았다. 정영 역의 하성광, 도안고를 연기한 장두이, 조씨고아 역의 이형훈 등 대부분의 배우는 10년간 무대에 오르며 인물 그 자체가 됐다. 고선웅 연출의 또 다른 대표작 <퉁소소리>에서도 열연한 62년 차 원로 배우 이호재는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10주년 공연에 영공 역으로 합류하며 새로운 역사를 썼다.
“미련해. 다 늙어버렸잖아. 네 인생은 뭐였어.”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에선 선과 악의 경계를 흐린다. 목숨 걸고 조순, 조씨고아, 조씨 가문에 대한 신의를 지킨 정영은 그들에겐 선한 영웅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진짜로 생을 다해 지켜내야 할 이들은 아내와 친아들 정발이었다. 저승에서조차 외면당할 정도로 원망스러운 남편이자 아버지가 된 정영은 끝내 아들과 아내를 안아보지 못한다.
열등감이란 불씨를 불꽃으로 키워, 조씨 가문을 불태운 악인 도안고 또한 약점이 있었다. 20년을 정영의 친아들이라 믿고 키운 양자이자 조씨 가문의 마지막 씨앗, 조씨고아였다. 조씨 혈족을 몰살시킨 그는 유일한 생존자 조씨고아를 피가 섞인 가족보다 더 아끼며 그에겐 약하게 굴었다. 죄 없는 아기들까지 잡아들이며 죽이려 했던 조씨고아가 자신이 무예를 가르친 양아들이란 걸 까맣게 모르던 도안고는, 유일하게 사랑했던 인간 조씨고아의 칼에 제압당한다.
도안고는 복수하겠단 일념으로 원수인 자신 곁에서 쥐 죽은 듯 조씨고아를 키워낸 정영에게 ‘다 늙어버린 네 인생은 뭐였냐’는 말을 남긴다. 그 말은 작품의 주제이자, 관객을 향한 질문,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같은 앙갚음의 정서로 폭주하는 세상에 던지는 화두이기도 하다.
정영은 처음엔 조씨 가문에 대한 의리를 지키느라 조씨고아를 떠맡았고, 멸문된 조씨 가문을 위한 복수를 다짐했다. 그러다 가족을 잃고, 누구를 위해 사는지도 모른 채 바스러진 복수심을 안고 20년을 표류했다. 정영이 목격한, 혹은 만들어낸 참혹한 죽음의 모습들은 족자 하나에 정리됐다. 하지만 조씨고아를 지키기 위해 희생된 이들의 목숨값은 결코 종이 한 장에 정리할 수 없다.
정영의 삶 또한 마찬가지다. 그는 영공에게 죄인 도안고 가문 또한 멸문시키겠단 약속을 받아내지만 후련해 보이지 않는다. 복수의 굴레는 절대 끊어질 수 없다는 걸 짐작했기 때문이 아닐까.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는다. 인생이란 꼭두각시의 무대에서 복수라는 칼춤을 추며 살다 보면 결국 남는 건 허무뿐이다. 그렇기에 ‘이런 우환을 만들지도, 당하지도 말고 부디 평화롭기만을’ 바란다는 묵자의 당부가 아득한 꿈처럼 들려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