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K-POP에서 사랑은 때때로 이미지처럼 소비된다.
뮤직비디오 속 사랑은 화려하고 아름답고, 영원히 클라이맥스만이 반복되는 드라마처럼 연출된다. SNS에서 사람들이 보여주는 사랑 또한 마찬가지다. 행복한 순간만이 공유되고, 여러번 갈고 닦은 매끈하게 다듬어진 말투와 감정만이 남는다. 그러나 이런 시대의 흐름 속에서 백예린은 사랑을 하나의 이미지가 아닌 ‘감정의 과정’으로 바라본다. 그녀에게 사랑은 완벽하게 연출된 순간이 아닌, 흐트러짐과 상처, 기다림과 회복까지 모두 포함하는 그야말로 살아 있는 감정이다. 요란하지 않지만 진짜로 남는 감정, 흘러가면서 달라지고 때로는 흩어지는 마음의 방향에 귀를 기울인다. 백예린의 음악은 이런 ‘살아 있는 사랑’을 꾸밈 없이 그려낸 기록이다.
꾸밈없는 감정들은 모두 사랑이니까
사랑의 시작은 언제나 조용하다. 백예린은 그 조용한 순간들을 누구보다 섬세하게 붙잡는다. 백예린의 히트곡이자 정규 1집에 수록되어 있는 세번째 타이틀 〈Square(2017)〉을 들으면, 사랑이란 사실 미디어에서 꾸며낸 거창한 멜로드라마처럼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상대의 이름을 부르기도 전부터 마음이 흔들리고, 아직 말로 표현되지 않은 감정이 공기처럼 스며드는 순간이 있다. 이런 곡 분위기와 가사에 걸맞게 백예린의 목소리는 순수하고 부드럽게 흔들린다. 마치 그녀의 목소리는 아주 작은 숨결처럼 다가오는 사랑과 같이 들린다. 그것은 누군가를 강렬하게 사랑하기 전 나 스스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미묘한 감정이다. 가장 조용한 사랑의 첫 페이지에서 백예린은 그 조용한 고요가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사랑은 조용히 시작되더라도, 그 여정이 언제까지나 따뜻할 수는 없다. 백예린의 음악은 사랑이 남기는 상처와 깊은 슬픔도 숨김없이 그려낸다. 앞서 설명한
또한 백예린의 2집 앨범에 수록되어 있는 타이틀곡 〈Hate you〉는 사랑의 끝에서 느끼는 모순된 감정을 솔직하게 꺼내 놓는다. 상대방을 미워하는 감정과 그럼에도 놓지 못하는 마음이 서로 충돌할 때 그 충돌을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그 모순 속에서 사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나타낸다. 모두가 상처받은 마음을 감추고 싶어 하지만, 백예린은 상처를 감추지 않는 것이야말로 더 큰 용기라고 말한다. 백예린의 노래를 들을 후에는 진정한 사랑과 사랑이 지나간 뒤 남은 용기들로 한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신비한 힘을 얻을 수 있다.
사랑이 지나가면 진정한 내가 될 수 있게
사랑의 상처가 완전히 아물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백예린의 음악은 그 시간을 함께 건너는 듯한 고요하지만 강한 위로를 전한다. 그녀의 노래는 사랑이 떠난 뒤 비어버린 자리에 홀로 서 있는 사람에게 손을 내민다. 노래가 지닌 힘은 단순한 위로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가끔은 사람을 만나기도 힘겨울 때, 이 세상이 짓누르는 무게가 버거울 때 진심이 담긴 멜로디는 그 자체만으로 우리를 다독인다. 잠시 멈춰 서서 내 마음을 지긋이 바라보는 일, 슬픔을 억누르지 않고 조용히 느끼는 일, 그리고 천천히 자신의 속도를 되찾아가는 일이 사랑 이후의 삶에서 우리가 해야 할 유일한 과정임을 그녀의 노래는 알려준다. 사랑이 끝난 뒤의 공백은 실패가 아니라, 다시 나를 회복시키는 시간이 된다. 그 공백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내가 누구인지, 한 켠 더 성장한 내 자신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백예린의 사랑은 결국 하나의 결론으로 흐른다. 사랑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예쁜 이야기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 사랑은 감정의 모든 뒷 면을 포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온전해진다는 것이다. 사랑의 시작은 드라마처럼 눈부시지 않아도 충분하고, 사랑의 상처는 감추지 않아도 괜찮으며, 사랑의 회복은 느리고 더딘 과정이지만 그 느림 속에서 우리는 다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녀의 음악은 우리가 사랑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잃으며 어떻게 다시 살아가는지를 고요하게 비춘다.
완벽함을 넘어
사랑은 완벽하지 않아도 되고, 흔들려도 되고, 상처가 남아도 괜찮다. 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내 감정을 숨기지 않는 일, 나를 잃지 않는 일, 그리고 다시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천천히 회복하는 일이다. 백예린의 음악은 사랑의 찬란함을 노래하는 대신 사랑 그 자체를 노래함으로써, 우리가 잊고 있던 감정을 조용히 가져다준다. 노래가 시작되는 순간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한 사람의 마음이 거쳐온 시간 전체가 된다. 그리고 그 시간은 언제나 듣는 이의 마음속에서 아주 오랫동안 잔잔한 파동으로 남는다.
그렇게 백예린은 파도가 되어 우리의 곁에 늘 함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