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래 전부터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본 느낌, 찾고 있었던 영화를 찾은 느낌이 들었다.
일단 영화의 톤이 굉장히 특이하다.
흑백이라고 하기에는 약간의 노란 느낌이 섞여있어서 굉장히 신비한 느낌이 든다. 거기다 마지막에 코즈에가 조개 껍질을 던지며 극의 인물들을 외치고 나서, 부감으로 그들을 찍을 때 컬러로 바뀌는 것도 굉장히 인상깊었다.
영화를 보면서 많은 감독들이 떠올랐지만 가장 많이 떠오른 감독이 에드워드 양이었다. 또한 인물들이 정면으로 카메라를 보는 장면 같은 경우에는 기타노 다케시 영화가 떠오르기도 했다.
또 마코토가 데려다주던 그 여인의 신발이 강물에 떠밀려오는 장면은 이창동의 시, 그리고 나오키가 살해시도를 실패한 후 마코토와 자전거를 타며 빙글빙글 도는 장면은 박하사탕 속 가게 안을 돌던 영호를 떠올리게 했다. 우연적으로 1년의 텀을 두고 나온 작품이라 더 신기했다.
서로 좋아하는 감독이라고 하지만, 그 장면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지는 않은 것 같다.
정말 압권이라고 느낀 장면은 역시 버스 납치 장면이었다. 남매가 어머니에게 손짓하며 인사하는 장면에서부터 예정된 암울한 미래를 암시하는 듯했다.
너무도 평화로워서 되려 불길함이 드는 순간이었다. 그 뒤, 버스에 너무도 평범해보이는 한 남자가 탄 뒤, 상황은 뒤바뀌어버린다.
이런 장면에서 느껴지는 정서는 그 어떤 공포 영화 보다 공포스럽고 섬뜩하게 느껴진다. 버스는 어떤 광활한 주차장에 정차해있고, 버스의 모든 창문들은 신문지로 뒤덮여있다.
그리고 버스에서 튀어나와 도망을 치던 한 남자는 총에 맞고 쓰러진다. 범죄영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범죄를 메인소재로 한 그 어떤 영화에서도 보지 못한 구도와 설정이었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지만 무척이나 흥미롭게 느껴진 장면이었다. 버스 안에는 시체들 사이로, 남매와 버스 운전사, 할머니, 그리고 범인이 놓여져있다.
범인이 마코토와 같이 밀착한 채 덥다는 이유로 바깥에 나가는데, 이때 마코토가 너무 긴장해서 그런건지, 갑자기 털썩 주저 앉는다. 그를 쏘려는 범인을 저격수가 명중시키고 그는 서둘러 버스 안에 있는 남은 승객들을 죽이러 총에 맞은 육신을 이끌고 좀비처럼 들어간다. 그 모습이 굉장히 끔찍하게 느껴졌다.
우리에게 익숙한 고독한 미식가의 주인공이 서둘러 버스 안으로 들어가고, 할머니를 쏘고 남매를 쏘려던 찰나에 범인을 맞춰 그 자리에서 사살시킨다.
에필로그가 상당히 길었던 '드라이브 마이 카'처럼 초반부터 굉장히 강렬한 오프닝을 보여준 유레카였지만 그 장면은 정말 에필로그에 불과한 장면이었고, 그 뒤에는 더 놀라운 장면들의 연속이었다. 결국 그 사건에서 생존한 남매와 버스 운전사의 이야기인데 남매의 부모는 집을 떠나거나 죽어버리고, 버스 운전사는 트라우마 때문인지 한동안 어딘가에서 잠적한 듯 보인다.
남겨진 이들의 일상은 정말 암울했지만 마코토가 다시 그 마을에 복귀한 뒤 상황은 회복될 기미를 보인다.
다시 하던 일을 시작하고, 가족에게 돌아갔지만 마을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오해만 받을 뿐, 그가 돌아갈 품은 없어보인다. 집에서 나와 마코토는 남매가 사는 집으로 들어간다. 오래도록 방치되어있던 집이기에 집의 상태가 엉망이었고 마코토는 그들의 보호자와 같은 역할이 되어준다.
그러다 그들의 사촌도 찾아오고 이상한 동거가 시작된다. 이때부터는 큰 사건은 나오지 않지만 그 이전의 상황이 너무 암울해서 그런지 묘사되는 장면들에 나까지 치유되는 기분이 들었다.
다같이 캠핑을 가기도 하고, 아예 나중에는 작은 버스를 구해와 캠핑카로 개조시켜버린다. 정말 좋아하고 뭉클했던 장면은 코즈에가 악몽에 시달리는 듯 보이는 마코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장면, 그리고 마찬가지로 코즈에가 힘들어할 때 옆에서 마코토가 계속 같이 있어주는 장면이었는데 어떻게 보면 피해자인 둘이 서로를 쓰다듬어주는 장면이 너무 뭉클했다.
피해자끼리의 연대는 늘 마음을 아프게 하는데, 그런 연대를 꽤나 많이 봤지만, 가장 기교없이 찍은 카메라의 시선에서 가장 깊은 울림을 느꼈다. 그러나 역시나 비극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늦은 밤 사라진 나오키의 행방을 찾다가 결국 그가 그 살인사건의 가해자였음을 알게 되는 마코토.
이 장면의 정서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에서 밍을 칼로 찌르는 그 장면이 떠올랐다. 직접 나오키를 베며 고통을 느끼게 하고, 자전거를 타고 돌며 다시금 그가 생각할 시간을 준다. 결국 나오키가 직접 자백하도록 경찰서로 향하고, 헤어지기 전 어떻게든 살아있으라고 말하는 마코토의 말이 너무도 마음이 아팠다.
세 사람은 다시 버스를 타고 향하지만, 자신의 친족이면서도 너무도 남처럼 태평스럽게 말하는 아키히코에게 화가난 마코토는 그를 길가에 버리고 코즈에와 둘이 떠난다. 코즈에는 조개껍질에 각각의 이름을 붙이고, 그것들의 이름을 부르며 마지막에 그걸 저 멀리 힘껏 던진다.
그 조개 껍질에는 마코토와 그녀의 오빠, 삼촌도 있었지만 버스 납치범도 있었다. 그 조개껍질에 이름을 붙인 기준은 모호하지만, 결국 그녀의 인생에서 영향을 미쳐온, 어쩌면 짐과도 같은 마음의 덩어리라고 생각해보았다.
결국 이 영화는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가는 영화이다.
나아가기 위해, 온전히 과거를 떨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떨치고 나아가려고 어떻게든 발버둥 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온갖 허무와 슬픔, 격노와 같은 감정들이 마구 솟구치는 듯하지만, 누구보다 격분하거나 좌절했을 그들도 결국 어딘가를 향해 나아가는 영화의 후반부와 엔딩을 보고는 깊은 감화와 함께 생에 대한 강렬한 의지와 삶의 숭고함 같은 원초적 정서들이 물밀 듯 덮쳐오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