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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소설 『fin』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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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술을 마시자. 우리는 긴 여로를 끝냈으니까. 그러나 끝났다고 믿는 순간 이미 시작되고 있다. 당신들도 알다시피.”


소설은 연극배우인 두 사람, 기옥과 태인이 주인공으로 연기하는 연극 「밤으로의 긴 여로」의 마지막 공연이 마치며 시작된다. 커튼콜이 시작되기 직전, 무대 위로 나아가기 직전에 태인은 긴장한 기옥에게 “드디어 시작”이라는 말을 남긴다. 기옥 역시 화려한 무대 위 사람들의 박수를 받으며, 벅찬 듯 표정 연기를 하며 생각한다. “이 환호는, 이 커튼콜은, 금방 끝날 텐데. 막이 내릴 텐데. 이것은 시작이 아니라 끝일 텐데. 하지만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상관없”다고 말이다.

 

오랜 시간과 공을 들인 연극이 이제야 끝이 났는데, 무엇이 다시 시작이라는 것일까? 이들은 이 연극을, 삶으로 모방되는 거대한 역할놀이를 어떤 마음으로 수행하고 있는 걸까.

 

위수정의 신작 소설 『fin』은 현대문학 핀 시리즈의 쉰여섯 번째 소설선으로, “자신만의 고통과 고독을 담은 채 그 감정들을 감추고 살아가는 네 남녀의 욕망으로 질주하는 삶이 단막극처럼 펼쳐”진다. 기옥과 그의 매니저인 윤주, 그리고 태인과 그의 매니저 상호의 내면이 적나라하게 서술되며 이야기는 질주한다.

 

『fin』은 작품의 제목이나 등장인물의 설정 등을 고려했을 때 연극과 깊은 관련이 있다. 연극이란 대게 무대 위 인물들의 발화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장르이지만, 이 소설은 인물의 대화보다 밀도 높은 자기 서술이 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 흥미롭다. 누구보다 연극을, 그리고 연극 같은 삶 자체를 이해하고 있는 네 사람이지만 그렇기에 그들의 이야기는 괴로울 만큼 솔직한 자기 서술로 가득 차 있다.

 

이야기는 연극  「밤으로의 긴 여로」가 끝난 시점에서 기옥의 시점으로부터 윤주로, 윤주의 시점에서 상호로, 또 상호에서 불에 타오르는 순간 태인의 시점까지 쉬지 않고 이어진다. 소설은 태인이 상호가 운전하던 차에서 난 사고로 인해 사망한 사건을 중심으로 하는 것 같지만, 오히려 이야기가 전개하는 데에 그런 것들은 중요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건 주위의 네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에 집중한다.


독자는 네 사람의 시점을 순서대로 체험하며 각자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엔 독자에게도 그렇게 낯설지 않은 감정들이 날뛰고 있다. 자신의 실패를 체감하며 주변의 시선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기옥은 윤주를 예외적으로 아낀다. 윤주는 그런 기옥을 보며 “나는 네가 부러워. 근데 넌 그걸 모르더라”며 분노와 같은 질투를 느끼고, 끝내 기옥의 물건에 손을 댄다. 집안 사정으로 배우가 되지 못하고 태인의 매니저가 되었던 상호에게도 태인을 향한 “선망과 혐오가 교차”한다. 폭력적인 언행으로 가족과 동료들에게 눈총받는 태인 역시 “나는 나를 오해”한 것임이 아닌지를 마지막까지 고뇌하며 절망적인 죽음을 맞는다.

 

각 인물의 사정과 환경, 그리고 그것을 대하는 태도가 어떻게 되었든지 간에 중요한 것은 이야기가 열린 채로 끝이 났다는 사실이다. 누가 태인을 죽였는지, 상호와 윤주는 어떻게 아는 사이인지, 윤주의 행동을 기옥이 알아차렸는지에 대해 독자는 여전히 알지 못한 채로 이야기는 결말을 맞는다. 『fin』은 그러한 장치를 통해 이 이야기가 특정한 한 사건을 중심으로 한 것이 아닌, 우리 삶에 있을 법한 인물들의 내면에 대한 것이라는 걸 보여주는 듯하다. 소설은 지금-여기에 존재하는 태인의 사망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네 인물이 평생을 걸쳐 가져온 감각과 감정에 집중한다. 그것은 하루아침에 생겼다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사실은 우리에게 시리도록 끔찍한 감각을 선사한다.

 

『fin』 속 네 사람은 자기 서술이라는 장치를 통해 세상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누군가가 누군가로부터 부여받은 역할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역할에 요구되는 행동을 그다지 수행하지 못했대도 넘치게 대우받는 사람과, 역할에 요구되지 않는 것들까지 모조리 수행했대도 받아야 할 몫마저 받지 못하는 사람이 교차하는 세계를. 보이는 ‘나’가 진짜 ‘나’를 침범하고, 결국엔 그 ‘역할’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다 막상 중요한 것들을 놓쳐버리고 마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할까. 그 세계와 세상 사이에서 우리는 어떻게 균형을 잡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


그 과정에서 아무도 해치지 않고 완전무결한 삶을 살 수 있으면 좋겠지만, 『fin』의 네 사람이 보여주듯 그건 말처럼 단순한 일이 아닐 것이다. “불행이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 후에야 “운전에 집중”하며 “음악을 틀었고 노래를 따라 흥얼”거릴 수 있었던 상호처럼 말이다.

 

 

추한 말과 행동은 쉽게 그 사람의 본심으로 인정받는다. 그렇다. 나의 본심과 가장 먼 것들이 어쩌면 나의 진실일지도 모르겠다. 말과 행동이 나를 바꾸어버렸다. 말과 행동이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드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물끄러미 바라보기. 그것만이 나의 일관된 자세. (140p)

 

 

시작이라는 단어가 소설을 관통하고 있다. 태인은 이야기의 처음과 마지막에서 동일한 태도로 끝과 시작은 이어져있다고 말한다. 어쩌면 그는, 삶의 끝없는 역할놀이가 이 삶이 다할 때까지 이어진다는 것, 우리가 재가 되어 타오를 때 기어코 “퇴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했을지도 모른다. 독자가 태인의 끝을 목격하고 책을 덮으며 각자의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게 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책장에 파묻혀있던 고개를 든다. 거기서부터 우리의 여로가 다시 시작된다. 끝은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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