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왔다.
질투하듯 겨울이 바짝 따라 붙었고. 선선해진 바람을 즐길 겨를 없이 두꺼워진 외투자락을 싸맨다. 바닥에 떨어진 은행을 피하기 위해 발가락에 힘을 주고. 샛노란 은행잎 새빨간 단풍잎이 알록달록 물들 때면. 줄 이어폰이든 헤드폰이든 에어팟이든 버즈든 귀에 꽂아야한다.
리쌍의 계절이 왔다.
개리와 길, 리쌍. 개리의 솔직한 가사와 길의 묵직한 목소리가 귀에 박힌다. 서늘한 바람과 함께 낭만이 살아있던 그 시대로 간다.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면서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느낀다.
리쌍의 노래에는 그런 힘이 있다. 무언가가 마구 그리워진다. 그들의 말하는 사랑, 이별 그리고 삶에는 힘이 있다.
널 너무나 사랑해서 난 티비를 껐어
새빨간 니 입술
리쌍의 사랑은 직관적이다. 솔직하고, 당돌하다.
널 너무나 사랑해서 끌 수 밖에 없었던 티비. 칠 수 밖에 없었던 커텐. 초등학생이 할 법한 묘사를 담은 가사가 독보적이다. 윤미래와 권정렬이 친밀하고 사랑스러운 대화를 속삭이고. 달달하고 비밀스러운 상상에 힘을 실어준다.
티비를 끄고 싶게 만드는 사람, 내 모든 걸 주고 니 모든 걸 다 주고 싶은 사람을 떠오르게 한다.
러빙유 수줍은 미소 러빙유 부드러운 두 손
네 눈빛이 날 홀려 이 가슴을 막 울려
어떡해 어떡해
자장가 같은 인트로를 지나 길의 목소리를 들으면 아득한 행복감이 몰려온다. 따스한 설렘이 느껴지는 멜로디, 기분 좋은 떨림이 가사에 고스란히 묻어있다. 가시덤불 같은 삶은 너를 만나 튼튼한 건물이 되고 피어난 꽃이 된다. 저 들판 위 꽃도, 어둠 속의 달도 질투할 정도의 풍요로움. 리쌍부르쓰라는 제목답게 잔잔히 전개되는 노래는 놀랍도록 아름답다.
한 편의 시처럼 아름다운 멜로디와 가사는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사랑에 듬뿍 빠지게 만든다.
내가 웃는 게 웃는게 아니야
또 내가 걷는게 걷는게 아니야
너의 기억 그 속에선 난 눈물 흘려 너를 기다릴 뿐
리쌍의 이별은 눈에 보인다. 지나치게 슬프다. 마음 한 구석이 아리다. 체한 것처럼 먹먹해지고 울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공허하다. 사랑에는 힘이 필요하고 힘에는 사랑이 필요하다. 이 노래에는 둘의 부재가 절절히 느껴진다. 개리의 모든 가사가 너무 날카롭게 후빈다.
여태 너를 지키기 위해 했던 나의 노력, 그 모든 걸 다 오려 저 달리는 차들 속으로 던지고 눈물 섞인 웃음을 짓고, 난 끝없는 줄담배에 기침을 하며 미친듯이 추억 속으로 빨려들어가… 끝날듯 끝나지 않은 노래는 마치 끝나지 않을 고통 속에서 여전히 너를 기다릴 것이라 말하는 것 같다.
너를 잊을래 아무리 외쳐봐도 안 되기 때문에.
네가 떠나고 늘 슬프다
아무리 슬퍼해도 슬픔이 모자라
사랑 잃은 삶은 가난
우리가 나눠가진 것은 그리움 하나
사랑이란 두 글자로 다 부숴
가난한 삶, 아무리 슬퍼해도 모자란 슬픔, 유일하게 나눠가진 그리움 그러나 모든 걸 부수는 사랑. 리쌍의 노래가 울리는 이유는 매순간을 만끽하기 때문이다.
사랑도 이별도 치열하다. 강렬한 이별에 사랑을 주저하거나, 환상적인 사랑에 이별을 숨기지 않는다. 그들은 눈물이 두려워 티비를 키지 않는다. 수백번 티비를 끄고, 소리를 지르고, 눈물을 흘린다. 중요한 것은 사랑을 잃지 않는 것이니 말이다.
오르락내리락 반복해
기쁨과 슬픔이 반복돼
사랑과 이별이 반복돼
내 삶은 돌고 도네
용기 있는 자만이 삶을 즐길 수 있다. 쳇바퀴같이 돌아가는 반복되는 삶 속에서. 사실상 행복은 반복 욕구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그래서 강아지가 행복할 수 있듯이 (그들의 시간 개념은 하루 뿐이다) 우리는 반복되는 기쁨을 처음처럼, 반복되는 슬픔을 처음처럼. 사랑과 이별, 그 오르락 내리락을 마음껏 향유해야할 것이다. 그 차이와 반복을 사랑하는 것은 많은 용기가 필요한 것이고. 그 용기는 순수함에서 비롯된다.
리쌍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리워지던 것은 순수함이었다. 낭만이라 일컫는 것들의 본체는 그것이었다. 순수함을 잃어가는 시대. 겁쟁이들이 많아지는 시대 속에서 낙엽이 지고 서늘한 공기가 감쌀때 나도 모르게 리쌍을 찾는 이유는 순수함에 대한 그리움이었던 것이다.
사람 냄새가 진하게 나는 리쌍의 노래들. 투박하고 담백한 마음은 언제나 멋있고 진심은 항상 통한다. 내가 언제까지나 리쌍을 찾을 수 있기를.
우리가 내년 가을에도 십년 후 가을에도 리쌍을, 순수함을 그리워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