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존재와 변화 - 2023 SPAF 최강 프로젝트, 이들은 그냥 존재한다

변화하는 몸, Shape Shifter
글 입력 2023.10.31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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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 프로젝트를 알게 된 건 두 달 전쯤의 일이다. 나는 댄스 크루원들과 매주 두 번씩 춤 연습을 하는데 최근 신대방 쪽에 위치한 최강 스튜디오에서 연습하게 되었다. 한 동료가 이 팀에 대해 말했다.


“여기 최강 스튜디오의 ‘최강’이 그분들 이름 아닌가?”

“그분들이 누군데?

“아니 최강 프로젝트라는 팀이 있거든. 아무래도 거기 스튜디오 같은데?”


덧붙여 동료는 최강 프로젝트의 수업을 들은 경험을 말해주면서 무척 좋았다고 설명했다. 이후 나는 SPAF 개막작인 <익스트림 바디>를 보고 너무 만족스러워 SPAF에서 또 다른 공연을 보고 싶었다. 그전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최강프로젝트의 공연이 눈에 띄었다. 바로 최강 프로젝트의 <이들은 그냥 존재한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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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지난 10월 17일 국립정동극장_세실에서 최강 프로젝트의 <이들은 그냥 존재한다>를 감상하고 왔다.


최강 프로젝트는 무용수 최민선, 강진안 두 사람으로 구성된 그룹이다. 움직임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실험과 장치로 전통적인 방법에서 벗어나는 방향을 꾀한다. 정해진 아름다움에서 벗어나 ‘생각하는 몸’으로써의 춤을 지향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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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는 먼지 한 점 없을 것 같은 흰색이었다. 흰색의 바닥, 흰색의 벽, 둥근 형태의 무대. 그곳에는 문이 두 개 있었고 한 사람이 나와 뒤돌아섰다. 여자의 몸이 완전히 대칭을 이룬다고 생각하며 그녀의 호흡에 집중했다.


중앙 무대의 양옆에는 직사각형 TV 스크린도 하나씩 있었다. 그곳에서는 텍스트와 영상이 나왔다. 말들은 알다가도 모를 단어와 문장처럼 느껴졌다. 이해하기 어려운 화면이었지만, 무대 위의 것과 함께 감상하면 또 모르는 게 무용 공연이었다. 그렇게 나는 공연에서 던져주는 여러 가지 요소에 집중하며 감상을 시작했다.

 

 

 

여자의 방|’우리는 여러 얼굴로 일어난다‘


  

공간은 하나지만, 공연이 진행될수록 여자의 방과 남자의 방이 분리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녀가 등장할 때는 공간이 눈부신 흰색으로 바뀐다. 그리고 작은 소음이 무대 위에 옅게 깔린다.


입술이 빨간 여자는 입을 벌리고 ‘하-’ 혹은 ‘아-’ 소리를 낸다. 그 소리는 단독으로 존재했다가 다양한 소리로 합성된다. 처음에는 여자의 목소리였다. 그러더니 동물의 소리가 나고, 남자의 목소리도 났다. 닭이나 새, 호랑이 등 동물의 울음이 들린다. 소리는 독특한 음률과 박자로 동시에 존재한다. 그 모양은 하품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소리에 맞추어 동작을 변형해 나가는 여자는 몸속에서 울음소리를 꺼내는 것처럼 보였다. 트름 혹은 울음 혹은 비명처럼 들리는 그 여러 소리는 무대 위에서 몇 분 동안 차례로 전시되었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몸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간다. 그러나 그 육체는 하나의 껍데기를 가지고도 매분, 매 순간 조금씩 변화한다. 그것은 외면적인 변화로도 인지될 수 있지만, 내면적인 변화로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람에게는 단 하나의 페르소나만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흉내 낼 수도 있고 생물이 아닌 또  다른 무엇인가처럼 행동할 수도 있다. 또 어떤 동작과 소리는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몸에 흡수되기도 한다. 한 개인이 독립하기 전까지 성격과 습관을 형성하는 데 있어 부모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다고도 하지 않던가.


이처럼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주변의 많은 것을 흡수하며 살아간다. 주변 환경과 만나는 사람들, 키우는 반려동물, 자주 보는 콘텐츠 등 삶의 다양한 요소에서 미러링 하거나 팔로잉하고, 싫은 것은 부정하며 내 몸의 정체성을 점진적으로 확립해 나간다. 그러나 그 정체성은 고정불변하지 않은 것으로 멈추어 있지 않고 흐른다.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변화는 이루어질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여러 얼굴로 일어난다. 


오른쪽 문에서 연기가 나오면 여자는 쓰러진다. 그리고 문에서 남자가 나와 여자를 반대편 문으로 끌고 간다. 어중간한 문의 경계 사이에서 여자가 누워 있으면 남자의 방이 열린다.

 

 

 

남자의 방|‘그림자를 연장시키고 싶다’



남자의 방은 여자의 방과는 달리 누런빛이다. 방에 종이 구겨지는 것 같은 소리가 일정하게 난다. 그는 거친 호흡으로 발을 구르고 잔뜩 긴장된 근육으로 무언가를 위해 격하게 몸을 움직인다. 그림자와 싸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는 어떤 욕구를 가지고 그림자를 좇는다. 


어떤 몸부림과도 같은 그의 몸짓을 보며 강인한 욕구를 느꼈다. 그 욕구는 욕망이 될 수도 있고 집착이 될 수도 있다. 어린 시절 그림자를 밟거나 줄이거나 늘리며 바닥에 눈을 고정하고 반복했던 하나의 놀이를 떠올린다. 


그 놀이는 다 큰 성인이 과거 혹은 욕심을 대하던 모습과 겹쳐진다. 내가 집착했던 과거나 이상, 노력해도 되지 않던 여러 가지의 것들을 떠올리며 ‘그림자를 연장시키고 싶다’는 무대 위의 움직임을 여러 가지로 해석해 본다.

 

 

 

그들의 방|변화하는 몸, Shape Shifter


 

여자의 방과 남자의 방은 물리적으로는 같은 장소에 존재한다. 두 공간은 조명과 소리와 행동에 의해 개념적으로 분리된다. 그리고 서서히 하나의 공간으로 합쳐지기 시작한다.


흰색의 벽에는 문 말고 다른 장치가 없는 듯 보였지만, 어느 순간 정사각형의 네모난 창문이 툭 하고 떨어지면서 그 사이로 무엇인가가 뚫고 들어온다. 옷, 모자, 양말이다. 남자는 던져진 세 개의 오브제를 주워서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그렇게 두 남녀는 다르지만, 비슷한 모습이 된다. 시밀러룩을 입은 것처럼 닮은 모습이 된 둘. 무대는 둘의 공간이 합쳐지면서 좀 더 진한 누런빛으로 변한다. 


"우린 '끊임없이 흐르고 바뀌는 상태'

바로 셰이프시프터(Shape Shifter)가 되기로 했다."


이들이 보여주는 퍼포먼스는 ‘Shape Shifter’라는 용어로 정의된다. 셰이프 시프터란 무엇일까. 말 그대로 전환되고 변화하는 몸이라는 뜻인데, 이것은 주로 신화에 등장하는 개념이다. 인간의 몸으로 다른 형태의 생물이나 형체로 변화하는 것을 뜻한다. 변신에 관한 신화와 이야기는 그동안 많이 있었다. 예를 들면 카프카의 <변신>이나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 등이다.


그러나 이것은 민담이나 소설에서 보던 것처럼 판타지로만 이해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강 프로젝트는 변신과 관련한 판타지를 현실 무대로 옮겨놓는다.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무대 공간 위에서 그들에게 변하지 않는 단 하나의 진리는 ‘존재한다’는 사실. 이외의 모든 것이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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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어려웠다. 음악에 맞추어 춤이 이어지는 형식도 아니었고, 움직임은 날것의 형태에 가까웠다. 스크린의 말들은 작품을 쉽게 풀어주는 역할보다는 작품의 방향키를 조절하는 역할을 했다. 그렇기에 이런 표현 방식들이 다소 생소하고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공연이 진행될수록 무언가 해석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를 꺼내려고 하면 도리어 알 수 없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중반 이후로 무대의 여러 가지 요소를 이미지와 형태로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보다 보니 이것은 현실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개념이겠다는 생각을 했다. 변화하는 몸과 그를 인지하는 각종 감각과 욕망들. 무대 위에 펼쳐진 무의식의 잔해들을 바라보며 춤을 출 때의 내 몸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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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라는 육체의 껍데기로 춤을 추지만, 그 춤이 늘 똑같지는 않다. 단 한  번도 똑같은 적은 없을 것이다. 같은 안무를 하더라도 그 당시의 호흡과 컨디션, 장소, 심지어는 먹은 음식까지 움직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나의 관심사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생각과 가치관, 철학 또한 변한다. 그 과정은 서서히 일어난다. 지점토를 뭉쳐 무언가를 만들 때, 내가 원하는 형태를 위해 조금씩 떼어내고 다시 붙이고, 다듬으며 수정에 수정을 거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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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변에서 만나는 일터의 사람들, 춤출 때 만나는 댄서들, 무용수들, 동료들을 보며 그들의 움직임을 따라 하기도 하고 평상시 내가 자주 이용하는 동선 속에서 자연물과 사물을 관찰하기도 한다.

 

어떤 날은 사람들이 걸어가는 모습을 유심히 보게 된다. 또 어떤 날은 길가에 흔들리는 플라타너스의 잎사귀를 바라본다. 골목에 상주하는 고양이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동네 바깥 수조에 꺼내져 있는 거북이들의 움직임을 볼 때도 있다. 요즘은 은행잎의 색깔을 들여다보는 것에 관심이 있다.

 

그렇게 내 움직임은 관찰하고 마주하고 생각하는 것에 의해 유기적으로 변화한다. 이런 관찰과 경험, 관심사, 우연적인 만남, 사건 등을 통해 사람의 몸은 계속해서 영향을 받는다. 그렇다면 고정된 움직임이 있는가? 오로지 단 하나의 정체성으로 굳어진 존재가 있는가? 나는 하나의 존재로만 존재하는가? 계속해서 질문을 던진다. 확실히 ‘예’라고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존재한다는 사실을 제외하고 모든 것은 변한다.


SPAF 인터뷰에서 최강 프로젝트는 셰이프 시프터를 이렇게 정의한다.

 

‘세이프시프터는 하나의 고정된 정체성의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자신'을 획득하기 위한 몸부림의 과정들이기도 하며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마치 불교의 수도승처럼 모든 것은 변하고 아무것도 영원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공연이 막을 내리고 여러 궁금증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생경한 표현과 동작들이 각인되었음을 느낀다.


SPAF의 공연은 10월 29일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다.

 

 

[김예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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