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봄이 오는 소리는 요란하다

가끔은 위험하고
글 입력 2024.02.28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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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일기 中

 

 

"크리스마스와 정원 초하루 사이의 기이한 일주일은 시간의 밖에 있는 괄호 속 같다. 지난해가 끝났지만 아직 새해는 시작되지 않았다. 하마터면 나는 그 기이한 시간 속의 공백 속에서 태어날 뻔했다."


2월 초쯤 마음이 뛰는 문장을 봤다.


바로 도서관에서 그 문장이 속한 책을 빌렸지만 손을 댈 기운이 없어 일주일을 방치해 뒀다. 읽으려는 시도 자체가 힘들었다. 욕심부려 빌려둔 5권이 가슴에 턱 올려진 것 같았다. 


글을 쓰는 것을 업으로 삼은 건 올해로 5년 차가 됐다. 일도 글, 취미도 글이다. 그래도 아직 쓰는 행위는 잘 모르겠다. 잘 쓰기 위해선 역시 꾸준한 연료가 필요하다는 것 말고는 이렇다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는 것도 없다. 


글을 써서 먹고사는데 집에 와서 또 글을 쓰는 것은 힘들지 않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쓰는 것이 매번 즐거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써야 한다는 의무감에 쓰는 글도 있었다. 읽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방에 앉아 누군가의 세계를 빌리는 있는 일이 싫고 어려울 리가. 


그런데 실제로 그 일이 벌어졌다. 막상 그런 상태임을 인정하고 나니 아 이거 큰일이구나 싶었다. 


유일하게 자신 있던 사실에 공격받은 순간이었다. 보고 들은 것이 빈약해 소화할 것이 적어지면 쓸 수도 없다...읽고 익히는 것 없이 뭔갈 내보낼 순 없었다. 읽음이 줄면서 씀도 줄었다. 


그냥 읽고 싶지 않은 게 아니다. 어떤 것도 궁금하지 않게 됐고, 어떤 감정도 대리로 전달받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문제다. 덕분에 몇 개월 동안 에세이는 손도 대지 못했다. 내 감정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데 남의 복잡한 감정은 읽어서 뭐 하나 하는 마음이었다. 유튜브로 도피해도 마찬가지였다. 30초짜리 짧은 영상도 늘어지기 시작하면 우측 방향키에 손이 올라가 있다. 15초씩 미래를 볼 수 있는 마법의 버튼.


내 미래도 저런 식으로 보기 시작하면 어느샌가 관에 누워있는 나를 보게 될까 봐서 가끔 두려웠다. 내 집중력도 도둑맞은 것이 틀림없다. 내 집중력은 원래도 가녀린데 훔쳐가서 어디에 쓰려고 그러는가 도움도 안 될 텐데...그래서 나는 단호하게 읽고 씀을 쉬었다. 겨울 내내 새로 쓴 글이 담긴 폴더엔 업데이트가 없었다. 이전에 썼던 글을 고치기만 하고 새로운 글을 시작하겠다는 욕심은 버렸다. 글쓰기 파업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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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은 약 3개월 만에 어이없이 끝났다. 소설책 하나였다. 내가 아는 서울의 곳곳을 헤집어서 신령과 서낭신, 터주신 등 신화와 버무려 놓은 이야기가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서울에 수호신이 있었을 때'. 앉은자리에서 450 페이지 가량의 책을 다 읽고 나서 웃었다. 서울의 나쁜 점과 기괴한 점을 끝없이 말할 수 있지만 결국은 서울을 사랑한다는 작가의 말을 꼼꼼히 들여다봤다. 하고 싶은 말은 이렇게 담백한 것을...길고 긴 하나의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는 재능과 인내심이 부러워졌다. 


용기가 생겨서 다음 책을 펼쳤다. 2월 안에 읽어보겠노라 공언했던 '외면일기'. 또 가슴이 떨린다...이렇게 헐겁게 풀릴 수 있는 휴식시간이라니. 1월에 독일에서 분실하고 찾아가지 않은 여행가방들의 경매 축제가 열린다는 기막힌 사실을 이제야 알다니. 주변의 발견, 관찰을 갈고닦아 광택을 낸 외면일기는 일기라기보단 관찰기에 가깝다. 시니컬한 말투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세상을 관찰해 담아낸 미셸의 통찰을 보고 있자니 열두 계절이 후딱 지나갔다. 


쓰고 싶어졌다. 


긴 겨울방학이 끝난 것 같았다. 이번 글을 써내려 가면서 또 이런 날이 오면 어떻게 해야 할 지 생각하다 곧 그만뒀다. 일을 그만 둘 순 있어도 쓰는 것을 멈출 순 없다. 무엇을 쓸 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몇 년이 지나든 나는 여전히 쓰고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 거라면 잠깐 쉰 것에 이렇게 혼란스러워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잠깐의 파업을 종료한다. 


봄이 오는 소리는 요란하다. 공교롭게도 3월이 됐다. 얼마 전에는 고드름이 녹으면서 떨어지는 사고에 대한 재난 문자가 왔다. 미셸의 말을 빌리면 난파선처럼 험상궂은 모습이 되어 나오는 정원처럼... 어떤 변화는 늘 상냥하진 않다는 사실을 품에 안고서 나는 또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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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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