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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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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원 연구가 신지선 작가의 『당신 곁의 한국 정원』은 낯설게만 느껴지는 한국 정원과의 거리를 좁혀주는 따뜻한 안내서다. 경복궁과 창덕궁 같은 고궁부터 담양의 명옥헌, 경주의 독락당, 구례의 운조루 등 별서와 민가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전국의 정원을 직접 발로 누비며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쉬운 언어와 풍부한 해설로 풀어낸다.

 

정원을 관찰하는 일은 한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시도라고 말하는 저자는, 나무 뒤에 숨은 석축이나 무심히 놓인 돌다리, 작은 연못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는다. 그 섬세한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단순한 풍경처럼 보이던 정원이 어느새 누군가의 안목과 마음, 삶의 태도를 담은 공간으로 다가온다.

 

 

 

자연을 닮은 정원


 

흔히 정원이라 하면 형형색색의 꽃과 단정히 다듬어진 나무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한국의 정원은 다르다. 인위적인 장식은 거의 없고, 오히려 무심한 듯 놓인 바위와 소박한 식물들이 만드는 여백이 공간을 이룬다. 저자는 이렇게 투박하고 자연스러운 형태를 ‘자연 그 자체'에 도달하려고 했던 한국 미학으로 설명한다.

 

서양 정원이 자연을 통제하며 아름다운 형태를 구현하려 했다면, 한국 정원은 '자연 그 자체'를 구현하려 했다. 어떤 것은 그대로 두고, 필요한 곳에만 손을 더해 자연 속에 정원을 어우러지게 한 것이다.

 

성북동 별서의 폭포, 소쇄원의 암반 사이를 흐르는 물길, 독락당의 자계가 그 대표적 예다. 성북동 별서와 소쇄원의 폭포는 대나무 홈통으로 물길을 끌어오고, 암반을 다듬어 돌 사이로 물이 흐르도록 만들었다. 자연 계류처럼 보이는 독락당의 자계 역시 세심한 설계 속에서 인공적으로 조성되었다. 일부는 그대로 두고, 필요한 부분에 ‘티 나지 않는’ 손길을 더하며 ‘자연스러움’의 미학을 실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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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한국 미학에서 ‘관계성’은 중요한 요소다. 서로 다른 존재들이 관계를 맺으며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된다는 음양오행 사상의 영향이다. 이에 따라 건축물 또한 주변 경관과의 관계를 고려해 배치되었는데, 대표적인 예가 창덕궁 전각 배치다. 전 세계 대부분의 궁이 강한 직선축으로 권위를 드러낸 반면, 창덕궁은 산세와 자연 지형을 살리기 위해 전각들을 곡선으로 잇는다. 권위를 강조하기보다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한 정신이 자유로운 축을 만들어낸 것이다.

 

 

 

사적인 언어로 채워진 정원


 

정원은 시대와 나라를 막론하고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그럴만 한 여유가 없었던 한국의 정원은 화려함 대신 사적인 언어와 의미로 채워졌다. 부족함은 오히려 자유를 의미했다. 과시할 필요가 없었던 정원은 한 사람의 철학과 삶의 태도를 담아내는 장소가 되었다.

 

조선 후기 많은 이들의 스승이었던 송시열의 남간정사 아래로는 그가 평생 추구했던 성리학을 상징하는 물길이 흐른다. 그의 제자들의 정원에서도 비슷한 물길을 찾아볼 수 있는데,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요소들이 물을 매개로 관계를 맺으며 조화를 이룬다는 주자의 사상이 반영된 것이다.


스승 송시열과 달리, 관직을 마다하고 단출한 삶을 택한 윤증의 명재고택의 정원에는 작은 돌로 만든 석가산과 물웅덩이만이 자리한다. ‘도원인가(桃源人家)’라고 쓰인 현판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그 작은 공간을 자신의 무릉도원으로 삼고, 남은 땅은 이웃에게 내어주었다. 소박함과 배려로 채워진 그의 정원은 자연스레 많은 이들의 쉼터가 되었다.

 

보통 사랑채 누마루는 집주인의 위용을 앞세우는 곳이지만, 구례의 운조루는 정원 한편에 “누구든 필요한 사람은 가져가라”는 뜻의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문구가 새겨진 쌀독을 두었다. 그리고 누구나 편히 들어오라는 듯, 누마루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향하고 있다. ‘구름 사이를 날다 지친 새가 쉬는 둥지’라는 뜻을 담은 이름처럼, 삶의 고단함에 지친 이들이 잠시 머물기를 바라는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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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운조루/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정원을 채운 다양한 언어와 상징을 섬세하게 풀어내는『당신 곁의 한국 정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한 사람의 삶과 시대 속으로 깊이 빠져들게 된다.

 

보길도의 세연정이 사치스러운 이유를 통해 윤선도의 마음을 이해하고, 안동 도산서당의 작은 문과 연못에서는 퇴계 이황의 철학을 느낄 수 있다. 지금과 그리 다르지 않은, 옛사람들의 치열함과 낙담, 그리고 희망이 담긴 정원에서 문득 위로를 얻기도 한다. 흐르는 물과, 쌀독, 작은 석가산을 통해 자신만의 언어를 담은 정원에서 익숙하지 않은 아름다움을 발견하기도 한다.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정원은 과거 머물러 있는 유산이 아닌, 우리가 발견하고 누려야 할 공간임을 일깨운다. 많은 정원이 복원되길 기다리며 땅 속에 묻혀있는 현실 속에서 저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정원 유산의 가치를 알리는 것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작은 돌, 나무에 가려진 석축, 화계 위에 숨겨진 문, 꽃담의 무늬에서도 아름다움을 읽어낼 수 있도록, 한국 정원이 가진 매력을 지나치지 않고 알아채도록 하는 이 책은 그러한 노력의 결실이라 느껴진다.

 

깊어지는 가을, 『당신 곁의 한국 정원』과 함께 한국의 정원을 천천히 거닐어보는 것은 어떨까. 돌과 나무와 물이 만들어내는 풍경 속에서, 오랜 시간 동안 변하지 않는 가치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음을 느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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