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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괴물 없는 괴물 영화 - 프랑켄슈타인 [영화]

괴물은 태어나는가 혹은 만들어지는가

by 김혜원 에디터
2025.11.21 11:37

 

 

최근, 이번 10월에 개봉한 [프랑켄슈타인]을 봤다. 기괴함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것으로 유명한 거장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의 최신 개봉작이다. 이제 막 개봉 한 달 차가 되어가는 이 따끈따끈한 신작은 특유의 아름다운 영상미와 원작의 내용을 잘 풀어낸 연출력으로 많은 호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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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괴물 같은 인간’과 ‘인간 같은 괴물’에 관한 이야기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저명하지만 엄격한 외과 의사인 아버지 밑에서 남 부러울 것 없이, 그러나 동시에 억눌리며 자란다. 하루는 사랑하는 어머니가 그토록 실력 있는 의사인 아버지가 곁에 있는데도 동생을 낳다 목숨을 잃자, 빅터는 아버지를, 더 나아가 삶과 죽음 그 자체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누구도 죽음을 정복할 순 없어.” 아버지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빅터는 죽음을 정복하기로 했다. “내가 죽음을 정복할 거예요. 아버지가 아는 모든 것과 그 이상까지 알게 될 거고요.” 그리고 바로 그날 그는 태어나 처음으로 계시를 받는다. 어둠의 천사에게, 생과 사를 다스릴 힘을 얻게 될 것이라는 약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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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수십 년에 걸쳐 빅터는 ‘죽음’에 관해 파고들기 시작한다. 태어나고 죽는 것이 신의 뜻이라면, 그 사이의 삶은 오롯한 인간의 몫이 아닌가? 그렇다면 만일 이 삶이 무한히 길어질 수 있다면, 즉 죽음을 늦추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멈출 수 있다면? 제아무리 죽음이 신의 영역이라지만, 결국 그 죽음이 영영 올 길이 없다면?

 

그러한 생각이 빅터를 움직이게 했고, 그는 이미 죽은 사람들의 시체를 이용해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는 위험한 실험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 그를 비난하고 의심했지만, 천사에게 직접 계시를 받아서인지 혹은 그러한 환상을 볼 정도로 자기 확신이 가득했기 때문인지 빅터는 끝내 해내고 말았다. 시체를 수집하고, 조각내고, 그것들을 기워내서 누더기 괴물을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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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은 축복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그건 너무 이기적인 말이다. 기본적으로 모든 생명은 태어나기를 원하지 않은 채로 태어난다. 다른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고 꺼내어져서 세상에 내던져진다. 심지어 그들의 유일한 동아줄마저 남에 의해 동의 없이 싹둑 칼같이 잘리고 만다. 탄생은 이토록 강제적이다.

 

괴물은 신을 모방하고자 한 오만한 인간들의 욕망 위에 태어났다. 물론 그 역시 세상에 태어나고 싶다고 누군가에게 소원하진 않았다. 시체 조각으로 이루어진 몸을 달라고는 더더욱.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입장에서 괴물은 만들어진 것이지만, 괴물의 관점에서 그는 태어난 것이다. 마치 아기처럼. 그에게는 세상 모든 것이 처음 보는 것들이고, 그렇기에 신기하고, 창조자(부모)의 손을 잡은 채 불안한 걸음마를 떼며, 그의 이름으로 첫 옹알이를 한다. 여느 아기가 그렇듯이 갓 태어난 괴물은 백지의 상태다.

 

빅터는 괴물을 만들어낼 각오는 되어 있었지만 그 이후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이 빅터와 괴물 모두의 인생을 뒤바꾼 크나큰 패착이었다. 한 생명이 태어나면 충분히 성장할 시간이 필요한데, 빅터에게 괴물은 목적이 아닌 수단이었기 때문에 그는 그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빅터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능숙하게 말하고 움직이지 못하는 괴물의 모습에 실망과 분노를 감추지 못했고, 그것을 그대로 괴물에게 쏟아냈다.

 

하지만 우스운 점은 어쩌다 이 존재와 마주친 엘리자베스(빅터 남동생의 약혼자)가 다정하고 친절하게 자신의 이름을 일러주자, 빅터의 앞에서는 입도 떼지 못하던 괴물이 단숨에 그녀의 이름을 말할 줄 알게 된 것이다. 결국 그에게 필요했던 것은 그런 작은 선의였다.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하게 주고받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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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괴물’이란 무엇일까? 사전적인 의미로는 ‘괴상하게 생긴 물체’라고 한다. 그러면 단순히 겉보기에 남들과 다르면 괴물이 되는 것일까? 대체 어떻게 생겨야 ‘남들과 다르고 괴상’한 것일까? 눈이 하나고 코가 세 개면? 온몸에 특이한 흉터가 가득하면? 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사람을 우리는 괴물이라고 부르진 않는다. 돼지 등의 이종 피부를 이식받는 경우나 기계 팔을 가진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여전히 모두와 다를 것 없는 인간이다.

 

그렇다면 내부의 문제일까? 사람들이 마음이나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들? 설령 그렇다 한들 대체 누가 다른 사람의 영혼을 꿰뚫어 볼 수 있고, 심지어 그 가치까지 판단할 수도 있단 말인가? 또, 시체 조각으로 이루어진 금기의 몸이기 때문에 괴물이 되었다면, 진정한 ‘괴물’은 그 몸을 빌려 태어난 자인가 아니면 그 몸을 만들어낸 자인가?

 

결국 괴물이라는 것은 하나의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누군가는 괴물을 보며 괴물이라고 생각했지만, 한 여인은 그를 돌보아야 할 존재라고 생각했고, 한 노인은 자신의 친구라고 생각했다. 여인이나 노인과 함께 있을 때면 괴물은 더는 괴물이 아니었다. 그들이 그를 그렇게 생각하고 대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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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의 삶은 강제 그 자체였다. 그는 원하지도 않았는데 세상에 태어났고, 처음으로 원하는 것이었던 ‘동반자’가 될 수 있을 만한 사람들은 모두 죽음에 빼앗겼으며, 정작 그 자신은 죽음을 선택할 자유마저 강탈당했다. 그는 증오에 가득 차 이 모든 일을 만들어낸 창조주를 끝없이 뒤쫓았지만, 막상 다시 마주하고 진심 어린 사죄를 듣자 그를 이해하고 용서해 준다. 그 모든 일을 겪으면서도 결국 그의 마음 한편엔 사랑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과연 이런 존재가 괴물일 수 있을까? [프랑켄슈타인]은 한 인간과 한 괴물의 이야기가 아니다. 두 사람은 동시에 인간이다. [프랑켄슈타인]은 괴물 없는 괴물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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