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관객은 기만을 멈추라 [영화]

글 입력 2023.12.01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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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이라는 제목을 들으면 어떤 작품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대개는 봉준호의 걸작 <괴물>(2006)을 생각할 것이다. 격렬한 템포의 OST와 함께 한강 공원을 가로지르는 괴수의 모습과 故 변희봉 배우의 명장면은 눈을 감아도 생생하게 그려진다.

 

영화에서 ‘괴물’은 한강에 흘러 들어간 폐수가 만들어낸 괴생물체를 뜻한다. 그 이면에는 소시민을 방관하는 폭력적 국가 시스템이라는 또 다른 괴물이 존재한다.

 

한편 2021년 방영된 JTBC 드라마 <괴물>이 있다. 포스터에 적힌 “괴물은 누구인가”라는 말처럼 드라마는 모호한 ‘괴물’의 개념을 제시한다. 괴물 같은 범죄자를 잡기 위해 괴물이 되고자 하는 경찰의 다짐은 결기와 광기의 경계를 오간다.

 

 

괴물_포스터 1.jpg

 

 

지난 11월 29일 국내 개봉한 또 다른 ‘괴물’은 앞선 작품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등 가족 영화로 유명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신작 <괴물>(2023)이다.

 

‘괴물은 누구인가’는 영화 주인공인 두 아이 ‘미나토’와 ‘요리’가 즐겨 부르는 노래 가사이기도 하다. 천진한 아이들의 입을 빌려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관객에게 압력을 가한다. 괴물을 꼭 찾아야만 한다는 듯 노래는 반복된다.

 

의뢰를 받은 관객은 탐정처럼 ‘괴물’을 찾아 나선다. 일련의 사건을 두고 펼쳐지는 인물 간의 오해와 갈등은 ‘괴물’을 지시하는 듯하면서도 혼란을 준다. 사건을 서술하는 인물의 증언을 듣고 가설을 세울 뿐이다.

 

미나토의 엄마 ‘사오리’와 담임 교사 ‘호리’, 그리고 두 아이를 둘러싼 이야기는 관객의 수사를 기다린다. 하나둘 드러나는 증거를 지표 삼아 가설은 점점 뼈대를 갖춘다. 얼핏 두근거리기까지 한다. 이 사람이 ‘괴물’인가? 아니, 저 사람?

 

 

괴물_스틸컷 1.jpg

 

 

영화는 줄곧 관찰자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동 시간대를 겪는 인물들의 시점이 차례대로 제시되지만, 관객은 그 인물에 동화되지 않는다. 철저한 제3자로서 전지적인 위치를 점할 뿐이다. 이것은 일종의 기만이다. 한 사건을 여러 관점에서 바라봄으로써 관객은 등장인물에 비해 사건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우위를 점한다.

 

시점이 다양해지면서 사건의 베일은 점점 벗겨진다. 범행의 진상을 파악한 경찰처럼 모든 의문은 사라지고 후련한 뒷맛을 곱씹는다. 그럴 줄만 알았다.

 

기만적인 관객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오만한 액션은 자신이 단죄를 내릴 자리에 서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스릴러 영화를 보며 범인을 추리하는 것은 당연한 감상법이다. ‘괴물’을 다룬 영화에서 괴물을 찾아내고자 하는 행위를 어찌 오만하다 할 수 있을까.

 

감상은 감상자의 자유로운 권리다. 다소 동어 반복적이지만 이보다 더 적절한 말을 찾을 수 없었다. <괴물>에서 괴물을 단죄하는 감상법 역시 누군가에겐 마땅하다. 애초에 그러라고 노래를 부르지 않았나. “괴물은 누구인가”

 

그러나 범인을 지목하는 탐정은 엔딩 크레딧이 오르고 극장을 나서는 순간부터 권위를 잃는다. 우리는 언제든지 사오리가, 호리가, 미나토와 요리가 될 수 있다. 그들과 같은 입장에서 오해가 얽힌 사건을 마주했을 때도 지금처럼 교만하게 진상을 파헤치고 단죄하려 할까.

 

 

괴물_스틸컷 2.jpg

 

 

관객은 기만을 멈추라. 관찰자 시점에서도 완벽히 객관적인 입장은 존립할 수 없다. 관객이 제시 ‘당하는’ 상황은 이미 누군가에 의해 재단되고 왜곡된 일부일 뿐이다. 우리는 가장 주관적인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뭐라도 된 듯 판단을 내리고 말을 얹는다.

 

이 영화를 처음 본 사람이라면 내가 그랬듯 우선 ‘괴물’을 찾아 나설 테다. 영화가 끝난 후에 진정한 괴물의 정체를 발견하고 느낄 감정 또한 궁금해진다. 스포일러 없이 볼수록 좋다. 이 글에서 줄거리를 묘사하지 않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 이유다.

 

그 결과 모호하고 불완전한 글이 되었다. 스스로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다만 스포일러가 없을 때 더 많은 이들에게 읽히고, 그로써 한 명이라도 더 이 영화를 볼 마음을 먹는다면 쓸모를 다한 글이 될 것이다.

 

어떤 말을 더해도 이 영화를 완벽히 표현하기란 불가능했다. 허투루 쓰인 신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작고한 거장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이 더해진 장면들은 시청각을 마구 찌르고 할퀸다. 아름다운 고통 속에 결국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이 작품은, 영화의 진정한 존재 이유를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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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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